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는 긴 연휴를 얻었다. 도서관은 월요일 휴무이므로 이번 추석 연휴는 화요일만 연가를 낸다면 무려 7일을 연달아 쉴 수 있었다. 그 영광스러운 화요일 연가권(?)이 막내인 나에게 돌아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행운이자 너그러운 양보의 결과였다. 황송한 기분으로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향했다. 와중에 코로나로 인해 지역 이동을 삼가라는 당부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래도 암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면 봐주지 않을까. 별다른 마음의 가책이 없는 것과는 별개로 혹시나 내가 바이러스를 묻혀가면 큰일 난다 싶어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웠다.
[네가 끓인 삼계탕 먹고 싶대. 다른 건 괜찮대.]
내가 끓인 삼계탕은 어마어마하게 맛있다. 삼계탕은 생각보다 난이도 높은 음식은 아니었다. 닭을 손질할 때의 낯선 촉감만 제외한다면 요리할 만했다. 깨끗이 손질한 닭과 한방 재료를 넣은 뒤 정성 들여 끓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 간단한 과정을 거쳤는데 어마어마할 정도로 맛있었던 이유는 내 마음에 있었다. 평소에 엄마를 돌보지 못하므로 집에 갔을 때만이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는 죄책감. 그 죄책감은 나를 아침 일찍 일어나게 했으며 12시는 되어야 먹을 삼계탕을 아침 7시부터 끓이게 만들었다. 약 3~4시간을 끓인 삼계탕은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육수가 어찌나 진한지 엄마는 연신 숨을 뱉으며 국물까지 싹 긁어먹었다.
[그럼 추석 음식 할 거랑 삼계탕 재료만 사자.]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부터 언니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준비태세를 갖췄다. 장보기 목록을 작성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그동안 무심한 딸이었음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던 일조차 너무 희미해 제대로 떠올릴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걸 맡기라고 큰소리 떵떵 쳤던 초심을 겸허히 접고 엄마가 적어 준 메모를 손에 꼭 쥐고 장을 봤다. 추석 음식 재료와 삼계탕 재료, 긴 연휴를 대비한 간식으로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엄마를 돌아봤다.
추석 연휴 며칠 전 항암치료를 하고 온 엄마는 드물게 아픈 티를 냈다. 나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 때문에 엄마의 아픈 모습을 보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환자 가족치곤 항암 부작용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앓아누운 엄마를 보고 있자니 늘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던 민머리가 애달파졌다. 이론으론 항암 부작용 따위 줄줄 외울 정도로 꿰고 있었지만 ‘너거 엄마 튼튼한 거 모르나’ 하던 엄마가 아픈 모습은 여전히 낯설고 믿기지 않는다. 저 동그랗고 까슬한 머리를 보고 있는 마음도 이렇게나 밑으로 추락하는데, 제 가슴에 암덩어리를 달고 있는 엄마 마음이 어떨지 떠올리는 일이 두려워서 차마 해내지 못했다.
추석 당일이 될 때까지 한 번의 삼계탕과 한 번의 토스트, 또 한 번의 파스타 맛 나는 라면을 끓여냈다. 바로 전날에는 전을 부쳤다. 고추 찌짐, 육전, 명태전, 너비아니 등이었다. ‘찌짐’이라는 말이 방언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왠지 고추 찌짐은 그냥 고추찌짐이다. 고추찌짐이 가까운 부산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고향 특유의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론 더 그렇다. 고추를 아주 잘게 다지고 홍합과 부추를 넣은 반죽을 부치는 전인데,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게 부추전이랑 뭐가 다르냐고 했다. 어쨌건 고추 찌짐은 고추 찌짐인데, 언니와 내가 엄마의 ‘적당히’를 오해한 탓에 산더미 같은 고추와 부추에 비해 앙증맞은 홍합이 너무 초라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추 찌짐을 빼놓지 않고 굽는 엄마에게 홍합 좀 많이 넣어라, 입으로만 잔소리했던 일이 머리를 스쳤다. 고추를 다지는 손 끝처럼 얼굴도 화끈해졌다.
전도 다 부쳐놓았겠다, 추석 당일엔 느지막이 일어났다. 변명을 하자면 일을 시작한 뒤로 이토록 긴 연휴는 처음이므로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보고 싶었던 드라마도 정주행 해야 하고 볼 영화 리스트도 한 움큼이었으며 써야 하는 글도 많았다. 새벽 네시가 되어서야 잠들었으니 아침 열 시에 깨고도 한 시간 가량 이불을 벗어나지 못한 건 내 기준에선 그리 괘씸한 일은 아니었다. 보통 열한 시 삼십 분쯤 점심을 먹으니 열한 시부터 식사를 준비하자고 언니와 합의도 된 상태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들리는 총성처럼 과장된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순간 울컥, 짜증이 났다.
“아, 엄마, 쫌!”
엄마는 누누이 들었을 것이다. 항암치료를 한 뒤 일주일 동안은 제발 좀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몸 상태에만 집중하라고. 그런데 엄마는 매번 응응, 하면서도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언니가 내게 하소연하듯 털어놓은 말들이었다. 언니가 조금이라도 지체를 하면 당신이 나서서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어쨌든 뭐라도 한다는 것이다. 또 그러고 나서는 금세 지쳐버려서 눈을 감고, 등을 돌리고, 누워버린다고 했다. 얘기를 듣고 있자니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몰려왔다. 대체 왜? 가만히 쉬면서 몸 좀 돌보라는 것만큼 쉽고도 중요한 일이 어디 있길래. 청소나 설거지 따위가 암과의 사투에 도움이 될 리 없음을 당신도 모르는 게 아닐 것이다. 왜 말을 안 듣니, 하는 어느 부모들의 한탄이 내 입에서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건너 듣기만 했던 엄마의 반항을 직접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탁, 탁, 탁,]
정적을 깨고 들려온 소리는 분명 가스레인지 불을 켜는 소리였다. 나를 벌떡 일으킨 주인공이었다. 부리나케 일어난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 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한다고 했잖아!
“이 정도는 개안타. 배가 고파서 그란다."
“아니, 내가 할게. 엄마 가서 앉아 있어라.”
가슴이 답답해지고 짜증이 났다. 배가 고프다, 그래서 가스레인지를 켰을 뿐이다. 누가 엄마를 비난할 수 있으랴. 그래서 더 답답했다. 어쩜 이렇게 딸내미 마음을 몰라주는지. 누워서 쉬느라 암환자 엄마한테 식사 준비를 하게 만드는 나쁜 딸년이 된 것 같아서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짜증이 감춰지지 않아서 밥을 퍼는 손길이 거칠었고, 그런 스스로의 모양새를 보니 또 화가 울컥울컥 치밀었다. 나름 노력하는 중인데 방향이 잘못되었나. 엄마는 차려진 밥상 앞에서 입맛이 없어졌다며 금방 수저를 놓아버렸다. 그 모습을 보자니 또 억장이 무너졌다. 암환자에게 밥 한 끼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런데도 엄마에게 밥 한 술 더 뜨라는 말을 하기 싫었다. 오히려 보란 듯이 고추 찌짐을 입 안에 쑤셔 넣으며 밥 한 그릇을 싹 비웠다. 그렇게 추석날 가족들이 둘러앉은 점심 식사는 식은 육전보다 딱딱하게 지나가 버렸다.
“엄마. 아까 짜증내서 미안.”
설거지를 시작하기 전부터 세제와 함께 나의 죄를 씻어내리라, 속으로 되뇌었던 나는 고무 냄새가 나는 손을 하곤 엄마에게 사과했다.
“근데... 우리 마음도 좀 이해해줘, 엄마.”
엄마는 변명하고 싶을 때마다 뜨는 흐린 눈을 티비에 두곤 같은 말을 했다. 티비에선 지겹도록 재방송되는 트로트 프로그램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 정도는 개안타캐도, 배고파서 그랬다 안 하나.
“그래도 우리가 한다고 했잖아. 엄마 항암 하고 일주일만 좀 참으라니까.”
나는 내가 원하는 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론 조심하겠다던가, 그래 나는 쉴 테니 너네가 다 알아서 하라는 말이라던가, 그런 방향의 말이라면 아무거나. 그런데 엄마는 끝내 그런 말들은 하지 않고 뜻밖의 반격을 했다. 울음을 터뜨려버린 것이다.
“미안해서 안 이라나. 미안해서!”
“뭐? 뭐가 미안한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죄책감으로 겹겹이 무장하고 연휴를 보내러 온 입장에선 기가 막힌 말이었다. 아까 설거지하면서까지 죄스러움을 씻어 내겠노라 다짐을 했는데 죄를 사해 주어야 할 사람이 미안하단다.
“나 때문에 온 가족이 신경 쓰고 그라고 있는데. 내는 진짜 괜찮다캐도!”
“아...”
그렇구나. 엄마는 이렇게 지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구나. 엄마는 황송하고 불편했던 것이다. 온 가족이 당연히 엄마의 몫인 양 관심도 두지 않던 식사를 서로 차리겠다고 나서는 것.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 알아서 하겠노라 모셔두는 것. 설거지라던가 청소라던가 하는 일들을 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는 것. 엄마는 평생 그래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 나라고 안 미안한 줄 아나. 나만 빼고 다른 가족들 다 고생하고 있는데, 나만 편하게 있는 것 같아서 엄마 소식 듣고 처음 몇 달은 친구도 못 만났다. 얼마나 죄책감 갖고 지내고 있는데!”
적당한 배경음악이 깔려야 한다면 웅장한 클래식이 좋겠다. 칼과 방패의 싸움 같았다. 아니 어쩌면 죄책감이라는 무기를 동일하게 갖고 있으므로 방패 따위 없는 싸움일지도 몰랐다. 엄마는 암 선고를 받고 난 뒤 남들 앞에선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눈물을 보이며 죄책감을 토로했다. 나는 이미 무장해제당하기 직전이었으나 그래도 엄마의 고집을 꺾어야 했으므로 맞받아쳤다. 나도, 언니도, 어쩌면 아빠도, 전부 다 죄인이다, 그러니 엄마도 미안한 마음이라면 건강에 더 신경 써라, 고. 몇십 분의 실랑이 끝에 엄마는 백기를 들었다.
“그라모 항암 하고 일주일 정도는 가만 있으께.”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삼계탕을 끓인다던가, 못하는 요리를 하려 애를 쓴다던가, 문득 울화가 치민다던가 하는 죄책감이 지긋지긋하다. 몸보다 정신이 지쳐갔다. 그래도 나만 죄인이었으면 좋겠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빼놓고. 오직 나만. 승기를 쥔 손바닥에서 고무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