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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상한 오후의 빛

오르드럽가드 미술관에서

by 김보아
"아무튼 나의 어린 시절 위로 내리쬐던 그 아름답고 후끈한 햇볕 덕분에 나는 원한이라는 감정을 품지 않게 되었다. 나는 빈곤 속에서 살고 있었으나 일종의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알베르 까뮈, "안과 겉" 중에서




코펜하겐에서 머물렀던 모든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있지만 오르드럽가드 미술관(Ordrupgaard)을 향했던 날은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 미술관에 다녀오는 일정을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보고 코펜하겐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끼워 넣었다. 루이지애나에서 오르드럽 미술관에 가기 위해 기차표를 사려고 앱을 열었다. 목적지만 입력하고 결제하면 되는데 영 실행이 되지 않았다. 나는 플랫폼에 서서 역을 지나가는 기차를 수차례 놓쳤다. 더 늦어지기 전에 미술관에 도착해야 일정을 마치고 무사히 코펜하겐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나는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나는 택시를 타야 하나 엉뚱한 생각을 했다. 불통인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역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 택시를 부르기 위해 정확한 주소를 물어보았다. 사실은 기차를 타고 싶은데 앱이 실행이 안된다고 하자 카페 직원은 지동 발권기에서 표를 살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앱을 가지고 씨름하던 플랫폼에 표를 파는 발권기가 있었다. 나는 내가 한없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스마트 폰에 익숙해져 직접 표를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었나 보다. 나는 정신을 차려보자 마음을 다잡고 기차에 올랐다.

자동 발권기를 곁에 두고 표를 구매하지 못해 하염없이 기차를 보내고 보내고 ㅎㅎㅎ ©boah

지난번 시내에서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탄 적이 있어서 꼼꼼히 방향을 확인했기에 걱정은 없었다. 30분 정도 달렸을까? 나는 낯선 역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기 위에 길을 건넜다. 정류장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나는 목적지를 이야기하며 방향이 맞는지를 확인했다. 냉엄하게 보였던 아주머니의 얼굴은 금세 미소가 번지며 맞다 하였다. 버스에 오른 후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 다가 오자 뒷 쪽에 앉아 있던 그 아주머니는 내가 앉아 있는 앞쪽까지 다가와 이제 내리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따뜻한 미소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나는 또다시 낯선 거리에 내렸다. 지도를 열었다. 이제는 걸어야 한다. 35분 정도 되는 시간이었지만 유난히 내리쬐는 태양빛 때문에 걸어가는 길은 더욱 길고 고단하게 느껴졌다. 끊임없이 차들은 나의 곁을 지나가는데 내가 걸어가는 이 길에는 앞에도 뒤를 돌아보아도 사람이 없었다. 태양빛은 점점 강렬해지고 갑자기 누군가 차에서 내려 나를 납치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길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나를 발견하였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순간 튀어나오는 막연한 두려움은 너무나 맑은 하늘, 청량한 공기와 초록의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이 평화로운 광경 속에서도 어김 었었다.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은 삶의 어느 순간에도 나를 찾아오는구나. 나는 두려움을 참고 걸었다. 다행히도 어쩌면 당연히도 이곳은 안전했다. 지도를 따라 샛길로 들어서야 작은 오솔길로 이어졌다. 아기자기한 오솔길…… 나는 목적지가 가까웠음을 직감하면서 비로소 가볍게 그 길을 즐겼다.


외롭고 고단했던 길을 두려움 속에 걸었다. 지금 보니 그저 평온하기만 한데 ©boah
작은 오솔길, 목적지가 가까웠다는 뜻 ©boah

드디어 미술관에 도착하였다.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 예거스보리 뒤레하버 근처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주변이 숲과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1918년 지어진 저택에, 자하 하디드의 설계로 2001-2005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증축되었고 2021년에 스노헤타의 지하가 증축되었다. 그전에 증축된 하디드 동을 포함하여 전체가 원형의 동선으로 연결되었다.


기존 주택과 증축된 건물의 배치도 image via archdaily.com



설계를 맡은 자하 하디드는 무엇보다 자연과의 융합, 일체화된 자연 지형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건축물이 주변 경관 속에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하였다. 건축물이 자연과 융합된다는 것은 자연의 지형을 따르고 그 흐름을 단절하지 않고 이어간다는 것일까? 굽이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땅의 굴곡은 건축물의 내외부에도 흘러간다. 증축된 공간의 내부는 곡선과 유동적인 형태로 연결되어 갤러리와 복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갤러리의 카페가 있는 건물의 끝 부분의 외관은 마치 커다란 바위덩이가 집 앞마당에 굴러다니다 잠시 멈춰 있는 것처럼 모서리의 끝이 들려 있다. 금방이라도 옆으로 움직일 것 같은 형상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자연의 속성일 것이다. 움직임, 변화, 리듬으로 자연의 생동감은 표현된다.

용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물의 외관은 이 공간을 자연의 일부로 느끼게 하는데 매우 적절한 외피의 재료다. 이 재료는 박리와 광택의 변화를 쉬이 드러내어 질감과 발색을 강조하기에 용이하고 외피의 굴곡은 유입된 빛을 부드럽게 산란시킨다. 내부는 회색의 노출 천정과 백색면으로 전면의 유리면과 함께 밝고 가벼운 온실 같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공용 카페와 복도에는 선형 매입 조명이 방향성을 만들어 내면서 움직임을 유도하는 요소로 사용되었고 갤러리 내부의 채광 슬롯(광 슬롯)은 같은 개념으로 자연광이 실내로 비껴 들어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음영과 빛의 질감을 만들어 낸다.


미술관 입구 ©boah



용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물의 외관은 이 공간을 자연의 일부로 느끼게 하는데 매우 적절한 외피의 재료다. 이 재료는 박리와 광택의 변화를 쉬이 드러내어 질감과 발색을 강조하기에 용이하고 외피의 굴곡은 유입된 빛을 부드럽게 산란시킨다. 내부는 회색의 노출 천정과 백색면으로 전면의 유리면과 함께 밝고 가벼운 온실 같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공용 카페와 복도에는 선형 매입 조명이 방향성을 만들어 내면서 움직임을 유도하는 요소로 사용되었고 갤러리 내부의 채광 슬롯(광 슬롯)은 같은 개념으로 자연광이 실내로 비껴 들어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음영과 빛의 질감을 만들어 낸다.


한참을 미술관 주변을 서성이며 탐색하였다. 화창하고 청명했던 그 날의 빛 ©boah


나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 시원한 음료를 한 잔 시켰다. 외부에서 바라본 경사진 곳은 내부에서도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앉아 있는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자리에 앉아 그 특별함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대형의 유리 외관을 통해 좀 전에 내가 서 있었던 외부의 풍광이 카페 안으로 들어와 앉는다. 낮에는 정원의 푸르름을 내부로 끌고 들어와 실내외의 대비를 낮추고 밤에는 인공조명으로 내외부의 대비를 강조하는 변화로 리드미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미술관 내부의 모습들 ©boah


자연과의 융합을 강조한 이 건축물은 기존의 건축과 증축된 건축의 조화됨과 더불어 자연 풍경과 하나가 되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 한다. 과거와 현재의 이어짐, 자연과 건축의 유기적인 연결, 그 안을 걷고 머물고 바라보는 인간의 흐름이 소통하고 기억하고 경험하는 공간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 광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한 참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참으로 내가 있던 곳으로부터 동떨어져 있구나. 자연과 이어지기 위해 그 먼 길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그 길을 따라 한 참을 돌아 이곳에 다다르도록 했구나. 나는 자연에 침입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처음 생각해 보았고 그것과 자연의 사이를 흘러가는 것은 우리가 닿고 싶어 하지만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인간이 느껴야 하는 고독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바라보는 자연은 한 없이 그립고 안기고 싶고 머물고 싶은 존재인데 자연에게 있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 보면 때로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다가가고 싶은, 그러면서도 서로를 한 없이 잔인하고 무참하게 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를 두렵게 했던 그 강렬한 태양빛이,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관의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서는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빛과 나를 위로하는 빛은 결국 같은 빛이었다.

아름다움과 고통의 빛은 언제나 함께 내린다.



한 참을 바라본 바깥 풍경, 사진이 담기진 않는 아름다움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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