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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동 Jan 13. 2024

뻔한 얘기지만 환경을 바꾸면

진짜 뻔한 이야기

자신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짐하는 데까지 십오만 년 정도 걸리고, 실행하는 건 다음생인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그게 바로 나다! 마음을 다잡는데 오래 걸려서 나중엔 뭘 다잡으려 했는지 잊을 때도 있다. 생각의 먼지와 함께 멀리멀리 사라진다. 기록이라도 안 남겨두면 오랜 시간 후 문득 '아, 맞다.' 한다. 유통기한 지나버린 다짐과 각오는 하찮고 별 볼 일 없게 구겨져 있다.


극단의 조치는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책상 위치 바꾸는 것으론 부족하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다. 그럴 땐 보통 이사를 하거나, 장기 여행을 떠난다. 부수적인 리스크가 많지만, 하다만 다짐들에 깔려 누워 있는 것보단 낫다. 어쩔 땐 작은 변화로도 활력을 얻고, 스스로 자가발전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사는 게 지친다고 느낀 게 초등학교 때부터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을까? 세상에 이런 바보는 나밖에 없지 않을까 했을 때, 상담 선생님은 'ㅇㅇ님 정도면 양호한 편입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봤다. 온화한 얼굴과 말투로 얘기하면서 선생님의 손이 컴퓨터에 갑자기 뭔가를 엄청나게 적고 있는 걸.


주변 환경을 바꾸겠다는 결심이 오래 걸려서, 선생님이 대신 결정해 줬다. 씨알도 안 먹힐 침대 위치를 바꾸는 건 아니다. '아, 그건 좀 과격한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문의가 괜한 전문의는 아닐 테니.


글로 쓰기 민망해서 했던 방법은 쓸 수 없지만, 결론은 이 세상과 절교하고 평행 우주로 떠나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곰곰이 돌아보면 스스로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사는 게 부담스럽고, 실행력이 느리고, 끈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환경을 바꾸니, 전보다는 속도가 좀 붙고 '단호함'과 '적당한 거리감'이란 단어가 인생 사전에 등재했다.


아. 하나 정도는 환경을 바꿨던 일을 쓸 수 있겠다. 그건 종이책을 집에 두지 않는 것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소장하는 것 또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했다. 읽지 않아도 사모으는 인테리어 책도 많았다. 더 이상 책을 사지 않고, 있는 책은 팔거나 나눠줬다. 읽고 싶은 책은 전자책으로 읽는다. 읽는 행위는 여전히 풍족했지만 종이책으로 소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공허하고, 머릿속에서 책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식이 술술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불안했다. 책장마저 버려서 텅 빈 벽이 나를 향해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릿속 아우성이 익숙해질 무렵, 방에 책이 없는 환경은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쌓여있는 책을 보고 이미 뭔가를 알고 있다 착각하며 자아의탁 하지 않고, 스스로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무엇을 사유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책을 더 읽고 싶은지, 아니면 다시 읽고 싶은지 결정한다. 누군가에겐 커튼 색깔 바꾸는 것보다 시시한 일이지만 나에겐 효과가 있었다.


자신의 방식에 맞게 환경을 바꿔보는 것. 재작년부터 가슴에 콱 박아 놓고 사는 '데페이즈망'과 너무 찰떡궁합이란 생각에 속으로 '히히'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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