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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근 Sep 10. 2020

난생처음 국제선

나의 사랑하는 그리움 02

떨린다. 꾹꾹 눌러 담은 리어와 백팩 하나를 메고 인천 공항으로 향한다. 보통 국제선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비행기 출발 두 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세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도록 집을 나섰다. 나는 분명 공항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라 생각했다. 공항버스를 탈 정류장으로 향한다. '드르르르르' 시멘트 바닥을 구르는 리어 바퀴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다. 담담해 보였던 엄마는 울음이 터졌다. 19시간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인천 국제공항이구나'


인천에서 3시간 30분을 날아 홍콩으로 간다. 홍콩에서 3시간을 기다렸다가 약 11시간을 날아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국제공항으로 간다. 끝으로 뉴질랜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1시간 30분을 날아 최종 목적지인 남섬의 넬슨으로 간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다. 인천 국제공항에 견학을 왔던 기억은 어렴풋이 난다. 그 뒤로는 처음인데 한 20년은 지났다. 난생처음 국제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 국제공항에 왔다. 어리바리하게 공항을 돌아다녔다.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도 잊은 채 말이다. 발권을 위해 항공사 데스크를 찾아갔다. 해외 항공사인데 한국인 직원이 앉아있다. 다행이다. 아직 두 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비행기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하다. 면세점 구경은 생각도 안 하고, 탑승장소로 이동했다. 인천공항 지하에는 거대한 지하요새가 있었다. 놀라웠다. 트레인을 타고 탑승장으로 향했다. 탑승구 앞 카페에 앉으니 마음이 놓인다. 한 시간이나 남았다.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이야.



'괜찮아, 만 원도 안 할 거야'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창가에 앉고 싶었다. 아쉽지만 실패했다. 아직 두 번의 기회가 있으니 실망하기는 이르다. 앞 좌석의 뒤통수에 작은 모니터가 있다. 그러니까 내 눈앞에 말이다. 영화도 나오고, 드라마도 나온다. 참 좋은 세상이다. 홍콩으로 가는 동안 한국영화를 한편 보려 했다. 그런데 내 자리는 이어폰이 한쪽밖에 나오지 않았다. 모니터를 껐다.


서양인 승무원이 내게 다가왔다. 뭔가에 대해 할지 말지를 묻는 것 같다. 하겠다고 대답하면 왠지 결제를 해야 할 것만 같다. 나는 침착하게 "No"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나는 한번 더 정확하게 "No problem"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나만 빼고, 기내의 모든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다. 옆사람이 식사하고 있는 메뉴를 보니 퍼즐이 맞춰졌다. 승무원은 내게 "Chicken or rice?"라고 물었던 것이다. 내 항공료에 포함되어 있는 '기내식'이란 것이다.


- 식사시간이에요. 밥 먹을래요? 치킨 먹을래요?

- 아니요.

- 식사 안 해요? 밥이랑 치킨, 둘 중 하나를 고르세요.

-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저는 한국사람인데요'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4시간의 시차를 이동하는 비행이다. 또 창가 자리가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실망이 조금 크다. 첫 비행에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안정적으로 기내식을 받아냈다. 내 생에 첫 기내식은 카레소스를 얹은 치킨이다. 비닐 포장된 작은 치즈 조각도 하나가 있다. 괜히 더 깊은 맛이 난다. 치즈맛도 모르면서 말이다. 첫 기내식을 뉴질랜드행 비행기에서 하다니. 의미 있다. 그렇게 합리화한다.


뉴질랜드 국적기의 담요가 너무 포근하고, 감촉이 좋다. 그런 반면 내 양 옆으로 앉은 중국인 아줌마들이 너무 시끄럽다. 내 양 옆으로 앉아 쉴 새 없이 썰전을 펼쳤다.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정말 '썰전을 펼치다'라는 말이 어울린다. 오른편에 앉은 중국인 아줌마가 나에게도 뭔가를 얘기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를 끝까지 듣고 난 뒤, 나도 답을 했다. "Im Korean" 아줌마들이 잠시 조용해졌다.



'초록색 줄, 10분, 걷다'


잔뜩 걱정했던 입국 심사는 간단했다. 소지품을 검사하는 공항직원 아저씨가 내 가방을 들여다본다. 유창하지 않은 한국말로 내게 물었다. "엄쉭 엄숴요?" 그는 한국말로 물었지만 나는 영어로 답했다. "No, I don't have food" 쪼그라들어 있던 마음이 아저씨 덕분에 풀렸다.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고, 넬슨행 국내선 비행기가 출발하기까지는 한 시간이 남는다. 서둘러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입국 수속을 모두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나와서야 헤매기 시작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국내선 비행기 탑승장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공항 내를 돌아다녀도 국내선 탑승장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방황하고 나서야 안내센터 직원에게 물었다. 영어로 설명할 수 없다. 다짜고짜 "Excuse me" 하며, 눈 앞에 항공권을 들이밀었다. 안내센터 직원의 눈빛이 변했다 "OK! Come on!" 건물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따라갔다. 이내 열의 있게 내게 무언가를 설명했다. 'Bus'라는 단어가 들리긴 했다. 내게 셔틀버스 타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 했나 보다.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가 다시 지시를 내렸다. "OK Come on! This green line 10 minuets walk!" 바닥에 있는 초록색 선을 보며 내게 지시를 내렸다. 완벽하게 알아 들었다. '초록색 선, 10분, 걷다' 완벽하다. "OK! Thank you!" 나는 지시를 수용했다. 정확히 10분이 걸렸다.


- 도와주세요!

- 나를 따라와요!

- 저쪽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갈 수 있어요.

- 네?

- ......

- 좋아요. 따라와요. 여기, 이, 초록색, 라인, 걸어서, 10분!

- 감사합니다!




'한 번만 앉으면 안될까요'


드넓은 잔디밭 가운데 길게 뻗은 활주로, 양 날개에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작은 비행기가 시동을 걸었다. 이렇게 작은 비행기를 탈 줄이야. 창가에 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좌석표를 확인하며 기내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창가에 앉았다. 사실은 모른 척하고 창가에 앉았다. 나는 외국인이라서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 제발 빈자리이길 바랐다. 잠시 후 예쁜 여성이 내 옆에 섰다. 나는 곧 원래 내 자리인 통로 측으로 옮겨 앉았다.


- 저기... 거긴 제자리이고, 당신 자리는 여기에요.

- 아, 미안해요. 몰랐어요.


결국 세 번의 비행 중 단 한 번도 창가에 앉지 못했다. 어쨌든 그녀는 예쁘고, 친절했다. 왠지 첫 외국인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그녀가 가방에서 비스킷 하나를 꺼내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잘 뜯어지지 않나 보다. 포기할 법도 한데 한 숨까지 쉬어가며 계속 시도한다. 마치 내게 도와 달라는 제스처이다. 내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칼로 잘라야 하는 포장이다. 절대로 사람 손으로 뜯을 수 없어 보였다. 그녀가 끙끙거리는 게 너무 잘 보인다. 도저히 모른척하고 외면하기도 민망하다.


- 내가 도와줄까요?

- 오, 그래 주시겠어요?

- 아, 안 되겠어요.

- 괜찮아요. 고마워요.


한국인이었다면 예의상 "괜찮아요."라고 했을 것이다. 그녀는 단번에 내게 비스킷을 넘겨주었고, 나는 뜯지 못했다. 창피했다. 나는 안될 줄 알았다. 분명히 가위나 칼로 잘랐어야 하는 포장지였다. 넬슨에 사는 사람 같았다. 이렇게 옆자리에 앉은 것도 인연이다. 어쩌면 나의 첫 넬슨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얘기를 나눴지만,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영어 문장이 몇 개 없다. 친구가 될 인연은 아니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렸고, 나는 비행기에서 내렸다. 흐린 날씨지만 무척이나 상쾌하다. 기분이 좋다. 이미 고향 같다. 활주로에 내려 공항 터미널까지 내려가는 그 1분 남짓한 시간이 너무나 인상 깊다. 오묘한 감정이 든다. 행복하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넬슨의 첫인상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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