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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우니 Nov 09. 2016

가을이 오면

늦가을에 만난 영주 부석사




가을의 문턱 앞을 서성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기 위한 출구로 나서고 있다. 1분 1초의 짧은 순간에도 풍경과 기온이 달라지는 지금, 나의 마음은 급해져 갔다. '지금'이 지나면 앙상한 가지만 남은, 쓸쓸하고도 외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어떻게 기다린 1년인데... 이대로 가을을 떠나보낼 순 없었다.


나의 시간을 되감아 1년 전으로 돌아가 봤다. 그 날은 매섭고도 날렵한 겨울날이었다. 청량리역을 시작으로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중앙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같이 출발해 몸은 피곤한 상태였고, 따뜻한 히터와 만나 졸음이 시작되려던 그때, 기차 창 밖으로 보이는 대자연의 아우라가 나를 하염없이 부르고 깨웠다. 끝없이 이어진 이름 모를 산, 몽환의 세상을 만들었던 아침 안개, 그리고 그 안갯속에서 피어나는 태양까지 영주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나의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들어줬다.


안개가 자욱한 아름다운 아침을 소수서원에서 보내고 부석사로 향했다. 일주문으로 향하는 입구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은행나무길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매서운 겨울인지라 부석사의 나무들은 외로워 보였다. 쓸쓸한 그 나무들에게 내가 만들어낸 노오란 은행잎을 하나, 둘 가지에 붙여주며 다시 돌아올 가을에 꼭 다시 찾겠노라고 약속하고 위로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 아닌가? 자칫 잊을뻔했던 영주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순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올 가을 여행의 행선지는 노란 은행잎이 휘날리고 있을 영주 부석사로 선택됐다.




부석사 초입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계절 가을을 맞이한 부석사가 수많은 인파를 불러 모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채로운 색감으로 가득한 이 계절을 맞이하는 건 기쁘나 보다. 천천히 조금 더 천천히 걸으며 늦가을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사찰과 자연의 조화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빠르게 걷는 사람도 존재했다. 이렇듯 '단풍'이라는 것은 참 미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본질 속에, 느림 또는 빠름을 선택하여 첨가하는 미학과도 같다.



부석사 경내로 인도하는 일주문
부석사 은행나무 길



맞아, 내가 상상했던 그 노오란 풍경!


일주문을 지나 사찰 경내로 들어서는 길에서 내가 상상했던 부석사 가을 풍경이 그대로 펼쳐졌다. 노란 색감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은행나무길은 세상 그 무엇보다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가을길이었다. 신발과 은행나뭇잎이 맞닿아 만들어진 폭신한 숲길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또 다른 특별한 풍경을 맞이했다.  가을, 부석사를 찾으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를 볼 수 있다.
사진에 담고, 사진에 담긴다.
오름과 내림의 연속이었다.
오늘을 담는 사진사



눈으로 가만히 보고 있다가도, 갑자기 카메라를 꺼내 들어 무한 셔터를 누르게 되는 게 부석사 풍경의 매력이다. 생생감 넘치는 이곳의 풍경도 놓칠 수 없고, 시간이 지나 추억으로 저장될 한 장의 사진 또한 놓칠 수 없다.


먼 훗날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추억으로 변한 부석사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갈 것 같다.


'그땐 그랬지... 다시 한번 부석사를 찾아볼까?'



수북이 쌓인 은행나뭇잎
부석사의 단풍
다채로운 색감들, 오직 가을에만 누릴수 있는 풍경이다.
무량수전을 지키는 안양루의 모습
국보 제18호에 지정된 부석사 무량수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목조건물이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한눈에 봐도 기존 사찰 건축물과는 차별화돼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각의 모형이며, 그것을 뒤덮고 있는 은은한 색감 그리고 배흘림 양식을 사용한 기둥까지, 모든 게 특별했다. 또한, 고려시대 중기에 처음 건립된 건축물이라고 하니 그 역사도 대단했다. 



무량수전 앞 석등에서 바라본 편액
소원이 이루어지길
천천히, 천천히 단풍을 즐겨본다.
자연과 사찰의 훌륭한 조화



한가득 눈에 담기는 다채로운 색감에 놀라고, 자연과 사찰의 훌륭한 조화에서 또 한 번 놀랐다. 보면 볼수록 또 보고 싶은, 중독성 강한 범종각 앞 전경이었다. 계절 가을이 전해주는 풍요로운 모습에, 내 마음은 온통 붉은빛으로 변해갔고 가슴 가득 차오르는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다. 참으로 감탄스러운 모습들이었다.



점점 짙어가는 가을 색감들
범종각, 안양루 그리고 무량수전의 모습
떠나는 발걸음이 아쉽다.
점점 멀어지는 범종각



오늘의 시간은 한정돼있기에 나는 부석사를 떠나야만 했다. 억지로 끌려가듯 나의 발걸음은 산 아래를 향하고 있었지만, 아쉬움만 가득했던 마음속 감정이 나의 고개를 계속해서 돌려세웠다. 


'다시 봐도, 또다시 봐도 참 풍요롭구나.'



잠시 뒤, 범종각의 풍요로운 풍경을 맞이할 사람들이 부러웠다.
갑작스러운 닭의 등장!
떠나가는 가을 그리고 단풍
색감이 참 아름답다.
영주의 명물인 새빨간 사과도 하나 먹어봤다. 아삭한 식감과 적절한 당도가 나의 입맛을 돋우었다.
부석사 은행나무 터널



가을이 오면 다시 부석사를 찾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되어 너무 기뻤다. 그런 부석사가 나에게 화답하듯 '노랗고 빨갛고 주홍빛'을 뽐내며 완연한 가을을 전해줬다. 부석사의 하늘은 시커먼 구름으로 가득했지만, 가을이 주는 오색 색감 덕분인지 단 1%의 아쉬움도 없었다. 


여행지에서의 한정된 시간은 흘러, 부석사를 떠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할 때 나는 또 생각했다. '언젠가, 꼭 다시 찾겠노라고'말이다. 이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임과 동시에 부석사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




소백산 부석사 여행정보


풍기 기점 : 27번 버스 승차, 영주 시내 기점 : 27번 또는 55번 버스 승차 (27, 55번 각각 13회 운행)

입장료 : 성인 1,2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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