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의 8 house
"저녁의 빛
내 길 위로 떨어진다
고독한 생각이
부드럽게 밝아지며
희망은 조용히 살아 있다. " - Hans Christian Andersen
빛을 위한 건축
코펜하겐 여행이 끝나갈 무렵 나는 2010년 코펜하겐 외곽 외레스타드 지역에 준공된 8 하우스로 향했다. 이 주거단지는 덴마크 건축가 비야케 엥겔스(Bjajarke Ingels)의 작품으로 건물의 형태가 8자를 닮아 8 하우스라 부른다. 8 하우스는 암라제르(Amager) 섬 남부의 매립지 위에 조성된 도시로 북쪽은 시내 중심과 연결되고 남쪽은 자연보호 지역과 맞닿아 있다.
이곳은 북유럽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이 길고 흐리고 여름이 짧고 온화하다. 자연광이 부족한 기후적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 건축가는 북쪽은 저층, 남쪽은 고층으로 배치하여 일조와 조망을 최적화하였다. 남측 고층부의 테라스형 경사로 디자인되어 북측 저층부에 햇빛이 깊숙이 들어오게 하였다. 주거마다 전면 유리창과 발코니를 두어 겨울철에도 충분히 채광이 들어올 수 하는 동시에 두 개의 중정은 빛을 반사, 분산시켜 특별히 저층부 내부 공간의 밝기를 확보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겨울철 자연광 확보를 위한 배려다.
수평선 위의 수직 마을
건축가 비야케 엥겔스는 "건축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고 만들어나가는 기술"이라고 하였다. 8자형의 형태는 그의 건축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사용한 디자인 언어로 이 주거단지의 가장 큰 특징인 경사로의 형성을 이끌어 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경사로는 외부 생태 산책로에서 건물의 최상층인 10층까지 연결되어 도보는 물론이고 자전거를 타고 곧바로 올라갈 수 있다.
경사로를 따라 이동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분명히 수직이동을 하고 있음에도 마치 수평이동을 하는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중정을 통해 열린 하늘 아래, 각 세대의 테라스를 스쳐 지나가며 올라가는 길은 어린 시절 동네 골목길을 연상시킨다. 오늘 옆집은 저녁으로 무엇을 먹는지, 앞집에 누가 놀러 왔는지 굳이 알려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노출되었다. 서로의 사정을 알고 이해하고 함께하는 구조다. 이곳 역시 층별로, 동별로 단절되어 있던 기존 공동주택의 개념이 하나의 연속된 수평선 위에 놓이는 것이다.
거기에 단절 없이 하나로 이어지는 자연광은 자신의 세대를 오가는 거주자에게 외부와의 연속성과 접근성을 결정하는 심리적 요소가 된다. 하나의 빛은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이는 공동주택을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로 경험하게 한다.
8자형 형성된 이곳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나는 다양한 빛을 경험하였다. 수직으로 이동하면서 방향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빛은 마치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오듯이 일렁거리기도 하고 때론 거세지기도 하였다.
하나의 도시
8 하우스는 코펜하겐이라는 도시 맥락 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자전거를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코펜하겐 시민들에게는 건물 최상층까지 자전거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 요소인가? 외부로부터의 빛의 흐름이 단절되지 않고 세대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은 지면과의 접지성이 강화시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주었다.
공동주택의 새로운 가능성
8 하우스는 ‘8’ 자형 꼬임 매스와 지형에 맞춘 높낮이 차이를 활용해, 각각의 주거 공간과 공공 공간으로 자연광과 신선한 공기가 최대한 공급되도록 설계되었다. 넓은 창, 중정 개방, 경사진 녹화 지붕, 자연 환기 동선 등 건축적 장치들이 체계적으로 연계되어 도시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쾌적한 주거 환경을 조성하였다.
특히 북유럽 특유의 기후 조건과 빛의 특성을 반영한 자연채광 계획은 8 하우스의 핵심 요소로, 공간에 풍부한 빛과 자연을 끌어들여 주민들에게 건강하고 활기찬 일상 공간을 제공하였다. 필라테스, 요가, 댄스, 와인 모임 등이 이루어지는 커뮤니티 센터는 이러한 건축적 배려가 실제 공동체 문화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공동주택은 이미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주거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8 하우스는 공동주택이 단순한 개별 단위의 집합체가 아니라, 자연과 도시,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열린 소통의 공간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요소와 외부와의 연속성, 그리고 접근성에 대한 근본적 고찰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빛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연속성, 경사로가 만들어 내는 자유로운 움직임, 중정이 열어주는 소통의 통로 등은 이 주거단지가 단순한 주거의 기능을 넘어 소통하고 연결되는 공간임을 보여 주었다. 안데르센의 이야기처럼 그 빛은 경사로를 따라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