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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un 16. 2024

Reflection

생각보다 밀란의 봄에는 비가 많았다. 나는 오자마자 장화와 장우산을 구입하고 비 오는 날을 대비하였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오는 날도 우산과 장화면 끄덕 없었다. 문제는 노후된 도로 주변에 생기는 물웅덩이였다. 이탈리아 사람들 성격 급한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출근시간 내달리는 자동차 옆을 지나다가 물세례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우산을 내려 피한 적도 있었지만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에 있는 상습 물세례 지역을 지날 때는 여간 긴장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차의 속도와 내가 앞에 보이는 웅덩이를 지나갈 때의 시간을 잘 생각하며 걸어야 했다. 길을 걸어가는 동안 꽤 많은 물웅덩이들이 있기 때문에 걷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비 개인 다음날 거리를 걸어가면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 가로등, 반사거울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은 이 반사체가 너무 예쁘다고 느껴졌다. 바닥이 웅덩이에 물을 담아 나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저 멀리에 있는 어떤 것을 이 아래로 데려온 것 같았다. 물에 비친 사물은 물의 표면이 사물을 연하게 반사하면서 경계를 흐리게 하고 빛을 마치 필터를 씌운 것처럼 부드럽게 만든다. 바닥에 담긴 하늘은 저 위의 있는 하늘보다 신비롭다. 마치 닿을 것 같아 손으로 만지면 순식간의 아름다운 형체가 흩어지면서 출렁거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지다가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우리의 눈을 통해 사물을 본다. 흔히 보는 눈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가 사물을 보고 경험할 때 매우 주관적인 감각으로 대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의미이다. 나의 과거, 나의 경험, 나의 지식을 통해 대상에 대한 정보를 이해한다. 대상에 대한 이해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상으로 끊임없이 객관화하려 하고 타인에게 인식에 대한 동의를 구하려고 한다. 이것이 어렵거나 의미가 없는 이유는 우리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며 서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계속되는 객관화의 시도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렇게 풀리지 않는, 도저히 잡히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일까?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은 그것을 마음에 담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렇지 않다면 보아도 본 것이 아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고 흘러가는 것들은 내가 본 것이 아니다. 어떤 것에 의미가 담길 때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들어온다. 의미 없이 마음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들은 오래전부터 내가 찾고 싶었던 나의 모습일 수도, 내가 되고 싶었던 어떤 그림일지도, 어쩌면 오랜 시간 그리워했던 누군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상을 그렇게 나와 연관지음과 동시에 관계에 대한 지향성을 그려간다. 우리는 좌절하고 실망하지만 다시 다가가기를 반복한다. 왜일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꿈꾸게 하고 기대하게 하고 설레게 하는 것일까?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친 어느 오후, 수업을 마치고 차이나타운에 버블티를 먹으러 친구들과 메트로 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도로에 가득 찬 빗물이 마치 자동차들이 물 위에 떠있는 것 같은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본 물 물덩이 중에 가장 범위가 큰 것이었다. 이게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나는 걸음을 멈추고 친구들이 멀어지는 것도 모른 체 홀로 그 광경에 매료되어 있었다. 곧 뒤따라 달려오는 자동차에 거센 물세례를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이다.  


 비 온 후 밀란의 거리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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