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핀 꽃이 지지 않아요

by 주연

“잠깐. 미리 얘기할게요. 제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져도 놀라지 마세요.”


경험상 미리 선언하는 것이 좀 더 나았다.


“취한 게 절대 아니랍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일 뿐 취한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지금은 술을 즐겨 마시지 않지만 한때 자학과 비슷한 음주를 즐기던 대학생 시절이 있었으므로 그것이 날 어떻게 만드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술이 한 잔을 넘어 두 잔 정도 들어가면 얼굴에 열이 올랐다. 피어오르기 시작한 열꽃은 아래로 점점 뿌리를 내려온 몸이 빨개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붉은 개화의 과정이 많은 이들에게 걱정을 끼치므로 낯선 이들이 있는 자리에선 웬만하면 술을 거절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예고 아닌 예고를 하며 실제로 빨개진 얼굴을 본 상대방이 ‘진짜네요!’하며 웃어넘기게 만드는 요령을 피우게 되었다. 그러면 대화는 대부분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게 얼굴이 잘 빨개지더라, 하는 이야기로 흘러가곤 했다.


그러나 내 얼굴이 자주 빨개지는 건 결핍된 알코올 분해 효소 때문만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음주의 순간이 아닐 때도 나는 종종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얼굴에 찡- 하고 열이 오르는 느낌을 받으면 거울로 확인하지 않아도 분명했다. 아, 내 얼굴이 또 빨개지고 있구나. 음주의 경우와는 또 다른 개화의 순간은 당황하거나, 덜컥 겁을 먹거나, 부끄럽거나, 심지어 뿌듯한 순간에도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붉게 꽃이 핀 얼굴은 감정을 대변해주어 순간순간을 극적으로 만들기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개화한 꽃을 사랑스럽게 보거나 안쓰럽게 보거나 신경질적으로 보거나 했다. 그건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꽃이 피는 그 일을 내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




그런 내 얼굴에 핀 꽃이 어느 순간 사라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시간은 나를 전보단 뻔뻔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고 덕분에 꽃이 피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몇 달 전까진 그랬다. 드디어 내가 나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걸까, 좀 자랐네, 하는 우쭐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분명 그랬는데 어느 날 개화한 꽃이 사라지지도 않고 내내 피어있는 것이다. 이번 개화의 과정은 조금 남달랐다. 앞서 말했듯 찡-하는 느낌이 들 만큼 순간적으로 열이 확 오르는 것이 그동안의 개화였다면, 이번에는 들키기 싫다는 듯 아주 조금씩 열이 올랐다. 드문드문 느껴지기도 했지만 의식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비로소 만개한 꽃을 발견해버린 뒤론 외면하곤 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개화의 시작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과 시기를 같이 했다.


[엄마, 이런 글들 연재할 건데 괜찮나?]


엄마의 병에 대해 들은 뒤 강렬한 고통의 시간을 지나 글쓰기를 시작했다. 꽉 막혀 소화되지 않는 후회의 기억들을 여물 씹듯 천천히 직면해갔다. 그 기억들에 등장하는 엄마의 모습은 대부분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내 의도가 어땠든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잘 썼다. 다음 편이 궁금.]


다음 편이 궁금하다는 엄마가 내 글을 챙겨보고 있는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 엄마와의 기억들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된 내 글은 곧 나 자신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졌다. 엄마뿐만 아니라 다른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일들이었다. 글을 쓰는 과정은 말 그대로 지난 삶을 돌아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런 성찰의 시간을 가진 적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마음에 걸리거나 상처 받은 일들은 떠올리려 하지 않고 잊기에 급급했다. 되돌아본다는 것은 처음 해보는 만큼 쉽지 않았지만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주 잊고 지냈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면서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나 역시 내 기억의 독자가 되었다. 엄마와 나, 그리고 온전한 나를 직면하면서 마음의 고통을 극복해보고자 시작한 일이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개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나를 발견하면서 자주 부끄러워졌다.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문득 당황스럽기도 했으며, 갑자기 벅차올라 울고 싶어지기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기 위해 생각에 잠긴 순간에도, 둘 다 아닌 일상의 순간에도 그랬다. 내 글을 읽은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하는 걱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을 의식한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달랐다. 독자가 된 주연은 등장인물 주연 때문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수치를 느끼기도 하고 겁에 질리기도 했다.


얼굴에 꽃이 피기 시작한 지 네 달 째. 만개한 붉은 꽃은 일상을 나와 함께한다. 며칠 전 직장에서 늘 하던 일을 하는 순간에 문득 깨달아졌다. 내 얼굴이 지금 붉어져 있구나. 종종 이유 없이 느껴졌던 부끄러움과 약간의 심적 고통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었다. 꽃이 질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개화를 인식한 뒤론 글 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고백을 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직면한다는 것이 이런 열병을 동반하는 일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만둘 수도 없다.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 얼마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지도 함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개화를 성장통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술을 서너 잔 더 들이켜면 붉어졌던 얼굴이 창백해지듯, 감정이 해소되면 붉어졌던 얼굴이 돌아오듯 이 개화의 순간도 지나가게 되리라.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담담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되길. 그 순간이 직면한 내 지난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