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수덕사, 여행지 그 이상의 의미
"예산에 간다고? 예산하면 수덕사지!"
예산이 고향인 지인이 말했다. 임존성에서 만났던 현지인도 다음 여정이 수덕사라는 말에 감탄사가 먼저 터졌다. 1초의 고민도 없이 추천한 여행지 수덕사는 예산 사람들에겐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천오백 년에 가까운 고찰이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고장에 있다니 그럴 만도 했다. 존재만으로 큰 자부심이 생기는듯했다. 충청남도를 관할하는 본찰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스스럼없는 발언에 조금 더 기대하게 된 건 사실이다.
수덕사행 버스를 타게 된 건 예산이 아닌 홍성이었다. 수덕사는 행정구역 상 예산군에 포함돼지만 홍성군과 경계점에 위치해있어 일반적으로 홍성 시내에서 버스를 타는 게 시간 절약에 더 효율적이었다. 덜컹덜컹, 오후 시간의 시내버스는 거침없이 도로 위를 달린다. 지나는 풍경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버스의 종점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천년고찰의 위엄이 느껴졌다. 축구장처럼 커다란 주차장에 한번, 매표소까지 이어진 거대한 상권에 두 번 놀랐다. 평소 수덕사를 찾는 여행객과 불자가 많다는 방증이다. 사찰의 시작점을 알리는 일주문에는 '덕숭산수덕사', '동방제일선원'이라는 현판을 나란히 걸어 조계종 7 교구 본사의 품격을 높였다. 짙은 녹음으로 뒤덮인 금강문과 사천왕문 샛길에는 붉게 물든 꽃무릇이 만발했다. 예상치 못한 풍경에 한참을 서서 감상했다. 꽃무릇 무리에 볕이 깔린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수백 점의 불교 문화재를 소장 전시하고 있는 '황하정루'를 지나 계단길에 올라섰다. 계단 너머 전경은 어떤 모습일까,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기대감이 한층 더 높아졌다.
자연과 사찰의 조화가 훌륭했다. 현지인의 자부심을 단번에 이해했고 고찰의 높은 품격을 실감했다.
덕숭산의 정기를 품은 고고한 수덕사의 건축물과 푸른 하늘의 조화가 멋스럽다. 고중 단연 돋보였던 수덕사 대웅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목조 건물답게 고귀한 멋을 뽐낸다. 대웅전 편액을 기준으로 층층이 위치한 '삼층석탑'과 '금강보탑', 삼층석탑을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백련당'과 '청련당'은 수덕사의 정밀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바라만 봐도 마음 편안해지는 고찰의 전경을 툇마루에 앉아 눈과 마음에 고스란히 새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리게, 더 느리게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