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처음이죠?
" 먼저 올라가세요. 전 괜찮아요. 천천히 따라갈게요."
하아. 하아. 후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은지는 다른 신입과 함께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누가 등산이 쉽다고 했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은지는 애써 인상을 펴려고 했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보니 굴러서라도 내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 같이 가야죠. 같이 올라가려고 함께 등산하는 건데. 이제 여기만 가면 평탄한 길이라서 가기 쉬워요."
등산용 머리띠를 멋스럽게 두른 남자회원이 차분한 어조로 격려해 줬다. 가뿐하게 올라오던 분이라 기다리지 않고 혼자 올라갔으면 과장을 한 스푼 더해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올 수도 있을 시간이었다. 천천히 오는 세 명을 보더니 일식당을 운영하는 회원님이 내려오셨다.
" 아고, 많이 힘드시죠. 잠바가 땅에 끌리겠어요. 숨 쉬고 계시죠?"
" 지금 농담하신 거죠? 후후. 그럼 셰프님이 잠바 좀 들어주세요. "
" 주세요. 들어드릴게요."
농담처럼 건넨 한 마디에 셰프님은 신입회원의 백팩에 걸쳐져 있는 빨간 잠바를 손에 들고 성큼성큼 올라가셨다. 그렇게 느린 두 사람을 기다려 준 회원들이 옆에 있으니 좀 더 용기가 났다.
바위계단을 거쳐 다시 숨이 턱끝까지 차 오를 무렵 정상이 보였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을 보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잠시 즐긴 뒤 정상 근처에 일행들과 함께 앉아서 간식을 먹었다. 보온병에 든 뜨거운 물을 부으니 산 정상에서도 따뜻한 누룽지차를 마실 수 있었다.
" 일본에서 온 소금 사탕입니다. 시오캔디."
" 저당 초콜릿이에요."
" 딱 12분 삶은 반숙계란입니다. "
" 대만에서 맛보고 반해서 쿠팡에서 추가주문한 망고젤리 드세요."
각자 아끼는 등산 간식을 꺼내놓으며 서로 권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 등산 자주 다니시나 봐요. 어쩜 그렇게 다들 가뿐하게 올라가세요?"
" 한 달에 한 번은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야간 산행도 한 번씩 옵니다. 경치가 끝내주거든요."
" 밤에 멧돼지 나타나면 어쩌죠. 게다가 캄캄하니 앞도 안 보일 테고."
" 등산용 랜턴이 있어요. 멧돼지 혹시 보이면 눈 마주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돼요. 그럼 공격 안 합니다."
" 야간 산행 한 번 오면 반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던 그 야경을 볼 수 있어요."
당근 모임 사람들과 야간 산행을 가도 될까? 남자 회원들이 많은데 혹시 위험하지는 않을까? 공항에서 보던 그 야경이 궁금하긴 한데.
은지는 호기심 반 의심 반의 마음이었지만 믿을만한 셰프님도 간다 하니 야간 산행에 가고 싶었다. 회사 모임이나 친구 모임에서는 좀처럼 일 외에 다른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회사 관련 업무 얘기를 하지 않는 당근 모임에 가면 편안하고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꽉 막힌 전남친과 달리 운동을 즐기고 활달한 사람들이다 보니 화제도 다양하고 얘기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계절마다 변해가는 자연풍경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공항 야경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에라 모르겠다. 한 번 주선해 보자. 일행이 있을 때 같이 가야지.
" 괜찮으세요?"
어제도 지리산에 다녀왔다고 하던 신입은 힘이 드는지 땀을 흘리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첫 산행 때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어느새 은지는 신입의 보조를 맞춰 걷고 있었다.
" 네. 먼저 올라가세요."
" 같이 가려고 왔는데요. 같이 올라가요."
" 혼자들 먼저 올라가니 서운하긴 하더라고요."
" 아. 그러셨구나. 여기 젤리 드시고 좀 앉아서 쉬었다 가세요."
" 아니에요. 좀 쉬었더니 한결 낫네요. 올라가요. "
그렇게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다행히 전망대까지라서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도 셰프님과 다른 일행은 부리나케 가니 좀처럼 같이 갈 수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모임 주선자라 힘들다고 느린 회원을 내팽개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스틱을 가져오지 않았고 전망대 가기 전에 공원 산책까지 했더니 무릎이 아파왔다. 이번에는 내가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다들 먼저 내려가고 신입이 내 보조를 맞춰 주었다. 아픈 상태에서 신입과 함께 어둑한 산길을 걸어가자니 약간 두려운 맘이 들었다. 올라가는 길보다 불이 어두워서 혹시나 이 사람이 나쁜 맘을 먹으면 어쩌나 걱정하기 시작했다.
" 내려가면 저랑 같이 저녁 드실래요?"
" 네? 둘이서요?"
" 저는 다른 사람 신경 안 써요. 우리 둘만 괜찮으면 상관없잖아요."
" 아. 저는 내일 출근해야 해서 집에 바로 가려고요."
절뚝거리며 45도로 걸어가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답을 했다.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으로 심장이 콩닥거렸다. 얼른 내려가서 셰프님한테 따져야겠다. 같이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