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사 May 29. 2022

주 30시간 단축근무? 답하는데 3초도 걸리지 않았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수시로 면접과 입사를 바쁘게 반복하던 어느 날, 한 입사 예정이었던 분께 다음과 같은 문자를 받았다.

22. 4. 28 받은 문자 (사용 허락 받음)


자신의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해 당장 인력이 필요한 회사가 곤란해질 수 있으니 재고해 보셔도 자신은 이해한다는, 사려 깊은 내용의 문자. 속상한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그보다 먼저 나는 이 분의 의지와 태도를 확인해야 했다. 자발적인 포기인가, 아니면 일하고 싶지만 상황에 따른 비자발적 포기인가- 전자라면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싶었고, 후자라면 임신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다행히(?) 후자였고, 그렇다면 오히려 쉬웠다. 우리 회사는 "가족 친화적"인 회사를 지향하지 않았던가.


속상한 마음이 먼저 들었던 것은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왜 저 문자에는 곤란하게 해 드려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결혼을 하고 방송국으로 취업을 준비하던 28살의 나는 임신을 하게 된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산부인과에서 임신 확인을 받고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지나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보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어린 20대,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 이 생각뿐이었다. '내 인생은 이제 망했구나.' 간절히 일하고 싶던 나에게 임신은 커리어에 있어서 사형 선고와 같게 느껴졌다. 나는 세상에서 불필요한, 효율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결국 나는 자발적으로 취업을 포기했다. (나중에야 개인 사업자 등록을 했지만..) 임신은 여성의 삶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자연 현상인데 왜 죄송하고 미안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제 이사가 된 나는, 세 아이의 엄마인 나는, 여기서 뭔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가 임신을 했을 때 회사는 임신 초기(12주 차까지)와 후기(36주 이후)에 한해 30시간 단축 근무를 허용해야 하는데, 사실 12주가 지나면 컨디션이 바로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시기를 구분하는 것이 임산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참고 다닐 뿐이다. 그런데 만약 임신 전체 기간이 30시간 업무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조심스러운 나의 제안에 고 대표님이 답을 하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합시다!"


순간 찌릿한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쉽다고?!'


공백은 24주 X10시간. 시간당 최소 2만 원이라고 계산을 해도 풀타임과 비교했을 때 480만 원의 손실을 회사는 감당해야 한다. 공백을 메꾸기 위해 새로운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 우리에는 임신을 준비하는 다른 여직원들도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초등학교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에게는 월 20만 원씩을 지원해주고 있지 않았던가... 직원에게 더 일을 많이 시키고 돈을 적게 주어 회사의 이익을 최대로 하기 위했다면, 직원을 돈 만드는 기계라고 생각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회사는 왜 이렇게까지 할까? 직원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보다 직원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직원에게 투자하는 회사는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우리 회사는 장기적으로 생존이 가능할까?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이런 가치는 지속 가능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답을 해준 책이 <하트 오브 비즈니스>다.


나는 베스트 바이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몇 년을 보내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때 겪은 경험을 통해 ‘목적’과 ‘인간관계’야말로 비즈니스의 중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다. 사업 기반을 조성할 때 핵심은 목적과 인간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난 몇십 년간 알고 있던 자본주의는 지금 위기에 봉착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오늘날의 사회적 분열과 환경 악화를 자본주의 체제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직원과 고객은 물론 주주도 단순한 투자 수익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업에 기대한다. 직장인들이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보다 최근에는 새로운 시민 평등권 운동이 일어나고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가 발발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엄청난 도전들을 극복하려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싸움에서 기업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기업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하트 오브 비즈니스>, P.32-33


'목적'과 '인간관계'야말로 비즈니스의 중심이라는 위베르 졸리, 전 베스트 바이 회장은 책을 통해 '이렇게 해도' 회사는 지속 가능하며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낸다. 핵심은 직원들이 각자 존재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가치를 인정받아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회사의 목적과 직원 각자의 원동력을 일치하게 만들면 회사 전체가 한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위베르 졸리의 이런 확신에 찬 믿음은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한편으로 우리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받은 것 같다.


최근 보기 시작한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를 보면서 억지로 일하고 있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들을 보며 나는 괴리감을 많이 느꼈다. '왜 저렇게 우울하고 힘들어하면서 일을 해야 되지?'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이 드라마가 인기인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니까. 일에 치여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의 <하트 오브 비즈니스>의 일부를 전해주고 싶다. 특히 의사결정권이 있는 리더분들께. 일은 수단일 뿐,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직원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고. 준비된 회사가 준비된 직원들이 만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는다. 내가 상상스퀘어를 만나 날개를 단 듯 즐겁게 일하고 있는 것처럼. 회사가 직원에게 먼저 주면, 벌어지는 일을 기대해보자.


일은 참고 견디는 게 아니었다.
일은 좋은 것이었으며, 각자의 지적 능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길이었다.
일은 '행복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수단이자, (생략)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게 해주는 한 방법이다.
일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 <하트 오브 비즈니스>, 위베르 졸리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3년 동안 쉬지 않고 읽고 쓰고 나니 알게 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