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동 Jan 11. 2024

부캐 이야기

다중이어도 괜찮아.

몇 년 전 클럽하우스가 흥하던 때가 있었다. 코로나에 갇혀 이불 뜯어먹고살던 많은 사람이 짧지만 강렬하게 클럽하우스에 미쳐 잠도 안 자고 모르는 누군가와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난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성대모사에 목숨 거는 줄 몰랐고, 다양한 방면의 고수들이 코로나로 막힌 입을 털며 자신의 지식과 노하우를 나눠주길 기꺼워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에도 속을 따 꺼내어 얘기하는 장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나에겐 40대 들어 가장 자극적이고, 신선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때 클럽하우스를 하지 않았다면 나의 부캐들은 욕망을 누르며, 그냥 '또동'으로 살았을 것 같다.


한 명의 인간이 가진 다면적인 모습을 어렸을 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비겁해 보였고, 뒤가 구린 사람 같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대표적으로 그 다면적인 인간이 자신이라서, 나는 나와 항상 싸워야 했다.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면 비난받을 거란 생각도 많이 했다. 그리고 클럽하우스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다중이가 폭발해 버렸다. 나의 여러 욕망이 자신과 남을 해치지 않는다면 표출해도 되더라. 괜찮더라. 이젠 '무단 횡단하며 쓰레기 줍는 사람'을 이해 못 해서 머릿속이 쥐가 나지 않더라.


그렇게 몇 개의 부캐가 만들어졌고, 부캐들은 이제 하나가 되지 않는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설프지만 괜찮게 살아간다. 종종 다음 달 카드값을 위한 회동을 하며 이번엔 누가 갚을지 논의한다. 성과가 다들 대단하진 않지만 속에서 곪는 '나'는 없다. 부캐들 마다 맺는 인연이 다르고, 보이는 성격이 좀 다르다. 스스로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덕분에 괴이한 누군가 만나도 놀라서 도망치는 일도 줄었다. 씻기 귀찮아서 누워버리는 게으름뱅이도 나고, 돈도 안 되는 일에 밤새며 일하는 미친놈도 나고, 십 년 후에나 있을 고양이와의 이별이 슬퍼서 혼자 훌쩍 거리는 걱정쟁이도 나다. 일하러 나갈 때마다 그에 맞게 다른 이름과 성격을 들고나가는 것도 나다.


나는 그런 '나'들이 나쁘지 않다. 


부캐 근황 : 올해 상반기, 부캐 중 하나가 '신진예술인 증명'을 신청한다. 자격요건이 다 갖추어졌다. 기특한 녀석. 글쓰는 부캐는 역시 게으르다. 매일 하는 키워드 글쓰기를 못하겠어서 일주일에 세 개만 쓰는걸로  스스로 합의봤다고 한다. 경력단절 대마왕 부캐는 이제 장기 여행 다시 시작한다며 열심히 푼돈을 모으고 있다. 처음 듣는 자격증을 따겠다고 기웃거리는 애도 있고. 그렇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스페인 시간으로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