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어 마을Weyher
바이어 마을 입구. 400~500년 된 집들이 이어져 있다.
독일 중서부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 주 에덴코벤Edenkoben, 이른바 ‘와인 가도’에 들어섰다. 끝도 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보며 한참을 달려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고풍스럽고 아담한 집들, 담벼락, 장식물까지 전체가 ‘포도’로 가득한 마을. 2016년 독일 마을경진대회에서 전국 2,400여 개 마을 중 11개 마을이 받았다는 금메달의 주인공, 바이어Weyher 마을이다.
바이어 마을 포도밭.
계속 ‘바이어 마을’이 되도록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마을 입구. 독일 농촌 여느 마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400~500년 된 집들입니다.” 마을 명예이장 안드레아스 뫼뵈스Andreas Möwes 씨가 말했다.
“777년에 마을이 생겨났다는 기록이 있어요. 한때 로마군의 병영이었는데, 그들이 포도나무를 가져와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마을 경관이 형성되었죠. 1689년에 큰 전쟁이 있었고 1700년에 도시를 재건해 지금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때마침 수리하는 집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외형을 보존하기 위해 곳곳에 단단한 지지대로 받쳐두고 내부의 벽을 허물고 교체하는 공사 중이었다. 집 안쪽 포도주 창고 앞에 박혀있는 ‘1566’이라는 숫자가 이 집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마을에는 워낙 오래된 집이 많은데 모두 외관은 보존하고 내부만 고친다. 이렇게 하면 훨씬 손이 많이 가고 돈이 많이 들지만, 뫼뵈스 이장은 “옛것을 보전해야 계속 바이어 마을이 된다”고 했다.
마을 전체가 포도로 장식되어 있다.
포도주를 콘셉트로 하여 만든 마을의 조형물
마을회관 벽면. 마을의 형성과 변천 과정을 그대로 기록해놓았다.
마을 회관에는 포도밭이 펼쳐진 커다란 그림을 배경으로 널찍한 무대가 있고, 벽면에 마을이 지금 모습을 갖추기까지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물이 걸려있다. 그런데 얼핏 봐서는 예전 마을 전경과 지금의 마을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복원했어요. 그러면서 빗물과 하수를 분리, 처리하도록 시설을 만들었고, 전기선과 인터넷 선을 바닥에 깔아 경관을 유지하고자 했어요.”
건물 외형은 과거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만 용도에 맞춰 수리한다.
“우리 마을은 미래가 있습니다”
뫼뵈스 이장은 풀밭 가운데 빨간색 지표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이 유치원이 들어설 자리입니다.” 예전에 마을에 있던 학교는 학생이 없어 폐교되었는데, 현재 바이어 마을에 6세 이하 어린이는 26명. 매년 4명 정도가 태어난다. 아이들이 늘자 주민들이 모여 유치원을 설립하기로 하고 부지를 마련했다. 청년들이 의용소방대를 조직해 위급 상황에 자발적으로 대처하고, 평균 연령 70세 마을 합창단을 비롯해 마을 주민의 네트워크가 다양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주민들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의회 사무실에는 이 마을에 살다가 1, 2차 대전 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사진과 얼굴, 그리고 행방불명자까지 벽에 걸어두었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마을의 명당’에도 역시 이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있는데, 뫼뵈스 이장은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 2차 대전 때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된 마을 사람들의 사진이 의회 사무실 벽에 걸려있다.
옛 모습을 살려 복원한 건물들은 소박하지만 멋스럽다.
포도밭 전경을 무대배경으로 한 마을회관에서는 주민들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마을에 아이들이 늘자 주민들이 모여 유치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유치원이 들어설 자리를 표시해두었다.
20년 전 “우리 마을을 보다 아름답게” 였던 독일의 마을경진대회 슬로건은 현재 “우리 마을은 미래가 있습니다Unser Dorf hat Zukunft”로 바뀌었다. 금메달을 어떻게 수상했나, 물어보니 이 대회는 전통을 보존 복원하면서 현대적 시설(전기, 하수도, 인터넷 등)을 잘 구축했는가, 생태환경을 잘 보존하고 있는가, 어린이와 노인 복지가 잘 되어 있는가, 마을 사람들의 교류와 자치모임이 활발한가, 마을 사업과 경제 순환이 잘 이루어지는가 등 모든 요소가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아름답게만 꾸몄다고 금메달을 받는 건 아니에요. 어떤 마을은 옆 마을의 홍수 피해를 막아줘서 상을 받은 경우도 있어요.”
청년들은 의용소방대를 조직해 위급상황에 빠르게 대처한다.
“마을 길도 넓히고 초가지붕 없애서 살기 좋은 새마을”을 만들던 시절로부터 계속 이름을 바꿔 시행되는 ‘마을개발사업’은 얼마만큼 진화했을까.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도 않고 주민들의 편의성도 떨어지는 생뚱맞은 결과물들을 보면서, “미래가 있는 농촌”의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정책에 철학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