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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mpebble Feb 18. 2017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온몸은 단지 신체 부분들

전부를 모아 놓은 것이 아니다

장기와 팔다리와 머리카락과 손톱을

모아 둔들 온몸일 것인가?

온몸은 영혼이나 마음 같은

허깨비의 장난감도 아니다

어떤 설명의 칼도

저 단단한 온몸의 조각 한 점 떼어내 보지 못하리라

온몸은 바로 온몸

동어반복의 갑옷 속에

온몸의 밀고 나가는 동작만 있을 뿐

온몸으로 밀고 나간 온몸은

문득 밀고 온 길을 돌아본다

거기 흐드러지게 피어난 시가 있다


-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서문 중에서 (서동욱, 김행숙 엮음 / 민음사 / 2014)



요새 나는 온몸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친구들 또한 온몸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와 되게 열심히 사나 보다 하겠지만 실은 굉장히 힘든 나날들을 이 악물고 버티면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 그게 열심히 사는 거지 하겠지만 '열심히 산다'는 느낌은 아니다. '열심히 산다'는 건 왠지 호기롭게, 활기를 갖고, 자발적으로, 무언가 창조하고 생산하는 느낌이라서.


온몸을 다해 산다는 것은 - 주어지는 과제들을 끝내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순간순간 성실하게 대면하지 못하더라도, 가끔은 느려지고 가끔은 빨라져서 나조차도 자기 속도를 가늠하지 못하더라도, 매일매일을 아둥바둥 힘겹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다짐과 포기를 반복하면서, 외롭다가 즐겁다가, 못하겠다가 할 수 있을 것 같다가, 다시 외로워져서 조금 울었다가, 좋아하는 친구가 보낸 문자 한 통에 마음 한 켠이 밝아졌다가, 순식간에 깜깜한 불안함 속에 갇혔다가 하는 것이다. 왜 이런 반복에 갇혀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건 나와 내 친구들에 대한 얘기다.

그러니까, 지금을 사는 청년들에 대한 얘기다.

(워낙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친구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비꼬는 말이 아니다. 나는 정말, 깊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즐거워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친구들의 단순명쾌한 삶의 리듬이 부럽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고는 있는데, 이건 자발적인 것도 아니고 활기가 넘치는 작업도 아니다. 하루마다 주어지는 과제들은 누군가에겐 고시 공부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출근일 수도 있고 취업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우울증일 수도 불면증일 수도 정체성 고민일 수도 있고 가족과의 갈등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일 수도 있다. 내가 찾아간 것일 수도 있고 내게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 '하고 싶다'보다 '해내야 할 것 같거나 견뎌야 할 것 같거나 뚫어야 할 것 같다'에 가까운 것들. 안녕? 할 수도 없고 반가워! 할 수는 더더욱 없고 그래, 왔냐, 해보자, 해야 되는 것들.


그 과정에는 고통이 있다. 불안도 있고 공포도 있다. 내가 내 친구보다 더 수월하게 해내는 것도 있고 내 친구가 나보다 훨씬 쉽게 해내는 것도 있다. 그렇게 우린 지금도 온몸을 다해 밀고 나가고 있다.


동어반복의 갑옷 속에

온몸의 밀고 나가는 동작만 있을 뿐

온몸으로 밀고 나간 온몸은

문득 밀고 온 길을 돌아본다

거기 흐드러지게 피어난 시가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밀고 온 길을 함께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좋겠다. 티나지 않는 노력과 그 노력에 쏟아부었을 고달픔과 우울함 쓸쓸함 같은 건 정말 '흐드러지게 피어난 시' 처럼 예쁘고 슬프고 어쩐지 눈물 나게 생겼을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면 의미가 있다. 온몸이 밀고 나간 동작들을, 시간이 지나서 하나씩 돌아본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게 온몸으로 밀어 온 동작들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을 쓰고 있는데 옆에서 엄마가 저녁으로 뭘 먹지, 한다. 엄마의 과제는 매일매일의 끼니를 짓는 것이다. 엄마는 세 식구가 먹을 끼니는 매일매일 달라야 하고 아침점심저녁 달라야 한다는 괴로운 임무에 시달리면서 살았다. 나는 요리를 너무 싫어하니까 대신 재료를 사거나 엄청난 메뉴를 고안해낼 순 없겠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달콤한 케이크는 사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임플란트 수술을 해서 부드러운 것만 먹어야 하는 엄마는 저녁 메뉴로 두부를 구워야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분명 단 걸 먹고 싶을 테니깐 두부를 먹고 케이크를 짠 하고 꺼낼 것이다. 이것도 나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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