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 이직과 1번의 창업 끝에 약 2달간의 청소 노동
2022년 여름, 명동에 위치한 대형 백화점에서 팝업 스토어 약 2주 반 정도 운영한 적이 있다. 팝업 스토어가 열리기 직전 사장은 나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청소일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일했던 10번째 회사였다. 어차피 직원은 나 한 명이었기에 직함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소소한 자투리 운영 업무와 팝업스토어 운영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1인 자영업자의 라이프 스타일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현금기록부에 수입과 지출을 기재하고 온라인 채널로 들어온 제품을 송장 번호를 택배사에 전달했다. 판매 채널을 확장해야 했기에 업무 시간 대부분은 백화점 MD들과 미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투자자에게 제출할 IR 자료도 만들었다.
단순히 일의 양이 많아 힘든 건 아니었다. 사장은 승진과 함께 연봉을 갑자기 올려주었는데 받은 만큼 일해야 한다는 뼛속같이 자본주의의 노예근성이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거기에 신생 브랜드가 2주 반 동안 백화점 팝업스토어를 열어봤자 매출을 획기적으로 올리기 힘들 거란 현실감각이 나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냈다는 승진 이유가 석연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부사장으로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갈아 넣는 한이 있더라도 매출을 끌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부담감이나 다짐은 둘째치고 셀프케어 시장은 그 어떤 산업보다 다른 제품과 차별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마케팅 싸움이 치열한 곳이었다. 이 와중에 내가 가용할 수 있는 것은 내 시간 그리고 에너지뿐이었다.
심지어 팝업 스토어를 열기 위해 직접 제작한 가구 및 소품들 비용으로 이미 들어간 돈만 천만 원이 넘은 상황이었다. 말인즉슨 적당히 하면 바로 적자라는 뜻이었다. 매출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고 매출을 위해 생판 모르는 타인의 손을 기꺼이 잡아끌었다. 그러나 친한 지인들에게 팝업스토어에 오라는 카톡 하나를 보내는 마음은 심하게 부대꼈다.
팝업스토어가 진행되던 시기, 여름 장마는 어김없이 명동을 강타했다. 명동 평일 거리는 매우 한산했는데 코로나 여파가 완벽히 가시지 않았던 게 이유가 컸다. 장마 때문에 한산할 거라 예상했던 것보다 더 휑한 매장을 보며 나는 심장이 죄어온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난 일개 직원이잖아. 매출에 목숨 걸지 말고 하루하루 그냥 팔아보자.’라는 나에게 숨 쉬듯 자연스러웠던 정신 승리를 시도했으나 매출에 대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매장으로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통이 생겼고 집에 가서 쉬고만 싶었다. 옆을 돌아보니 일주일 동안 단련된 파트타이머들의 손님 응대가 꽤 능숙해 보였다.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먼저 들어간다며 파트타이머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거리를 나왔다. 버스 정류장 앞쪽까지 멍때리며 걸어가던 중이었다. 며칠 동안 장대비가 내린 후 명동은 그늘 하나 찾을 수 없었고 햇볕이 너무 따가웠다. 머리가 뜨거운 건지 아픈 건지 구별이 되지 않았던 그 순간, 동시에 나를 스쳐 지나가는 명동의 수많은 인파가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장마 때문에 부진했던 매출을 두 번째 주말에도 극복하기 힘들겠다는 예상이 확신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영화의 반전 결과를 스포일 당했지만, 온몸이 묶여 억지로 끝까지 시청해야 하는 고문을 받는 것 같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터덜터덜 버스 정류장까지 도착했을 때, 타야 할 버스의 도착 알림 전광판에 <40분>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 두통을 달래고 있던 참이었다. 순간 정류장 뒤로 새로 오픈한 애플스토어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에어컨 바람을 쐬면 두통이 좀 가실까 싶어서 들어갔던 찰나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동안 갖고 싶어 했던 신제품 코너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일개 사무직 종사자에게는 고스펙 라인이었다. 신제품 중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한 모니터 앞에 서서 매직 마우스를 만지작거렸다. 모니터에 내장된 6개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테이블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웅장했는데 불과 몇 분 전 인파를 헤치며 지끈거리던 두통이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간 내 집, 책상에서 이 모니터를 당장 사용해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이 몰려왔다. 내 옆에서 제품을 설명하던 직원의 말을 중간에 가로채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거 주세요"
새 제품을 가져다주겠다며 시야에서 잠시 사라졌던 직원은 거대해 보이는 하얀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직접 들고 갈 것인지 택배로 받을 건지 물어봤다. 답변을 고민하던 차, 직원은 택배는 약 3일 정도 걸릴 거란 설명을 보탰다.
"직접 들고 갈게요"
주차했냐 묻는 직원에게 고개를 저으며 택시 탈거라 짧게 답했다.
제품을 들고 애플 스토어 매장을 걸어 나왔다. 박스로 포장된 27인치 모니터의 부피와 무게가 상당했다. 매장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못한 채 택시 앱을 켰다. 근처에 호출할 수 있는 택시가 없다는 알림을 네 번째 정도 확인했을 그때, 다시 버스 도착 알림 시간을 확인했다. <1분>
거대한 제품 박스를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버스를 기우뚱기우뚱 올라탔다. 애플스토어 앞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과 버스 기사님이 나와 내가 들고 있던 박스를 번갈아 보는 시선을 느꼈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린 명동 거리에 나같이 이상해 보이는 사람도 한 명쯤 필요할 거란 이상한 심보가 생겼다. 세상엔 나와 애플 디스플레이만 존재했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모니터를 설치했다.
그리고 약 9개월 뒤, 잘 사용하던 모니터를 당근마켓에 팔아야 하나 고민한다. 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