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싫어도 도와줘야 할까?
요즘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을 보러 가기 전에 아이들과 시리즈 정주행을 시작했다. [스파이더맨]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각 시리즈의 1편에는 공통적인 스토리라인이 있다. 자신에게 인색했던 상대방에게 강도가 나타나 돈을 빼앗자, 주인공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아무 도움을 주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복수를 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의 행동이 고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강도는 도망치던 중 우연히 주인공의 삼촌을 만나 총으로 쏘고, 삼촌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것을 발견한다. 스파이더맨은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며' 자신이 보내주었던 강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철없던 어린 스파이더맨의 성장 스토리는 그렇게 시작된다.
스파이더맨이 도와줄 수 있었지만 도와주지 않았던 이유는 두 가지다.
1) 상대방에게 화가 나 있었고
2) 설마 내가 놓아준 이 도둑이 내 삼촌을 죽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지만 어쩌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1) 감정을 분리해서 반응하지 않고 대응하는 훈련
2) 이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모두 "훈련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친절>에서 저자는 '인류가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동이 유전적으로 진화된 것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를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그 결론은 이것이다. "그 유전자들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몸을 통해 아니면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다른 사람들의 몸을 도와줌으로써 자신의 번식에 유리한 일을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것이다." 즉, 우리가 타인을 도와주는 행동은 이타적인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가르치는 교훈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도, 찰스 다윈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당신이 만일 나처럼 각 개인이 공동의 선을 행하기 위해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 협력하는 사회를 건설하고 싶다면, 생물학적 본성으로부터는 아무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로 태어나니, 너그러움과 이타심을 가르치도록 하자.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인류 전체에 대한 관심은 일부 사람만 갖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전파되며, 결국에는 일반 대중의 여론에 녹아들어 가게 된다. -<인간의 유래>, 찰스 다윈
마이클 맥컬리프는 연민은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는 결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먼저, "너그러움과 이타심은 왜 수고를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그 이유부터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이다. 역사 속 모든 논쟁에서 설득력을 가졌던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연민은...
우리에게 감사와 영광을 가져다주고,
가난과 절망의 부작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며,
경제를 위축시키기보다는 발전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갖게 해 주며,
깊은 의미와 성취감을 안겨준다.
너무 추상적이라 와닿지 않는다면 이렇게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상대방을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상대방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기 때문이다. 이것은 1) 우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참아야 하는 것과 2) 실제로 나에게도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나눌 수 있다.
나에게 해를 끼친 상대방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게 불가능해 보인 보상금을 요구하던 세계 정상들에게, "독일의 젖을 짜내려면, 일단 독일을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케인스의 말과도 연결된다. 우리가 상대방을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문제가 나와 상관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에 가깝다.
그래서 수렵·채집 사회의 원칙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이었다. 낯선 이를 도와줄 경우, 당신은 따뜻하고 세심한 집주인이라는 평판을 쌓음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당신 손님을 감동시킬 경우, 그 사람이 이후 자기 부락에 살고 있는 당신 혈육한테 더 잘할 것이며, 아니면 나중에 당신이 그 사람의 부락을 방문할 때 따뜻한 대접을 해줄 것이니 말이다. -<타인의 친절>, p. 189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 연민을 갖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지금 이 감정을 억누르고 상대방을 챙겨야 하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희생하면서도 상대방을 위해 선의를 베푸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의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앞으로의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브래들리 월드롭은 한 여성을 살해하고, 아내를 야만적으로 공격하고, 아이에게 정서적 상처를 남겼다. 이런 내용을 타이핑하는 것만으로 저절로 주먹이 쥐어진다. 원초적 본능을 따르자면 당장이 라도 정의의 사도가 되어 복수에 나서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보았듯이 우리의 본능은 틀리는 경우가 많고 이성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그 본능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무고한 범죄의 희생자에 게 슬픔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고 적절한 행동이다. 하지만 브래들리 월드롭도 일정 부분 연민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희생자에게 느 끼는 슬픔을 지우지 않고도 그런 살인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에게는 양쪽 모두를 위해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있을까? 폭력 범죄자들을 당장 감옥에서 풀어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폭력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범죄자에게도 신경을 써야 한다... (중략) 범죄자들을 사악한 영혼이라며 무심히 경멸해버린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하지만 월드롭에게 눈곱만큼의 연민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앞으로의 비극을 예방할 수 있는 좀 더 생산적인 길로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p.234
역사 속에서 많은 통치자들은 고아와 미망인을 도우면 존경과 충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가난이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을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는 가난을 완화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더 적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평판을 얻었다. 하지만 돕는 행동은 이런 식으로 대가성이나, 효용성 혹은 기회비용이 커서만은 아니다.
일례로 예전에 방송되었던 EBS에서 1등의 공부 방법을 관찰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성적 최상위 아이는 자신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가 질문해도 무시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는데, 이것을 보고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은 한 강연에서 "포용성이 최고의 성장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쉬운 언어로 설명해주는 것은 장기기억으로 가는 효율적인 학습법일 뿐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질문 그 자체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뿐 아니라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고 성취감, 책임감, 감사함을 통한 기쁨을 얻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브 앤 테이커>에서 애덤 그랜트가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역설한 이유, 주는 사람 Giver이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있었던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여러 책을 읽으며 늘 마지막 결론은 '그러니..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능력과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타인의 친절>은 그 연민을 기르는 방법에 대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연민은 왜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한지, 왜 우리는 (유전적으로 반하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왜 낯선 사람을 도와야만 하는지", 친절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책이다. 많이 발전해 왔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방법과 이유를 찾았다면,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인정과 질책으로 배운다.
사람들은 존경하는 롤 모델로부터 배운다.
주어지는 인센티브를 따르면서 배운다.
직접 행동하며 배운다.
그러니 이 모든 접근 방식을 활용해 너그러움과 이타심을 가르치도록 하자.
-<타인의 친절>, 마이클 맥컬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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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친절>, 마이클 맥컬러프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빌 설리번
<기브앤테이크>, 애덤 그랜트
이미지 출처: [스파이더맨], 마블 코믹스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