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문장을 이렇게 많이 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이런 글들에 위로받고 그러기를 다짐하기도 했었다. 모자라고 부끄럽고 안타까운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독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듬는 손길이 사라지면 이내 다시 울음을 터뜨리는 갓난아기처럼 다시 실망하고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이제는 볼 때마다 슬퍼지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냥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일까. 굳이 그렇게 말하는 이면에는 지금의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혹은 사랑받기에 부족하다는 무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받지 못한 사랑에 안타까워 스스로 동정하고 연민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의 슬픔은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한없이 강해질 수만은 없다. 언제나 끝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을 버티는 삶이기에, 조금만 방심하면 고약하고 더러운 모습들이 고개를 쳐들고 솟아오르기 때문에, 나를 향한 나의 사랑은 그때마다 무너졌다. 끝없이 구덩이에 빠지고 헤어 나오기를 반복하며 영영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만을 애절하게 붙잡는 것 같아서.
그래서 슬프고,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 누구라도 사랑받기에 완벽한 사람이 있었던가. 어두운 밤이 와도 한없이 빛이 나는 사람이었나. 작은 흠 하나 없이 한결같은 사람이었나.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미 갖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능력을 모르는 체 하고 있는 걸까. 먼저 있는 그대로의 곁을 사랑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순간마다 서로를 채워줄 수는 없는 걸까. 마치 스마트폰만을 쳐다보고 있는 지하철의 풍경처럼 거울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가득한 광장을 보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슬프다.
이 생각이 정말 좁디좁은 세계에 살고 있는 나만의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아니라면 오로지 나만이 스스로를 계속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바보였으면 좋겠다. 모두가 계속해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 치이기에, 당신을 사랑하려 한다. 곁을 지키는 당신.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당신.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 당신. 응원을 아끼지 않는 당신. 눈물을 아는 당신. 웃음을 쥐어짜는 당신. 닳고 닳은 책장을 넘기는 당신. 끝없이 돌아보는 당신. 떨리는 펜을 놓지 않는 당신. 온 힘을 다해 노래하는 당신. 애써 일어서는 당신. 당신, 당신.
그 수없이 많은 당신을 사랑하겠다.
무너진 당신의 일부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기쁘고,
그 사랑이 돌고 돌아 일부라도 다시 온다면 더없이 감사하겠다.
그러니 나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겠다.
있는 그대로의 곁을 사랑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