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 농부 발터 클라이들Walter Kreidl 씨 가족
발터 클라이들 씨 부부와 아들 부부. 아들의 이름도 아버지와 같은 ‘발터’다. ⓒ대산농촌재단
유럽 알프스의 중심부 오스트리아 티롤주 슈와츠 지역에 있는 피르흐너호프Pirchnerhof는 발터 클라이들Walter Kreidl 씨 부부와 아들이 소 6마리를 키우며 감자와 밀, 보리 등을 재배하는 작은 농가다. 110년 전 조부가 터전을 잡은 후 그의 아들까지 4대째 살고 있다. 클라이들 씨 부부는 농사지은 밀로 빵을 굽는다.
“30년 전 할머니가 빵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팔았어요. 광주리 하나로 시작했는데 입소문을 듣고 찾는 사람이 늘어 점점 많이 만들게 됐죠. 그러다가 ‘게누스 크로네’(맛의 왕관)에 출품했는데, 계속 상을 받으니까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지금의 규모가 되었어요. 이제는 저와 아내, 아들이 할 수 있는 적당한 양만큼 만듭니다.”
농가 벽면에 걸려있는 상징과 메달이 클라이들 씨의 유일한 홍보수단이다.
농사지은 만큼만 빵을 만든다
‘게누스 크로네(GenussKrone, 맛의 왕관)’는 오스트리아 농업 프로젝트협회가 주관하는 지역특산 식품 인증제도로, 전국 중소규모 가족농과 가공품 생산자를 대상으로 빵, 생선, 치즈, 과일, 육가공품을 대상으로 2년에 한 번 지역 단위, 주 단위를 거쳐 전국 단위로 최고를 뽑는다. 클라이들 씨는 전통 빵으로 전국 대회에서 다섯 번이나 1위를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대규모 빵공장을 설립할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 ‘농부빵’을 비롯해 여섯 종류 빵 600개를 굽는다. 이 중 500개는 주로 지역주민인 예약 주문자들이 농장을 방문해 가져가고, 나머지 100개는 파머스마켓에 내다 판다.
“농사만 짓고는 도저히 살 수 없어 잼과 과일 농축액 같은 걸 가공하고 직판도 해요. 밀을 파는 것보다 빵으로 만들어 팔면 부가가치를 20배 높일 수 있죠.”
농민으로서 ‘정년퇴직’한 발터와 그의 아내 아그네스는 농민연금을 받는다. 농장은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2018년 봄 농장을 방문했을 때, 스위스 여행을 떠난 부모를 대신해 우리를 맞이한 사람이 발터 주니어였다. 아버지에 이어 ‘농민자격증’이 주어지는 농업직업학교를 졸업하고 마이스터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농업 보조금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하며, 농업을 지속하기 위한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여러 개의 다리, 농민의 자격
아름다운 풍광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알프스. 이곳을 지키는 이는 다름 아닌 농민이다. 풍경이 아름다울수록 농민의 삶은 고되다. 험난한 산과 골짜기가 많고 겨울도 길어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 고지대여서 농사짓기 힘들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농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EU와 정부는 보조금을 주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해 농민은 가공이나 농가민박 등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부단히 한다. 이것을 ‘여러 개의 다리’라고 부른다. 농업이라는 하나의 다리로만 온전히 서 있기 어렵기에 다른 다리를 만든다는 의미이다.
농업에 종사한다고 다 보조금을 받는 것은 아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기업적 농가와 농업적농가로 나누는데, AK라는 노동력 단위를 기준으로, 1AK 연 수입이 33,000유로(2018년 기준 한화 약 4천 2백만 원)를 넘지 않아야 농업적 농가로 인정하고, 그것을 넘으면 상업으로 간주하여 세제 감면 등 농민이 받는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식품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소농, 가족농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대기업 지향적인 우리의 농업정책을 돌아보게 하는 지점이다. 미래식품산업 도약도 좋고 다양한 농촌 일자리 창출도 좋지만,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묵묵히 실천하며 살아가는 선한 농민이 농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살피는 일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대산농촌문화 2019신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