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은 '외로움'의 동의어라는 사실
우리 부모님은 자녀를 '르네상스인' 으로 키우려는 야심을 가지고 계셨다. 우수한 학벌에 자유로운 토론과 예술을 즐기는 세련된 매너를 가진 아이. 어느 부모나 대체로 이런 이상적인 아이를 바라기 마련이지만, 우리 부모님의 계획은 꽤 구체적으로 수립되고 실행된 편이었다.
계획을 주도한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었던 둘째언니와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큰형부를 매우 존경하셨는데, 이 두 분이 어머니의 마음 속에 소위 '르네상스인'의 샘플로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어머니와 대부분의 사안에서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던 나의 아버지도 이것만큼은 적극 찬성이었다. 학창시절 수재로 불릴 만큼 공부를 잘하셨던 아버지는 자신의 지적 성취에 대비해 예술적 소양이 다소 부족한 것을 늘 아쉬워하셨기에, 아이들은 학벌과 예술적 소양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나와 동생이 어느정도 철이 들 무렵부터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90년생인 내가 첫 바이올린 레슨을 받은 것이 대략 94~95년 즈음이었으니, 그 시절 기준으로도 상당히 무리한 사교육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바이올린 강습은 매번 끔찍했고(팔과 목이 너무 아팠다), 피아노는 그럭저럭 칠 만 했지만(앉아서 치니까 그나마 나았다) 지루함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여러 레슨 선생님과 학원을 전전한 끝에 두 악기 모두 그만두어 버렸다. 바이올린은 스즈키 8권, 피아노는 체르니 50번에 들어설 때였다.
이어졌던 미술 교육에서도 음악과 마찬가지로 별 소득이 없었다. 반면 음악에서 같이 죽쑤던 내 동생은 미술에서만큼은 탁월한 재능을 보여, 이후 전공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예체능계 자녀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부모님은 비로소 르네상스인 프로젝트가 너무 커져 버렸음을 절감하셨고, 이 덕에 나는 죄책감 없이 르네상스인의 길을 벗어날 수 있었다. (대신 나는 성적이 썩 괜찮은 편이었으니, 우리 부모님의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해 두자.)
다행히도 우리 집에서 '예술'의 범주에는 문학이나, 영화, 대중음악 등도 포함되어 있었고, 허용 범위도 넓었다. 우리 부모님에게 존 레논과 마이클 잭슨, 에디트 피아프는 클래식 음악가들과 같은 레벨의 우상이었다. 나는 음악과 미술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책읽기를 아주 좋아했는데, 부모님은 이를 매우 반겨 내가 어떤 책을 읽던 터치하지 않고 내버려두셨다.
영화도 마찬가지여서, 작품만 괜찮다면 12/15/19금 같은 연령제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부모님은 아마도 예술의 영역에 있다면 폭력이나 성에 관련된 장면들도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의 누드화가 '야한' 것이 아닌 것처럼.)
TV에 엄격했던 우리 집에선 토요일 밤의 영화 프로그램들이 TV를 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구실이었고, 이런 개방적 예술관(?)에 힘입어 나는 다양한 <주말의 명화>들을 마음껏 섭렵할 수 있었다.
우리 자매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007> 시리즈나 성룡, 이연걸의 쿵푸 영화들이었다. 대개는 총알 한 방 안 맞는 주인공이 뛰어난 재치로 악당을 소탕하는 뻔한 스토리였지만, 그때는 봐도봐도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나의 '제임스 본드'는 지금도 숀 코너리와 피어스 브로스넌이다.) 이런 영화가 방영되는 날이면 우리는 경건하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간을 맞춰 TV를 켜고, 설레는 마음으로 광고들을 참으며 영화를 기다리곤 했다. (<주말의 명화>는 대략 10시나 그 이후에 시작했지만, 주말에는 부모님도 잠자는 시간에 대해서 잔소리가 없으셨다.)
그런데 <주말의 명화>에는 다소 귀찮은 구석이 있었다. 가끔씩 진짜 '명작'을 틀어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이런 명작 영화를 꼭 보게끔 하시는 분이었다. (동생과 내가 '어린이용'과는 거리가 먼 007시리즈나 성룡 영화를 보는데도 별 잔소리가 없었던 것은, 이런 큰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 기준의 '명작 영화'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었다. 1)세계 3대 영화제 혹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거나 2)비평적으로 우수하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나 감독(의 작품들), 3)흑백영화를 주로 하는 고전물(오드리 헵번이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고전배우가 나온다). 모두 어린이가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작품들이었다. 이런 영화들을 봐야 하는 날이면, 나는 어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얼마 못 가 쿨쿨 잠들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마음에 자국이 선명히 남기는 영화들이 드물게, 아주 드물게 있었다. 나는 조금 더 머리가 굵고 나서야, 그 영화들 중 몇 편이 내 안에 오래도록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 첸카이거의 ⌜패왕별희⌟(1993)와 팀 버튼의 ⌜가위손⌟(1990)이 바로 그런 영화였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패왕별희⌟와 ⌜가위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얼굴을 하얗게 칠한 무서운 아저씨들. 사람들이 꺼림직해하고,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장국영이 분한 '뎨이'와 조니 뎁이 연기한 '에드워드'는 창백했고, 눈가가 붉고, 너무나 슬퍼 보였다.
내게 ⌜패왕별희⌟는 <포청천>이나 쿵푸, 무협영화의 계보에 속하지 않은 최초의 중국 영화였다. 중국의 옛 역사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삼국지>나 위인전을 읽으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하지만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영화를 보아 나가면서 나는 경극이 무엇인지 점차 이해했고('중국 사람들이 하는 판소리'), 어떤 시대인지도 점차 감을 잡을 수 있었다('옛날이긴 한데, 고려 조선만큼 옛날은 아닌').
가만 보니 경극 연기는 남자가 하는데, 여자 목소리를 냈다. 어쩐지 징그럽다. 게다가 주인공인 뎨이는 경극단 동료인 샤오러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얼레리꼴레리, 그런데 둘다 남자 아니었나? 잘 모르는 나라 중국의, 근현대라는 낯선 시공간에서, 무언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화면 위에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가위손⌟의 '에드워드'는 등장 신부터 이불을 뒤집어쓰게 만든 존재였다. 어린아이는 이질적인 존재에 공포를 느낀다. 음습한 집에서 양손 대신 가위를 달고 사는 저 아저씨는 분명 무서운 사람이었다. "괴물 아저씨가 TV에서 나와서 가위로 찌르면 어떡해!" 동생과 나는 서로를 꼭 껴안고 눈만 이불 밖으로 빼꼼하니 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가위손 아저씨는 의외로 착한 구석이 있었다. 가위 손으로 능숙하게 정원을 다듬고, 이웃의 머리를 자른다. 마을 주민들도 점점 아저씨에게 마음을 여는 것 같다. 외로워 보였던 삐죽머리 남자에게 사람들이 점점 다가온다. 겁먹었던 두 아이도 어느새 이불을 내리고 영화에 빠져들어간다.
하지만 얼굴 흰 두 아저씨들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문화혁명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패왕별희⌟의 뎨이와 샤오러우가 겪는 일련의 조리돌림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 태연하게 잔인했다. 둘 다 착하게만 산 것 같은데, 그저 연극을 했을 뿐인데. 사랑을 했을 뿐인데. 뎨이가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리가 분한 쥐셴이란 여자도 미웠다. 뎨이는 샤오러우를 저렇게 좋아하는데, 저 사람 때문에 방해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어린 나는 마지막 장면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뎨이는 어떻게 된 거지? 죽은 게 연기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이제야 다시 만나서 연기를 했는데 왜 울면서 끝이 나지? 무서운 건 흰 얼굴의 아저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폭력을 휘두르고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
이렇게 강렬한 울림을 준 영화는 난생 처음이었다.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몰랐다. 그저 영화가 많이 슬퍼서, 마지막에는 많이 울었다. 이후 며칠 동안은 자려고 누울 때마다 경극의 노랫소리와 배우들의 붉은 눈매가 자꾸만 떠올랐다.
에드워드에게 일어난 일들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관객인 나와 동생은 에드워드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걸 이제 다 알겠는데, 왜 자꾸 오해를 받고 이용당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나타나는 건지. 가위손 때문에 남을 제대로 안지도 못하는 불쌍한 사람한테 왜 작은 행복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건지. 영화 속 세상에는 불합리한 일들 투성이었다.
그러면서도 예쁜 여자 주인공 '킴'과 (위노나 라이더) 에드워드가 잘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결국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킴이 에드워드를 끝까지 사랑해주는 것 같아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실된 사랑을 했고 받았으니 다행이라고. 그래도 에드워드가 지금도 세상 어디에선가 킴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 같아서 가여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약간의 무서워하는 마음은 남아 있었지만, 만약에 나중에 저 아저씨를 만난다면 친구 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007>과 쿵푸영화의 악당은 명확했다. 악당들은 보통 선글라스에 검은 양복을 입고 나쁜 일을 꾸몄다. 그리고 정의의 편에 선 주인공들이 신나는 액션으로 그들을 처단했다. 하지만 뎨이나 에드워드 같은 사람들은 그런 영화의 문법에 속해있지 않았다. 영화 속의 사람들은 무고한 뎨이나 에드워드를 마치 악당 대하듯 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특별히 악인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다르다는 데서 이런저런 오해가 있었고, 그 오해가 확장되어 비극을 낳았다.
뎨이와 에드워드는 단지 남들과 조금 달랐다. 삶의 출발선이, 외모가, 사는 방식이 달랐다. 그리고 그 다름 때문에 외로웠고 핍박받았음을, 어린아이였던 나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아이라도 알 수 있었다. 뎨이와 에드워드를 도와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저런 일을 겪기 싫다는 이기심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두 영화는 나의 세계관에 작은 균열을 남겼다. 세상의 악과 정의는 생각처럼 확실하게 구분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것'을 배척하는 일은 상처를 낳는다는 것을 알았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배척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깊이 자리잡았다. 나는 남들과 어디가 다를까? 남들이 내가 다르다는 걸 눈치챌까? 눈치챈다면, 영화 속 뎨이나 에드워드처럼 나도 외롭고 슬프게 살아가게 될까?
하얗기만 했던 마음에는 붉은 자국이 남았고, 나의 유년을 함께한 90년대도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