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은 단지 신체 부분들
전부를 모아 놓은 것이 아니다
장기와 팔다리와 머리카락과 손톱을
모아 둔들 온몸일 것인가?
온몸은 영혼이나 마음 같은
허깨비의 장난감도 아니다
어떤 설명의 칼도
저 단단한 온몸의 조각 한 점 떼어내 보지 못하리라
온몸은 바로 온몸
동어반복의 갑옷 속에
온몸의 밀고 나가는 동작만 있을 뿐
온몸으로 밀고 나간 온몸은
문득 밀고 온 길을 돌아본다
거기 흐드러지게 피어난 시가 있다
-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서문 중에서 (서동욱, 김행숙 엮음 / 민음사 / 2014)
요새 나는 온몸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친구들 또한 온몸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와 되게 열심히 사나 보다 하겠지만 실은 굉장히 힘든 나날들을 이 악물고 버티면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 그게 열심히 사는 거지 하겠지만 '열심히 산다'는 느낌은 아니다. '열심히 산다'는 건 왠지 호기롭게, 활기를 갖고, 자발적으로, 무언가 창조하고 생산하는 느낌이라서.
온몸을 다해 산다는 것은 - 주어지는 과제들을 끝내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순간순간 성실하게 대면하지 못하더라도, 가끔은 느려지고 가끔은 빨라져서 나조차도 자기 속도를 가늠하지 못하더라도, 매일매일을 아둥바둥 힘겹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다짐과 포기를 반복하면서, 외롭다가 즐겁다가, 못하겠다가 할 수 있을 것 같다가, 다시 외로워져서 조금 울었다가, 좋아하는 친구가 보낸 문자 한 통에 마음 한 켠이 밝아졌다가, 순식간에 깜깜한 불안함 속에 갇혔다가 하는 것이다. 왜 이런 반복에 갇혀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건 나와 내 친구들에 대한 얘기다.
그러니까, 지금을 사는 청년들에 대한 얘기다.
(워낙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친구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비꼬는 말이 아니다. 나는 정말, 깊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즐거워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친구들의 단순명쾌한 삶의 리듬이 부럽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고는 있는데, 이건 자발적인 것도 아니고 활기가 넘치는 작업도 아니다. 하루마다 주어지는 과제들은 누군가에겐 고시 공부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출근일 수도 있고 취업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우울증일 수도 불면증일 수도 정체성 고민일 수도 있고 가족과의 갈등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일 수도 있다. 내가 찾아간 것일 수도 있고 내게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 '하고 싶다'보다 '해내야 할 것 같거나 견뎌야 할 것 같거나 뚫어야 할 것 같다'에 가까운 것들. 안녕? 할 수도 없고 반가워! 할 수는 더더욱 없고 그래, 왔냐, 해보자, 해야 되는 것들.
그 과정에는 고통이 있다. 불안도 있고 공포도 있다. 내가 내 친구보다 더 수월하게 해내는 것도 있고 내 친구가 나보다 훨씬 쉽게 해내는 것도 있다. 그렇게 우린 지금도 온몸을 다해 밀고 나가고 있다.
동어반복의 갑옷 속에
온몸의 밀고 나가는 동작만 있을 뿐
온몸으로 밀고 나간 온몸은
문득 밀고 온 길을 돌아본다
거기 흐드러지게 피어난 시가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밀고 온 길을 함께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좋겠다. 티나지 않는 노력과 그 노력에 쏟아부었을 고달픔과 우울함 쓸쓸함 같은 건 정말 '흐드러지게 피어난 시' 처럼 예쁘고 슬프고 어쩐지 눈물 나게 생겼을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면 의미가 있다. 온몸이 밀고 나간 동작들을, 시간이 지나서 하나씩 돌아본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게 온몸으로 밀어 온 동작들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을 쓰고 있는데 옆에서 엄마가 저녁으로 뭘 먹지, 한다. 엄마의 과제는 매일매일의 끼니를 짓는 것이다. 엄마는 세 식구가 먹을 끼니는 매일매일 달라야 하고 아침점심저녁 달라야 한다는 괴로운 임무에 시달리면서 살았다. 나는 요리를 너무 싫어하니까 대신 재료를 사거나 엄청난 메뉴를 고안해낼 순 없겠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달콤한 케이크는 사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임플란트 수술을 해서 부드러운 것만 먹어야 하는 엄마는 저녁 메뉴로 두부를 구워야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분명 단 걸 먹고 싶을 테니깐 두부를 먹고 케이크를 짠 하고 꺼낼 것이다. 이것도 나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