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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자 Oct 22. 2023

옆집 그녀를 홀린 가을 대추_ 젤나농원 보은대추

**이 글은 매년 가을이면 내돈내산으로 구매하는 젤나농원 보은대추 구매 후기 에세이입니다.**




매일 아침 블로그 이웃들의 새 글 알림이 쉬지 않고 올라온다. 주말에 몰아 읽는 편이라 알림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의 젤나 대추님 새 글 알림은 주말까지 기다렸다가는 대추 판매가 종료될 수 있어 위험을 무릅쓰고 운전 중에 스마트폰 블로그 앱을 열어 ‘주문’ 댓글을 달았다. 대추가 어찌 익어갈지 몰라 그러니 잊어버리고 있으면 배송될 것이라는 젤나 대추님의 답글처럼 언젠가 도착할 거라는 마음으로 대추 구매를 잊고 있었다.     


2주 전 저녁 식사 중 옆집 그녀가 초인종을 눌렀다. 육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엘리베이터와 현관문 사이 공용 복도를 개인 마당처럼 고추, 마늘, 양파를 펼쳐놓고 말린다. 친정엄마 생각해서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감정도 없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우리 집 택배인 줄 알았는데 여기 택배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다 뜯어진 택배 상자를 들이밀었다.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하고 택배 상자를 받았다. 택배 오배송이야 종종 있는 일이고 우리 엄마라도 내 집 현관 앞에 배송된 택배니 뜯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는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챙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닫으려는데.     


“뜯어보니 대추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다섯 알 정도 먹었어. 근데 너무 맛있더라. 어디서 샀어? 연락처 알려주면 우리 딸한테 주문하라고 하려고. “

느닷없이 누가 내 눈을 콕 찌르고 도망간 것처럼 황당하고 아찔해 ‘네’라는 외마디 외 다른 단어는 생각나지 않았다. 당황해 허둥지둥하는 나와 달리 그녀는 너무 맛있으니 나중에 꼭 대추 파는 곳을 알려달라는 말을 다시 하고 본인 집으로 쏙 들어갔다. 당당한 그녀와 달리 뭐에 홀린 듯한 나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다 듣고 난 남편은 잘못은 그 아줌마가 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택배 상자를 받았냐며 나에게 한소리를 했다. 나도 바보같이 당한 것 같아 속상했지만 달콤한 젤나농원 보은대추 한입에 그냥 잊기로 했다.     


다음 날 퇴근해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1층에서 옆집 그녀가 탔다. 잊기로 한 어제 일이 생각나 평소처럼 소리 내 인사하지 않고 묵례만 했다. 더 이상 눈 마주치기 싫어 그녀의 시선을 피하려는데 그녀는 또 다시 대추 파는 곳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 말에 그녀는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바보같이 또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한마디 건넸다.     


”택배가 잘못 갈 수도 있고 뜯어보실 수도 있어요. 그건 이해하는데 드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다음에는 조심해 주세요.”

“아니, 내가 먹고 안 먹었다고 한 것도 아니고, 어제는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나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저도 어제 일 잊어버렸어요. 아마 오늘 아주머니 뵙지 않았다면 이런 얘기하지 않았겠죠. 그런데 오늘 아주머니께서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대추 파는 곳을 물어보시길래 말씀드린 거예요.”     


그녀는 목소리를 점점 높였고 그럴수록 나는 대응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그녀에게 다시 묵례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와 씻으려고 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으로 보니 또 그녀였다. 왜 또 찾아왔나 싶어 현관문을 여니 그녀가 다짜고짜 자기가 거짓말한 것도 아니고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런 말을 이제 와서 하냐고 기분이 나쁘다며 따졌다. 그녀 옆에는 팔자 러닝에 한 손에 TV 리모컨을 쥔 그녀의 남편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남의 택배를 열어본 것, 그리고 내용물을 허락 없이 먹은 것, 모두 본인들 잘못은 맞지만, 어제 사과도 했는데 오늘 자기 부인에게 그런 말은 왜 했냐며, 이웃끼리 이런 일로 얼굴 붉히며 살지 말자며 대추에 손댄 것이 그렇게 기분이 나쁘다면 똑같은 대추를 사서 주겠다며 대추 파는 곳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는 최대한 예의 있게 말했지만 내가 그녀에게 한 행동이 기분 나쁘다는 얘기였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나도 최대한 공손하게 그녀가 그날 사과했다면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그녀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해 줬다. 나의 대답에 놀란 그는 그녀에게 사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우물쭈물 말을 얼버무렸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그는 정말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나에게 사과했다. 나 또한 무례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그렇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그녀가 이건 다 택배기사 탓이라며 택배기사에게 따지겠다며 내게 연락처를 알려달라 했다. 그녀의 어이없는 행동에 당황한 그는 그녀에게 빨리 집으로 들어가자며 재촉했다. 나는 택배기사에게 연락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의 남편처럼 그 상황을 빨리 끝내기 위해 기사님께 얘기하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날 붉은빛으로 내 눈을 홀리고 아삭함과 달콤함으로 내 입을 홀리는 대추를 먹다 옆집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도 나처럼 보은대추 유혹에 넘어가 남의 것인지도 모르고 먹었다면 이 해프닝의 빌런은 젤나 농원 보은대추가 아닐까. 내년까지 그녀가 옆집에 산다면 그녀가 그렇게 맛있어하는 젤나 농원의 보은대추 한 상자를 선물해야겠다.       





덧)

친정엄마와 통화하다 이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나이 정도면 어릴 적 먹던 대추가 생각나서 그럴 수도 있다며 옆집 그녀를 두둔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애들은 따지기 좋아한다며 가끔 바른 소리 한다고 따져 묻는 나를 보면 아빠 닮아서 정 없어 보인다며 나를 나무라셨다. 엄마한테 괜히 얘기했나 싶다. 오십 년 넘는 결혼 생활 내 본인 마음에 안 들면 다 아빠 닮았다는 엄마. 그녀도 참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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