그 가방이 뭐라고 남자들을 울렸나

by 주연

내겐 백팩이 하나 있다. 베이지색의 가죽 백팩이다. 가방을 처음 만났을 때, 전공 서적이 두 개 정도 들어가고 필기구, 파우치, 지갑 등을 챙겨 넣으면 딱 맞는 크기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 옷에나 잘 어울리는 무난한 색깔도 훌륭했다. 멋 부릴 때도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고, 시험기간에 무거운 책들을 가득 넣고 헐레벌떡 캠퍼스를 뛰어 올라갈 때도 더 이상 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대학 시절 내내 애용하던 백팩은 쇼핑을 할 때마다 ‘아냐, 저거보다 나한테 맞는 백팩은 못 찾아.’라며 가방 카테고리를 무심코 넘겨버리는 이유가 되었다.


이렇게 곰곰이 떠올리다 보니 함께한 세월에 비해 그 처우가 박했던 것 같아 ‘나의 베이지’라고 이름 붙여 부르기로 한다. 베이지는 대학시절을 지나 수험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나와 함께였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여러 번 무너졌다 일어섰으나 베이지는 그 풋풋한 모양새를 꽤나 유지하고 있었다. 딱히 애지중지 대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그렇게 수험 생활을 지나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옆으로 메는 숄더백을 더 자주 메고 다니게 되었지만 1박을 해야 할 때라던가 무언가 무거운 짐을 넣어야 할 때마다 베이지가 함께 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찾게 되었으니 그 추억은 더욱 깊어졌다고나 할까.


늘 처음과 같은 자태를 유지할 것 같았던 베이지도 결국 세월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베이지의 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처음 발견한 것은 사실 꽤 오래전 일이었다. 나와 등을 맞대는 안쪽 가죽이 조금씩 벗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가방을 메면 잘 보이지 않는 위치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메고 다녔다. 또 한 가지 진심 어린 이야기를 터놓자면, 나는 가죽이 벗겨진 베이지의 모양새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가죽이 벗겨지긴 했지만 벗겨진 곳도 똑같은 베이지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또 왠지 오래된 가죽 물건 특유의 어떤 느낌도 났기 때문에 멋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세월의 흔적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베이지와 긴 시간을 보냈다. 그러한 감상이 베이지와 함께한 내 애정 어린 시선이 만들어낸 지극히 주관적인 콩깍지였음을 알게 된 건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것은 아주 의아하면서도 낭만적이고, 안쓰러우면서도 애틋한 깨달음이었다.




나를 떠올리며 읽었다는 시들로만 두꺼운 노트 한 권을 채워 필사한 뒤 건네준 남자. 시를 읽을 때 나를 생각하고, 필사할 땐 가슴에 새겼다던 남자. 그런 남자가 군입대 후 훈련소에서 보내주었던 편지들은 세상에서 발견한 적 없던 낭만, 그 자체였다. 늦은 나이까지 공부에 매진하다 그 공부의 결과로 책 한 권을 낸 뒤 내 곁을 떠나 나라의 곁으로 간 남자의 편지는 거의 매일같이 내게 도착했다. 그리움과 짙은 농도의 사랑으로 가득 찬 편지는 구구절절 나를 눈물짓게 했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덕분에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소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아주 좋았다. 하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어느 편지에 담겨 있었던 베이지에 대한 그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나는 그가 베이지를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고, 특히나 훈련소에서 베이지를 떠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문득 그냥 누워있는데 그 가방이 생각나더라. 베이지색 백팩. 그 가방이 자기한테 꼭 잘 어울렸지. … 그 가방에 벗겨진 자국들, 떨어져 나간 가죽들의 군데군데 남겨진 낡음의 테두리들이 떠올랐어. 그러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이 남자는 나와 베이지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대체 어떤 감상을 느꼈기에 눈물까지 흘린 걸까. 훈련소 모포를 뒤집어쓰고 밤새 눈물을 흘렸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자 나 역시 마음이 아파왔다. 그는 편지에서 말을 이어갔다. 가방 하나 사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노라, 휴가를 나가면 반드시 백화점에 들러 예쁜 가방을 하나 사주겠노라고. 나를 오랜 시간 괴롭혔던 가난과 버티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베이지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었다. 그런 그가 고맙고 안쓰럽고, 감동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슬쩍 무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베이지를 대신할 다른 가방을 살 수 없어 못 산 것이 아니었다. 다만 베이지가 아주 마음에 들어, 굳이 다른 가방을 찾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게다가 그가 한없이 슬펐다는 그 낡음의 테두리가 난 썩 마음에 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나는 곧 펜을 들어 그에게 감사와 사랑을 적어 보내며 생각했다. 이토록 마음 아파하니 가방을 바꾸긴 해야겠지만, 그가 제대할 때까지는 조금 더 베이지와 시간을 보내도 되겠지.




그래서 다른 사람 눈에는 애달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나는 무심코 베이지와 함께 다녔다. 친숙하고 편한 베이지를 쉽게 버릴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의 제대까지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정밀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족들이 서울대병원에 다 함께 모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서울까지 가는 것과 같이 장거리 이동이 있을 때는 베이지만큼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가방이 없었다. 무척이나 긴장되는 자리였기 때문에 다른 가방을 고르는 데 시간을 보낼 겨를이 없기도 했다. 가족들과 만나 다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 남아 있겠다고 했던 아빠의 손에 베이지가 맡겨졌다. 그러나 아빠는 가족이 다 같이 들어가면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 걱정됐을 뿐, 내심 함께 들어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에게 베이지를 꼭 쥐고 네 명은 너무 많은데 함께 가도 되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엄마의 암이 식도를 타고 올라갔노라는 이야기를 듣고, 수술이 불가능한 4기라는 진단을 듣는 절망의 시간에 베이지도 우리 가족과 함께 하게 되었다.


엄마가 베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엄마의 진단을 들은 뒤로 틈이 생길 때마다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들르게 된 나는, 이토록 자주 보는 것이 안 그래도 낯선 엄마의 입에서 베이지의 이야기가 나오자 더 낯설 수밖에 없었다.


“주연아, 느이 아빠가 니 가방 얘기를 하드라.”

“어? 내 가방?”


물론 그때도 내 옆에 놓여 있었던 베이지. 나는 화들짝 놀라 베이지에게 눈길을 주며 되물었다. 내 가방이 왜?


“저런 가방 얼마 주면 사냐고. 그때 병원에서 보니까는 마이 떨어져 있더라고...”

“비싸서 못 사는 거 절대 아니다, 엄마!”


훈련소로부터 베이지에 대한 편지가 날아왔을 때보다 더한 당혹감이었다. 나는 놀란 마음에 저 가죽 떨어진 부분이 꽤 자연스럽지 않냐고, 멋스럽게 어울리는 것 같아서 메고 다니는 거라고, 나도 가방 하나 살만큼은 돈 벌고 있다고 허겁지겁 이야기했다. 꼭 그 말들을 아빠에게 전해주라고. 훈련소의 남자는 나의 지난 삶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보다 그 부분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베이지에서 고난을 연상시킨 일이 이해는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내 대학생활에 대해 들은 적도 없고, 관심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아빠가 저런 이야기를 하다니. 더군다나 엄마가 미안함을 잔뜩 묻힌 투로 은근히 이야기를 전하자 오히려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의 편지를 받자마자 베이지와 이별했어야 했나. 무신경한 나의 태도가 본의 아니게 여러 명을 마음 아프게 한 모양이었다.



나는 곧장 베이지를 대신할 가방을 고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고향에 자주 가게 될 테니 그때마다 갖고 다닐 보조가방을 구입했고, 무심코 넘기곤 했던 백팩 카테고리를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면서도 미련이 남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긴 세월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했던 베이지였다. 그런 베이지를 내 마음이 다하지 않았는데 보내줘야 한다니. 나는 아직 벗겨진 가죽이 멋스러워 보이는 콩깍지가 벗겨지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미안함에 흘린 눈물로 젖었을 훈련소 모포를 떠올리고, 그 절망의 시간에 막내딸의 벗겨진 가방까지 눈에 밟혔을 아빠를 떠올리며 마음을 정리했다. 가방이 뭐라고, 그 남자들을 울리겠나. 이제 정말 작별해야 할 시간인가 보다. 인사라도 하고 보내야겠다.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나의 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