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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빛, 그 리듬을 찾아서

루이지애나 미술관

by 김보아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 - 한강, '빛과 실' 중에서


코펜하겐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이동하면 덴마크 험레벡(Humlebæk)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근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에 도착한다. 이 미술관은 외레순(Øresund) 해협을 바라보는 언덕에 위치하는데 험레벡역에 도착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기차에서 내리고 마치 일행인양 한 방향으로 줄지어 걸어간다. 모두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1시간 정도 이동한다. ©boah
지하철역 입구 무심하지만 존재감 있는 캐노피가 역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눈치 빠른 여행객만이 바로 찾을 수 있다 ©boah
시내 외곽으로 나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플랫폼을 잘 찾아야 한다. ©boah
역에서 내려 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길,약간은 이국적이면서도 친근한 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이 눈길을 끈다. ©boah



미술관 앞에 다다르니 아직 오픈 시간 전이고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닷가로 향했다. 언덕에는 저 멀리 외레순 해협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거셌지만 사람들은 바람과 빛과 파도의 움직임, 철썩거리는 소리, 휘휘 귓가를 지나가는 공기의 움직임을 마음껏 느끼며 해변아래로 내려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샛길을 걸어 보기도 하고 다시 언덕 위로 올라와 저 멀리 펼쳐지는 바다로 시선을 보내며 광활한 자연과의 조응의 시간을 보냈다. 나도 사람들 틈에 섞여서 해변을 거닐었고 언덕 위로 다시 올라와 바람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면서 불러주는 알 수 없는 노랫소리에 몸을 맡겼다. 자연 속에 서 있는 인간, 건축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조화로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이 미술관의 정체성을 먼저 체감하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보니 어느새 미술관 오픈 시간이 되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벌써 긴 줄이 미술관에 늘어서 있었다.


청명한 5월의 덴마크 날씨, 얇은 패딩을 입고 다닐 만큼 선선했다. ©boah



경계가 흐릿한 공간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대지의 높낮이를 따라 수평으로 늘어서 있었고 각 전시동은 유리 복도로 연결이 되어있어 전시장 내부에서 보면 유리창 너머로 숲, 정원, 바다가 액자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전시 동선이 자유로워 관람자는 전시장의 내외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관람 시점이 다채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전시장을 벗어나 외부로 걸어 나와도 전시는 계속된다. 내부에 머물러도 긴 유리창을 통해 외부 자연의 풍광은 내부로 이어지고, 외부로 나와 머물러도 나와 자연 그리고 예술작품은 공존했다. 이 미술관에는 자연, 건축,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을 새롭게 하고 사유의 깊이와 폭을 확장한다는 그들의 크고 근원적이며 오래된 디자인적 철학이 담겨있었다.


숲, 바다, 빛의 어우러짐 안에서 관람자는 계산된 의도에 지배되지 않고 자유롭다. 예술 작품 또한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따라 늘 새롭게 해석되는 자유로움 안에 놓여 있다. 자연스러움은 자연의 원리를 따름이다. 자연은 흘러가고 경계 짓지 않고 열려 있으며 공존 속에서 조화로움을 구현한다.


유리창으로 연결된 복도의 전시공간 ©boah



자코메티 홀의 빛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빛은 단순히 전시를 비추는 빛이 아니다. 나는 긴 유리창으로 이어진 복도를 걸어가면서 이것이 다음 공간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여정으로 느껴졌다. 자연의 풍광과 빛이 깊숙이 내려앉는 공간을 지나가는 동안 나는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이 시각을 자극하지 않고 부드럽게 퍼져 나가는 것을 천천히 느끼고 있었다. 깊은 처마와 반사율이 낮은 벽돌과 거친 나무 같은 마감재들이 자칫 강렬하게 시야를 자극할 수 있는 강한 빛을 섬세하게 다듬어 놓고 있었다. 전시관람을 위해 공간을 이동하면서도 늘 자연의 빛이 나를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외부와 차단되어 있지 않았고 빛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시간의 흐름과 내가 속한 공간을 더욱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드디어 마주한 자코메티 홀에 들어서면 앙상한 인간 모습의 조각상이 벽돌로 마감한 바닥을 딛고 서 있다.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모습을 한 조각상은 어디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걸까? 야윈 모습으로 꼿꼿이 서 있는 조각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그 앙상한 몸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심연에 깊이 숨겨져 있는 고독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기에 짊어져야 하는 슬픈 운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의 빛의 리듬 속에 있었다.


빛의 리듬은 생명의 근원을 깨우는 역동성으로 작품을 건드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빛의 리듬을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변화는 자연의 섭리이며 인간의 삶은 자연에 조응함으로써 생명력을 회복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균형을 잃는다. 빛은 생명이요 에너지의 원천이지만 어두움이 없는 빛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해가 된다. 자연의 리듬 그 적절한 변화의 흐름을 인간을 건강하게 한다.


자코메티 홀 ©boah


야외 조각공원

미술관 건물은 산책로처럼 펼쳐지고 잔디 숲에는 헨리 무어(Henry Moore),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등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자연의 빛과 소통하는 전시의 흐름 따라 야외로 발걸음을 옮겼고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소통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저 멀리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빛은 미술관의 안뜰까지 내려와 머물며 천천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은 빠르게 이동하면서 관람하는 곳이 아니라 바다를 보며 앉아있거나 산책을 하듯 관람한다. 사유를 위한 머무는 미술관은 인간에게 자연과 예술의 중간자로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비추어 갈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선사하였다. 빛의 생동감, 빛의 리듬, 자연의 변화가 주는 균형감과 조화로움은 날로 앙상해져 가는 우리의 영혼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르쳐 주었다. 단순히 보는 자에서 살아가는 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하고 자연과 예술 안에서 조화를 구현하고자 이끄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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