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10개월 차에 접어들던 때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두 달을 앞두고, 두 달 남짓 뉴질랜드의 남 섬과 북 섬을 여행했다. 남은 두 달 동안 여행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도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이래저래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러 다니는 중에도 이 여행을 시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짧은 우여곡절 끝에 여행은 시작되었다. 이것저것 할 것 다 해보며 즐기기보다는 그냥저냥 가보지 못했던 뉴질랜드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돌아보며, 좀 여유롭게 휴식을 가지는 여행이었다.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특별한 에피소드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내 나름 많이 보고 느끼며 하루하루 깊은 생각에 잠겼던 여행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휴식을 가졌던 여행이다.
원래 워킹홀리데이로 뉴질랜드에 머무는 1년 동안은 여행을 할 계획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수개월 안에 여행을 목적으로 다시 뉴질랜드를 찾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뉴질랜드에 올 때 가져왔던 계획들과 10개월이 지난 지금의 생각과 계획이 많이 달라졌다. 과연 한국으로 돌아간 뒤,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리 개운하지 않은 상태로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결정하고, 짧은 준비 끝에 시작된 여행이다.
내가 나 스스로 “여행을 했다.”라고 할 수 있는 여행이 세 번 있다. 스물네 살 자전거에 텐트와 생필품을 싣고 40일 동안 백령도, 제주도, 울릉도를 포함해 3000km를 떠돌았던 자전거 전국 일주. 스물일곱에 배낭 하나 메고 18일 동안 서울에서 해남을 거쳐, 제주 마라도까지 걸었던 국토종주 도보여행. 그리고 걸어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돌기 위해 출발했지만 거대한 태풍이 제주도를 뒤덮은 바람에 반 바퀴밖에 돌지 못했던 여행이다. 물론 지금까지 며칠 짜리 짧은 국내 여행은 꽤나 다녔지만, ‘여행을 다녀왔다.’ 라기보다는 ‘놀러 갔다 왔다.’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이번 뉴질랜드 여행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 자신과 싸워왔던 지난 여행과는 많이 달랐다. 이동수단이 무동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로서는 새로운 여행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여유와 휴식, 원 없이 누릴 수 있었던 게으름이 가장 큰 행복이었을지 모른다.
49일 동안 뉴질랜드 남섬과 북섬의 크고 작은 지역들 스물다섯 곳을 들렀다. 열일곱 번은 홀리데이파크에서 텐트를 치고 숙박을 했고, 스물한 번은 백패커스에 머물렀다. 여행 막바지에 갈비뼈 세 대에 금이 가는 조촐한 사고가 있었다. 그 바람에 열흘 내내 텐트를 펼치지 않고, 백패커스에서 지냈다. 기차역과 공원에서 노숙을 한 적도 있다. 블레넘에서 만나 지인과 SNS로 알게 된 지인에게 잠자리를 얻기도 했다.
주 이동 수단은 버스였다. 버스를 포함해 차량으로 이동한 거리가 약 5430km, 트랜츠 알파인 기차로 그레이마우스와 크라이스트 처치를 왕복한 거리가 480km, 넬슨에서 오클랜드로 날아갔던 비행기 이동거리는 550km, 여행의 시작이었던 스튜어트 아일랜드와 블러프를 왕복한 여객선 이동 거리가 100km가량 된다. 49일 동안 두 발로 직접 걸은 거리도 500km는 넘을 것 같다.
먹는데 쓴 돈이 844불, 홀리데이파크와 백패커에서 사용한 숙박비가 899불, 그리고 버스, 비행기, 여객선, 기차 등 모든 교통비와 몇 번 안 되는 투어 패키지 비용이 1,072불, 생활필수품과 소모품, 통신비가 375불, 여행 중에 구매 한 카메라 관련 제품들, 충전기, 케이블, 카메라 수리비 등 여행경비와 별개로 여행 중 필요한 것에 지출한 금액이 375불이다. 49일간 뉴질랜드의 남 섬과 북 섬 25개 지역을 방문하며, 교통수단, 숙식비 및 생필품, 몇 가지 체험상품에 지출 한 여행경비가 3000달러 정도 들어간 샘이다. 우리 돈으로 250만 원에서 280만 원 정도 들었으니, 약 두 달 동안 뉴질랜드의 25개 지역을 돌아다닌 것치곤 적게 들었다.
생각보다 여행경비를 많이 지출하진 않았지만, 그만큼 여행의 흐름이 소박하고, 잔잔했다. 한 편으론 심심했고, 한편으로 여유로웠다. 사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어쨌든 이번 뉴질랜드 배낭여행은 언젠가 도전하게 될 테아라로아 트레일의 초석을 다지는데 충분히 도움이 된 듯하다. 그리고 물론 그 잔잔한 여행 또한 내게는 좋은 시간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생에 첫 해외 배낭여행이었다. 그리고 가장 긴 여행이었다. 기억 속의 그 순간순간, 그때는 정확히 내가 그곳에 있었는데 이젠 마치 꿈을 꾸었던 것만 같다. 많은 아쉬움을 남긴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조목조목 깊고 진한 이야기들을 꺼내어 볼까 한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나의 사랑하는 그리움, 뉴질랜드 여행 이야기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