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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동 Feb 17. 2024

어젯밤 신에 대한 담소

늦은 겨울밤. L과 나란히 누워 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L은 되는 일이 없어 차라리 죽는 게 최선이라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해결하지 못한 빚이 있고, 집은 몹시 지저분했다. 나는 이 상태로 네가 죽는다면 죽어서도 욕먹고 구천을 떠돌게 될 거라 했다. 실제로 빚과 집이 깨끗하지 못하단 이유로 죽음 후에 주변인들이 비난하는 걸 지켜본 경험이 있는 나로선 제법 진지한 조언이었다.


항상 노력이 부족한 자신을 탓하는 L은 신에게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필요할 때만 찾는 신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며, 자신도 신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을 향해 기도할 면목이 없어했다. 문득 학부 때 한참 고민하던 질문이 떠올랐다. '왜 나는 신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자신이 미울까.' 당시 교환 학생으로 온 외국인 친구는 항상 "땡큐 갓! 아임 스투핏 엔 레이지 벋 히 스틸 러브미! 소 아임 오케이!"를 외치며 노느라 학점이 빵꾸나고, 기숙사에서 쫓겨나더라도 아침잠을 포기할 수 없다며 새벽기도를 안 가는 대범함이 있었다. (당시 학교 기숙사는 평일 새벽기도를 나가야 하는 룰이 있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안수를 받고 좋은 목사로 살고 있다. 그에 반해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예배를 빠지거나 충실하지 않은 신자의 모습 발견하면 구원을 뺏길 것 같은 두려움에 떨며 기도하던 밤을 가졌다. 20살 동기들 대부분 그랬다. 나중에 공부하며 알았지만 한국 기독교 + 유교가 합쳐져 '사랑의 신'보다 '벌하는 신'에 더 익숙하고 교육받은 결과였다.


철학이 전공이고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어느 날 코 흘리게 학부생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여러분, 신은 여러분이 상상하고 공부하는 어떤 틀보다 항상 그 이상의 존재로 계십니다."


들었을 당시엔 '음. 그만큼 엄청나다는 얘기군.'이라 생각하고 넘겼지만, 나이 들고, 더 이상 예배당을 찾지 않지만 어느 때보다 신이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사는 지금은 그 이야기가 다르게 다가온다.


"L, 내 생각에 신은 필요할 때만 찾는다고 콧방귀 뀌고 삐지는 존재는 아닌 거 같아."


"또동, 하지만 나는 진짜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고 진짜 급할 때만 찾는 치사한 친구 같은 존재인 걸. 내가 너한테 그랬다면 너도 내 부탁을 안 들어주지 않을까?"


"L, 나는 신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 일이 생기면 삐지지. 나와 같은 수준이라면 그걸 어떻게 신이라 부를 수 있겠어. 신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건 네가 생각하는 신이란 틀 안에 가둔 거 아닐까?"


"하지만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잖아!"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고 했지, 능력이나 속까지 똑같이 만들었다곤 안 했어. 형상 안에 그 모든 게 포함되어 있다면 살인자나 네 뒤통수를 친 그 새끼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것도 신의 속성인가?"


"그건 자유의지도 줬기 때문이지. 원래는 선하고 선한 그런 거 아닌가?"


"신은 민족을 몰살한 적도 있어. 선하고 선한 그런 것만은 아니야. 그러니까 선과 악, 이분법으로 나눠서 신을 생각하는 거 자체가 내가 상상하는 신이란 틀에 가두는 게 아닐까 싶어."


"그럼, 내가 신을 향해 가끔씩만 기도한다 해도 신은 별 상관 안 한다는 거야?"


"응, 내 생각엔 그래. 너무 사랑해서 만들었다잖아.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잖아. 그러니까 지난날 잊고 사랑만 하면서 살라고 아들도 보냈잖아. 말 다했지 뭐."


"그럼, 혹시 내가 자살하더라도 지옥 안 가는 거야?"


"우선 성경엔 자살하면 지옥 간다, 천국 간다,라고 정확하게 명시된 건 없어. 그래서 그건 나도 몰라. 그대신, 집도 이 꼬락서니고, 빚고 안 갚고 가면 살아 있는 사람들한테 구전이 되도록 욕먹을 거야. 그건 확실해.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한 건 고통 없이 죽는 건 돈 많이 든다. 그러니 죽음도 날로 먹을 수 없어. 그냥 살아."


우리 담소는 그렇게 끝났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편한 죽음보다 싼 게 배달음식이니 이거나 먹고 일이나 하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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