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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Nov 28. 2021

슬근슬근?

톱질하는 방법


나무의 결


내가 처음 톱질을 한 나무는 화이트 오크였다. 북미산인 이 참나무는 무겁고 단단하다. 대패질을 하기 전에 목재상에서 바로 넘어온 나무를 보면 그 표면이 무척 거칠고 억세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자란 소나무는 그보다는 훨씬 가볍고 무른 느낌이었다. 나는 많은 나무를 다뤄보지는 않았지만 수종마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강도와 결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수종에서도 나무가 뿌리를 내렸던 곳의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가 자라 온 환경이 나무의 결과 색상을 다르게 했다. 예전에 한국 가구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안내를 해주시던 분이 우리 목가구를 보면서 이 나무의 무늬는 나무가 아팠던 시간을 나타내는 거라고 하셨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뭔가 나무가 지내기에 불편한 환경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급격하게 기온에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고 해충의 공격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외부의 환경은 나무의 생김새에 변화를 준다. 매끈하던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나무는 살아있기에 이에 반응하고 그 시간을 견딘다. 흔적이 그 나무만의 다름으로 남는다. 나무는 그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무는 천진하지 않다. 그 겉껍질은 투박하고 그 내면에는 살아온 세월이 차곡히 쌓여있다. 나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는 고통이 시간이 오면 그 시간을 버티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 모진 시간들이 나무의 생김새를 만들었다. 그 시간이 나무를 아름답게 했다.





길을 내는 일


톱질의 시작은 길을 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손에 쥐어진 톱을 보니 나무를 가르는 톱날이 정말 얇았다. 이걸로  단단한 나무를 자른다고? 어림없어 보였다. 슥삭슥삭 조심스럽게 톱질을 해본다. 가느다란 톱날이 질긴 나무를 버티지 못하고 깨질  보인다. 손에 힘이 들어가고 톱날이 휘어 수직으로 내려가지 못한다. 길이 굽기 시작한다. 톱날은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억지로 힘을 줄수록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톱날이 안쪽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처음 길을 내기 위해서는 순방향인 위로 톱을 그어야 부드럽게 길을   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길이 나면 순결과 역결 모두 편안하게 톱질이 된다. 길이 나있지 않는 나무에 선을 긋고 톱날을 얹어본다. 도구 생김새를 이해하고 움직여보니 한결 수월하다.  길이 틀어지면 그다음이 어려워진다. 신중하게 적절한 힘과 정확한 방향으로 톱을   쪽으로 당겼다가 밀어낸다.    해본다. 그렇게 처음 길이 만들어지면 그다음부터  단단하던 나무는 온순하게 나에게 몸을 맡겨오기 시작한다. 나무가 잘리는 소리가 경쾌해진다. 톱질이 즐거워진다.  





어디를 봐야 하는가


톱질이 시작되면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잠시 한눈을 팔면 톱날의 각도가 틀어지면서 다른 길을 내고 만다. 경사각이 생기면 나중에 그것과 닿는 면에 틈이 생긴다. 물론 그것을 수습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처음 주먹장을 만들었을 때 나의 서투른 톱질은 짜임을 엉성하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어디를 보고 톱질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바로 눈앞에 선에 집중하느라 반대편을 지나가는 톱날의 위치까지 파악하지 못했다. 톱질을 할 때는 시선을 고정하고 톱날이 내가 긋고자 하는 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선의 시작과 마지막을 함께 보고 있어야 하고 반대면의 톱날의 위치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지금 톱날이 지나가는 그 지점만 보고 있으면 톱날이 바로 가고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선의 시작과 마지막 그리고 지금을 동시에 보고 있어야 한다. 나무에서 나의 몸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리는 왼발은 앞으로 오른발은 뒤로 살짝 벌리고 선다. 톱질을 할 때는 팔만 앞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의 무게 중심을 이동하면 팔을 움직여야 힘도 덜 들지만 무엇보다 내가 톱이 지나가야 하는 길을 멀리서 또 가까이 보면서 나의 몸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다.  


톱질은 슬근슬근 하는 것이다. 처음 길을 내고 나서는, 나와 나무가 함께 리듬을 타면서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하는 일이다. 시선을 뗄 수 없는 긴장감 위에 솟아오르는 나무의 사각거림에서 절로 흥이 돋는 일, 톱질은 즐거운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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