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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번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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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Jan 13. 2019

비스마르크의 매점 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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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학교 안의 매점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그저 간식거리를 사고, 배를 채우는 곳? 그런 무지막지한 단어로 매점을 표현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많은 추억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나왔다.


처음 고등학교에 갔을 때 학교 안에 매점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꽤나 신선한 것이었다. 교문 앞 떡볶이 포장마차가 전부였던 나였는데 이제는 매점에서 빵이며 음료수,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선택권은 일반 슈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런 것들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시절과는 모든 게 달라 보였다.


http://news.donga.com/home/3/all/20110502/36866113/2


나와 친구들은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도 급식을 먹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매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밥을 늦게 먹으면 매점에 가는 시간도 그만큼 늦어지고, 그렇게 되면 긴 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조금이라도 식사를 빨리 마치려고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달려가곤 했다.


식사를 마치고 매점으로 가면, 매점 아주머니는 늘 피곤에 지친 표정으로 과노동에 시달리고 계셨다. 아이들은 거의 밀물처럼 매점으로 들이닥쳤고, 쏟아지는 주문에 아주머니는 정신없이 물건을 내주시고 계산을 하셨다. 긴 줄을 기다려 마침내 원하는 물건을 사고 나면, 우리는 학교라는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숨을 내쉬 듯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의 계단이며, 학교 곳곳의 벤치에 앉아 그 잠깐이나마 햇볕 속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오후를 시작할 기운을 얻었다.


식후에는 주로 아이스크림이었지만, 사실 매점에서 제일 많이 사 먹은 것은 빵이었다. 점심이 먹기 싫으면 모두가 식당으로 뛰어가서 여유가 넘치는 매점으로 슬렁슬렁 걸어가 빵을 사 먹었고, 어떤 내기를 하든 빵을 걸었다. 가끔 그날따라 빵이 유독 먹고 싶은 날에는, 턱 없이 부족한 쉬는 시간 10분 안에 빵을 사려고 온 힘을 다해 매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https://www.instiz.net


매점에서 팔던 빵은 당시에는 '샤니'라는 브랜드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거의 500~600원 남짓하던 빵들은 맛도 딱 그 정도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500원으로는 빵을 사 먹기가 어렵겠지만, 그때는 동전 하나 정도면 조금 저렴하고 맛은 대강 나쁘지 않은 빵을 매점에서만큼은 사 먹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특이했던 건, 이름도 생소한 비스마르크 빵이었다. 볼 때마다 궁금한 대상이었지만 여전히 그 빵이 대체 어떻게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비스마르크라는 이름이 붙은 전함과 그 모양이 비슷하고 다른 빵에 비해 길고 크다는 점에서 그 이름이 붙었을 거라는 추측 정도만 해보게 된다. 여하튼 그 빵은 도대체 알 수 없는 연유로 매점에 상륙해 있었고, 다른 빵들 틈새에 섞여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이국적인 이름에도 불구하고 비스마르크는 그다지 인기 많은 빵은 아니었다. 우리는 맛도 이름도 무난한 치즈팡과 브이콘을 즐겨먹었다. 치즈팡은 담백하고 쫄깃한 빵에 치즈향이 살짝 나서 식사 대용으로 그만이었고, 개사료라는 괴소문이 돌기도 했던 브이콘은 아주 바삭하고 양도 상당해서 먹어도 먹어도 잘 줄지 않았다.


급식은 무난한 맛이었고, 내가 먹지 않아도 급식비는 꼬박꼬박 학교로 입금되고 있었겠지만 난 별 시답지도 않은 이유들로 점심을 건너뛰었다. 그리고 단짝 친구와 줄곧 매점에서 빵을 사 먹으며, 그저 밥 하나 안 먹을 뿐인데 온 사방이 다 고요한 것 같은 점심시간을 여유로이 즐겼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각자 의자 두 개를 붙여놓고 드러누워 못다 한 비밀 얘기를 하며, 교실 안에 우리만 있는 그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마음껏 누렸다.


http://www.consumernews.co.kr/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가 그 학교에서 3년을 보내는 동안, 샤니는 기존의 밋밋한 빵들에서 '케로로'라는 캐릭터를 그려 넣고 학생들의 입맛을 저격하는 화려한 빵들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리고 빵마다 각각 다른 케로로 캐릭터의 스티커를 넣었다.


이 전략은 전에 없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내 기억 속 포켓몬 빵 이후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빵 사재기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학교 아이들은 스티커를 모두 모으기 위해 의무감으로 빵을 사댔고, 파일이며 공책 한 바닥을 채워가며 스티커를 붙였다. 그러다 말겠거니 했지만 스티커의 열풍은 꽤나 오래 이어졌다.


이런저런 각자의 이유들로 우리는 매점을 탐닉했다. 누군가는 스티커에 열광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기의 아찔한 재미로 매점에 가고, 누군가는 또 좋아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매점에 나들이를 가듯 방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기차게 수업을 듣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우리에게 일종의 해방구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매점에서 무엇인가 달짝지근한 것들을 사 먹고, 거기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으면 서 우리는 한숨을 돌리곤 했다.


어른들과는 또 다른 사춘기 특유의 고민들로 꽉 찬 머리를 비워내고, 덜어내던 쉼표 같은 곳. 그 것이 바로 매점의 소중한 존재 가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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