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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빛, 변화무쌍한 빛

The Contemporary Jewish Museum

by 김보아


“유대인은 공간이 아닌 시간에 집을 짓는다” – 아브라함 요슈아 헤셀



샌프란시스코의 미술관 하면 누구나 현대미술관(SF MOMA)을 떠올린다. 이곳을 방문하였다면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유태인 현대미술관(The Contemporary Jewish Museum)의 방문도 권하고 싶다. 이 건물은 원래 발전소로 사용하던 건물을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하여 2008년 증축, 완공된 것이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해체주의적 개념을 적용한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건축 이론가로서의 삶을 지속했던 그는 1989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프랭크 게리, 피터 아이젠만 등과 함께 해체주의 건축전시를 열고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99년 베를린의 유대인 박물관에 이어 덴마크와 샌프란시스코에도 유대인 박물관을 설계하게 되었다. 1946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리베스킨트는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11살 때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그는 아코디언 연주에 탁월했는데 미국-이스라엘 문화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그 후 미국으로 귀화한 리베스킨트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현재의 존재론적 고민을 담았다. 그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해체론적 시각은 우리가 속한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무수히 변화하고 분열하고 구분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과거와 지금 우리 앞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현재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통합하여 보존하고자 하였다. 유태인 현대미술관에서 보이는 과거의 흔적과 증축된 현재의 통합은 그와 같은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 현대미술관을 찾아가는 길은 예상과 달랐다. 3번가가 아닌 마켓 스트리트 쪽에서 다가가게 되었고 그 덕분에 거리를 걸으며 미술관 주변의 환경을 탐색할 수 있었다. 이 방향에서 건물을 마주하면 오래된 발전소 건물을 먼저 만나고 이 건물 끝에 증축되어 이어진 새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형태와 재료의 만남은 언제나 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미술관 앞마당에 조성된 물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 저 앞에 보이는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검은색의 거대한 덩어리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는 좀 더 마당에 머무르면서 나의 움직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건물의 형태와 빛의 방향에 따라 변화하는 색감을 관찰하였다.

진입로에서 바마 본 외관, 옛 건물과 증축된 큐브의 조합이 흥미롭다. ©boah
앞마당, 새롭게 조성된 물 공간에 비친 옛 건물의 반사가 아름답다. ©boah



정제된 외관


건물의 외피는 3000개의 푸른색 강철 패널로 이루어져 있는데 외관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사선(diagonal line)은 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비판적 사고를 표현하는 형태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의 모든 수직, 수평선 사이에서 솟아난 사선은 일반적인 수직면에 숨어있는 직선이 갑자기 소리를 내며 튀어나온 듯한 인상을 주었다. 표면에는 독특한 크로스 해칭 마감(cross hatch finish)이 적용되어 자연광의 반사를 최대한 부드럽게 확산시켰다.


크로스 해칭 기법이 사용되어 마감된 강철은 빛과의 상호작용에서 매우 섬세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는 미세한 선들이 표면 위에 격자무늬나 텍스처를 형성하여 빛의 난반사와 질감효과를 조절한다. 일반적인 금속 마감은 거울처럼 반사되어 빛이 눈부시게 튕겨나가 강한 눈부심을 초래하지만 크로스 해칭은 이 반사를 수천 개의 작은 방향으로 분산시켰다. 빛은 부드럽게 퍼졌고 보는 각도나 시간에 따라 질감과 색조를 유동적으로 변화시켰다.


마당에 앉아 한참 외관을 바라보니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리 잡고 있는 형체의 표면을 가르는 사선들이 나름대로 정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이 선 푸른 강철 큐브, 정교하게 계산된 볼륨, 절제된 질서 속의 차가운 아름다움의 조화로움이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했다. 간간히 뚫려 있는 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내외부의 연관성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는지 궁금증이 더해 갔다.


미술관의 외관, 3000개의 검푸른 금속 패널로 마감되어 있다. 간간히 뚫려 있는 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본다.©boah




변화무쌍한 내부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경험에 휩싸였다. 내부의 공간들은 리베스킨트 특유의 전위적 기하와 불연속, 불규칙하게 기울어진 벽면, 예상치 못한 개구부로 이어지며 빛 또한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각도와 형식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36개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시시각각 다르게 공간을 변화시켰다. 36은 유대인의 전통적인 숫자로, 유대교의 신비주의 전통에서는 세상에 36인의 의인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36개의 창은 세상이 창조될 때의 숨겨진 빛을 의미하며 이 빛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깊이감이 서로 다른 벽 속에 고정된 36개의 창들은 저마다 다른, 빛의 방향과 그림자를 드리워 불규칙하고 다채로운 공간감을 만들어 내었다. 사선이 포함되어 있는 면 역시 공간 속에서 자신의 부재를 일깨우며 살아났고 공간 곳곳에 드러나는 사선은 벽을 빛의 흐름을 따라 방향성과 운동성이 가시화되어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 동선을 유도하였다.

갤러리 내부의 모습, 끊임없이 관람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내부의 구조와 빛을 경험할 수 있었다. ©boah



1층 기프트 숍 ©boah



리베스킨트는 모든 인간의 삶은 획일적이지 않으며 저마다의 이야기와 역사가 살아 이어져 온 것이라고 보았고 건축도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았다. 모든 시간과 공간은 불명확하고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 안에 혼란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근대 이후의 건축이 주장하는 절대적인 기준과 틀이 개인의 주관과 상대성, 다양성을 억압한다고 본 것이다.

그는 고정된 질문처럼 변함없는 건축물에 진입한, 빛과 사람이라는 변수는 시대와 문화가 만들어 내는 경험에 따라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답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빛은 단순히 공간을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그림자와 반사, 명암, 직접광과 산란광의 변주를 통해 공간을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유로우면서도 정제된 선과 그 안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공간과 빛은 기억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도 새로운 시도와 시각에 대한 열린 마음과 고민으로 생동감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변화무쌍한 빛과 공간은, 어쩌면 아브라함 헤셀이 이야기한 것처럼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 지어 올린 집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빛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하는, 살아있는 시간의 성전 말이다.


복도에 마련된 벤치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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