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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ul 29. 2023

여행은 자꾸 길을 잃어버리는 것(1)

그리고 나를 만나는 것



내가 처음 혼자서 유럽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첫 질문이 무섭지 않냐는 것, 그리고 외롭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20대 때 혼자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여행도 다녔던 친구들도 나이가 들면 왠지 더 마음이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위기 순간을 혼자 극복해 내야 것을 의미했다. 물론 즐겁고 행복한 순간조차 외로이 맞이해야 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고 예상치 못한 위험에 직면해서 내가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떻게 대응해 가는 지를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이다.


나는 헬싱키를 경유해서 파리에 도착하는 핀에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헬싱키에 도착할 무렵 나는 파리의 샤를 드 골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의 게이트 번호를 확인했다. 모니터의 탭을 내리다 보니 비행기의 탐승 게이트는 19번이었고 게이트가 닫히는 시간은 5시 20분이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이 안내 모니터를 사진 찍어 혹시 모를 나의 건망증에 대비하였다. 헬싱키공항에 4시 45분 도착, 환승게이트로 맹렬히 달렸다. 긴 거리를 달려가니 환승게이트에서 시큐리티 체크를 다시 해야 했고 커스텀도 다시 통과해야 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줄은 길고 가슴은 답답했다. 커스텀을 통과하자 면세점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예쁜 상점들...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였으나 시간이 없었다. 19번 게이트까지 숨이 차도록 달렸다. 게이트에 도착한 시간은 5시 24분. 4분 지각이다. 게이트는 닫혔고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창 밖으로 아직 출발하지 않은 비행기가 보였다. 비행기 입구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사람들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벨트형 차단봉이 가로막혀있었다. 이성이 흔들린 나는 저 벨트 아래로 몸을 숙이고 들어가 출입구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 싶었다. 만약 그랬다면 공항 경찰에게 끌려갔을 것이다. 다행히 그만큼의 이성이 살아남아 나를 지켜주었다. '큰소리치고 떠나 온 여행인데 이 정도 일에 마음이 흔들리다니......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고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았다. 놀라울 정도로 공항직원 또는 항공사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여행객에게 이야기해 보았지만 그들도 속수무책인 듯하였다. 내 마음이 급했던 건, 아직 밖에 서 있는 비행기가 곧 움직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비행기가 핀 에어가 아니고 에어 프랑스였다. 나는 순간 경유를 하면서 비행기가 공동 운항하는 타 항공사의 비행기로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에어 프랑스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곳 헬싱키 공항에 전화를 해보자. 다행히도 전화를 받는다. 나는 침착하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나는 지금 19번 게이트 앞에 있고 게이트는 닫혔으나 바로 밖에 아직 있는 비행기가 떠나지 않고 있으니 내가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도와달라. 공항 직원은 말했다. 비행기 게이트는 한 번 닫히면 다시 열기 어렵다고. 그제야 나는 내가 이 비행기를 놓쳤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기 환승 안내 데스크 싸인이 보인다. 나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환승 안내 데스크에는 핀 에어 직원이 한 명 나와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직원에게 환승 시간이 40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을 토로하며 내가 비행기를 놓쳐 얼마나 억울한지 설명하였다. 직원은 티켓을 살펴보더니 내가 놓친 비행기는 에어 프랑스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티켓은 핀 에어이며 아직 게이트도 오픈하지 않았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게이트는 20번이라고 다시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 다행이면서도 부끄러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환승 게이트를 확인하면서 샤를 드 골 공항만 보고 (거기에 비행기명이 나와있지 않았다) 성급히 판단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환승 시간이 너무 빠듯했는데 안내 화면의 스크롤을 더 내려 내 비행기가 맞는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또 내 비행기 티켓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내가 생각한 게이트 번호만 믿고 앞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한 시간 반 이상의 충분한 환승시간을 여유롭게 보내지 못하고  엉뚱한 고생을 사서 한 꼴이 되었다. 


나를 맞아줄 비행기가 있는 20번 게이트를 향해 안도감 반, 허탈함 반 걸어가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00 63 5820014636' 번호를 보고 직감적으로 아까 나와 통화한 헬싱키 공항 직원이임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문제는 잘 해결되었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내가 비행기를 착각해서 생긴 에피소드였고 아무 문제 없이 잘 해결되었으니 걱정하지 않다고 된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전화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당신의 친절함에 정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 직원도 부디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다시 한번 나에기 인사를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두 시간이면 파리에 도착이다. 혼자 여행을 떠나보니 나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나는 여행만큼은 편안히 하려고 했다. 너무 계획적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날 그날 물 흐르듯이 발걸음 닿는 대로 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다 길을 잃었다. 제 갈길을 잘 가고 있을 때는 나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당연한 듯 지나가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은 줄곧 밖을 향한다. 있어야 할 것들이 내 앞에 있고 편하게 머물러야 할 것들에 나를 머물게 하면 그만이다. 물론 그것도 좋다. 하지만 길을 잃으면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급해진다. 특히  시간이 나를 서두르게 하면 막무가내로 돌진한다. 매우 용감해지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해 본다. 이런 나의 습성은 평소의 문제 상황에서의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였다. 위기 상황에서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문제와 나 자신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세상이 문제로 가득 차서 고통이 몸에 차오르기 시작한다. 온 힘을 다해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왜곡되기 시작하고 문제에 대한 나의 인식은 본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나의 이런 습성은 여행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더욱 극대화되었다. 생존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는 일상에서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우선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 상황을 왜곡시키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 문제와 연관된 주변의 사람들이 어리둥절 해질 수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마음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으면 몸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고정된 나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강력한 의지이다.


인간은 불완전하여 완벽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나의 지식과 경험이 온전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만나면 생각을 시작하고 답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문제는 그 문제 자체를 내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내가 축적한 경험과 지식의 한계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전적으로 나의 시각이라는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거나 결정을 해야 할 때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함으로 쉽게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들도 자신들의 한계 안에서 내린 불안전한 결론이었을 텐데. 어쩌면 그 옛 날 누군가가 내린 우연한 결정이 지금까지 아무런 고민 없이 우리에게 흘러내렸왔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결정에 나를 내 맡기다 보면 내가 경험해서 깨닫게 되는 순간의 감격은 모두 포기하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홀로 여행을 떠나 길을 잃어버리면 일상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되고 오직 나의 선택만이 허락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일상에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나의 모습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또 기꺼이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경유지였던 헬싱키 공항, 급하게 달려가면서도 사진을 남겼다 ©boah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면 더 많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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