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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문방구에 갔다. 지각할까 서둘러 오늘 챙겨가야 할 학용품을 사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눈에 보이는 몇 백 원짜리 물건들을 주워 담아 지폐를 내고 동전을 거슬러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나는 문구점이 아닌 문방구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청소년이었던 시절은 이미 아득하고, 기억들도 대부분 안갯속에 가라앉아 있는 나만큼이나 문방구가 동네 곳곳에서 쉽게 보이던 시절도 이미 한참이나 전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파트 상가에 문방구 하나쯤은 꼭 있었고, 학교 주변 문방구 주인아주머니나 아저씨는 오늘 준비물이 뭔지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문방구에는 오늘의 학용품이 될 빼곡한 물건들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다양한 불량식품들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입이 심심했던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각자 문방구에서 집어온 간식들을 하나씩 꺼내놓고 나눠먹기 바빴다. 지금은 보기 힘든 불량식품들은, 입에 넣으면 왜 불량한지 알 수밖에 없는 맛들이 났다. 참을 수 없이 달거나 신 맛으로 혀를 자극했다. 어른들이 그것들에 불량식품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것은, 달큼한 그 맛에 속아 건강하지 못한 간식을 지나치게 즐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동시에 그런 이름을 붙여놓지 않고서는 우리가 그 온갖 맛의 향연을 지각없이 즐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것들은 달콤한 중독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먹었던 것은 바로 교복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조그만 크기에, 껍질만 벗겨내면 소리며 냄새가 없어 어디서든 쉽게 먹을 수 있었던 사탕이었다.
익히 자주 먹었던 사탕은 '손바닥 사탕'. 빨간색과 파란색이 있는 이 사탕은 먹은 사람의 혀며 입술을 가히 충격적인 채도로 물들였다. 특히 파란색 손바닥 사탕을 먹고 나면, 도저히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빛깔로 입술이 시퍼레졌고 혓바닥은 약간 징그러운 기분까지 들 정도로 푸르죽죽해졌다. 그런데도 손바닥 사탕은 파란색이 압도적 인기였다. 색깔의 혐오스러움과는 관계없이 맛은 달콤하기 그지없었고, 다 먹고 나서 파래진 서로의 입 언저리를 보며 깔깔대며 웃는 즐거움도 한몫 보탰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엉뚱한 사탕 시리즈에서 그야말로 가장 불량한 것은 바로 청소년이라면 절대 합법적으로 마실 수 없는 맥주 모양의 사탕이었다. 맥주 사탕은 신기할 정도로 500cc 맥주잔의 모양과 정확히 닮아있었고, 거품 부분에서는 톡 쏘는 신 맛이 났다. 맛은 다른 사탕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는데도 맥주 사탕이 보이면 묘하게 집어 들게 되던 심리에는, 우리가 이미 많이 성장하였는데도(혹은 그렇게 생각만 하였더라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맥주 사탕은 그저 모양만 같을 뿐 맥주의 그것과는 맛도 전혀 다르고, 결정적으로 알코올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불량식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사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어른의 세계를 살짝은 맛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 사탕을 사 먹었던 이유의 팔 할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맥주는 법적으로 절대 먹을 수 없는 나이의 우리였지만, 맥주 모양 사탕은 맘껏 함께 맛보고 즐길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같은 기분으로 그 사탕을 먹었을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사탕이기에 먹었을지는 지금에 와서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으로 그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맥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맥주 맛 사탕을 먹던 것처럼, 우리는 자주 어른의 삶을 엿보고 그 성숙함을 닮고 싶은 마음을 키워나갔다. 그들은 당연하게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못하는 어떤 금기의 것들은, 때로 설렘이고 자주 호기심이며 빈번히 기대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