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회 아이들과는 함께 글을 쓰기도 하고, 만들기를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등 선정도서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러나 항상 모임의 처음은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하곤 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 지난달 겨우 쌓아 올렸던 친밀감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 상태기 때문에 어느 정도 되살리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작은 질문에서 시작된 아이들과의 대화는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무언가를 고민해본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 나는 늘 용기를 냈다. 한 번은 그 시작 질문으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알면 이상하게 생각할만한 특이한 점이 있나요?”
종종 나서서 대답하는 적극적인 아이들 몇몇이 있기 마련이었지만, 이 질문의 경우 조금 어려웠는지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대화는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커 보이는군. 조금 기가 죽으려는 마음을 누르고 이런 경우를 대비해 전날 고민해봤던 나의 경우를 이야기했다.
“사서 선생님은 사실...”
별거 아닌 이야기일 테지만 뜸을 들이기만 해도 눈빛을 모으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요즘 같은 선선한 저녁, 딱 일곱 시쯤 되면 거뭇거뭇하게 해가 지잖아요. 그럴 때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면서 음악을 들으면 괜히 슬퍼져요.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짐짓 진지한 투로 이야기했지만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 그게 뭐예요! 진짜 이상해요! 왜 그런 거예요? 하는 말들을 시작으로 대화가 물꼬를 텄다. 저는 게임을 너무 좋아해요, 저는 화장실 가는 걸 무서워해요, 친구들이 알면 놀릴 것 같아요! 어느새 조잘대며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새삼스러운 고민에 빠졌다. 왜 나는 유난히 그 시간, 그 온도, 그 향기, 그 분위기에 보통은 잊고 지내는 마음을 발견하게 되는 걸까. 새삼스럽게.
시작은 사실 해가 지는 시간이 아니라 뜨는 시간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선선한 저녁이 아니라 해가 뜨기 시작하는 쌀쌀한 새벽. 그 시간에 매일 같이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는 날들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던 어느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새벽 6시였고, 그 시간은 다행스럽게도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기숙사에 돌아가 씻고 정신을 조금 차린 뒤 아홉 시 수업을 들었다. 그러고 한시 수업까지 듣고 나면 마침내 잘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다시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는 저녁 여덟 시 까지는 다섯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기숙사에 살고 있는 것이 어찌나 다행인지, 그래도 매일 네 시간 정도는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까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는 굳이 무리를 해서라도 그런 하루들을 쌓아 올렸고 위태로운 반년을 보냈다.
그렇게 매일 새벽, 기숙사로 돌아갈 때의 공기는 지나는 곳마다 푸른빛을 띠는 것 같았다. 지하에서 올라와 건물을 나서는 순간부터 밟힌 종이와 담배꽁초들이 나뒹구는 길거리를 지나 가끔 들르면 폐기 음식을 챙겨주시곤 했던 주인아저씨가 계시던 편의점까지.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부지런한 사람들 사이로 쌀쌀한 기분에 외투를 추스르며 지나가면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유난히 잘 들리곤 했다. 도로에 달리는 차가 많지 않은 그 시간엔 소리의 공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때 자주 들었던 음악에서는 벚꽃이 휘날리고 있었지만 나의 새벽은 그렇게 고요했고 오직 내가 선택한 음악만이 공백을 채웠다.
피곤하다 못해 정신이 몽롱하기까지 했던 그 시간들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버티게 하는 시간이었다. 매일같이 그 시간이 가장 기다려졌다. 단순히 아르바이트를 마쳤다는 후련함, 기숙사로 돌아가 몸을 뉘일 수 있다는 기쁨 같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배제할 순 없는 그 기분들 사이로 어떤 감정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선명한 귓가의 음악을 들으며 순환버스 창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슬프기도 하고, 그보다 더 조금은 서럽기도 하고, 그보다 훨씬 더 조금은 잃고 싶지 않기도 한 마음이 거기 나타났다. 그 감정은 마치 내가 오늘 하루도 잘 버텨낸 것에 대한 증명처럼 느껴졌다. 오늘도 날 괴롭히는 손님이 있었지만, 너무 졸려서 곧바로 잠에 빠져들고 싶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무사히 하루를 마친 것이다. 기특하게도.
그 감정을 지금은 이름 붙여 말할 수 있다. 그 새벽의 순간들마다 나는 외로움을 느꼈구나. 새벽의 공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고요한 공백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꼈었구나. 하지만 그 감정의 정체를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해서 그때의 나에 대해 연민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 감정을 증거 삼아 버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외로움에 사무치길 스스로 바랐었는지도 모른다. 외로울수록, 그 시간들이 더 사무칠수록 생각했을 것이다. 잘하고 있구나, 잘 버티고 있구나.
해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만 빼고 선선해지기 시작한 저녁의 퇴근길은 그때와 대부분의 것이 비슷하다. 쌀쌀한 공기, 한 겹의 필터를 끼운 듯한 푸른 배경,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뒤 몸을 뉠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래서 그 시간만 되면 한없이 외로워지는 것이다. 몸이 기억해버린 것들이 감정을 일깨웠다. 퇴근길 버스 안은 피곤으로 가득 차 이상하리만치 고요할 때가 있다. 특히나 일터에서 시간을 보낸 사이 어느덧 해가 져버린 선선한 저녁엔 더 그럴 때가 많다. 나뿐만 아니라 버스에 오른 많은 이들이 조명처럼 빛나는 도로의 불빛을 바라보며 각자의 지난 삶을 떠올리고 있을까. 그래서 이런 고요가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걸까.
그 순간엔 귓가에 꽂힌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특히 그 가사들이 아주 선명하게 들려온다. 외로워서 그 가사들이나마 붙잡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토록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며, 사실 그 새벽들에도 혼자가 아니었음을 잘 알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의 외로움은 내가 필요로 했던 존재의 증명일 뿐이며 나는 단 한순간도 혼자 살아낸 것이 아님을 깨달은 지가 오래인데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그 시간, 그 온도, 그 향기, 그 분위기에 외로워지는 나는 속절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바라보며 생각하곤 한다. 어찌 되었든 그때처럼 지금도 이 감정이 싫진 않구나. 앞으로 영영 이렇게 의미 없이 외로워져도 괜찮을 것 같다. 독서회 아이들이 이상하다며 웃음을 터뜨릴 얘기 거리도 오래오래 써먹을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