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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소울 Jun 11. 2021

과거의 나와 반대 방향으로

- 아직도 남은 인생이 너무 길어서 시작된 고민 -

나는 공공기관에 다닌다. 오늘도 종일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민원 전화를 받았다. 매일 새로운 민원인과 같은 듯 다른 말을 반복하면서 지낸 것이 벌써 십 년 조금 넘었다. 요새 들어 부쩍 눈도 침침해진 것 같고, 무엇보다 경추 쪽이 많이 아파서 서글프다.


“원래 행정 업무란 게 민원인이 100번 물어보면 100번 같은 대답을 해주는 거 아니에요?”


처음 혼자 떠났던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행객이 내게 했던 말이다. 내 직업을 소개하면서 일이 힘들다고 말했더니, 그는 새삼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되물었다.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회사에 기간제로 들어온 어떤 직원은 공공기관 정규직이 꼭 되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로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인기가 더 높아져서, 공공기관 청년인턴에 합격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라 인턴을 ‘금턴’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줬다.     


일이 힘들어도 힘들어 죽겠다고 마음을 얘기하기 어려운 시대다. 나는 애초부터 그런 시대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더하다. 일이 힘들고 지금처럼 몸이 아플 때는 꼭 아빠 생각이 난다. 그러면 내가 왜 이 일을 선택했으며, 어째서 좀처럼 그만둘 수 없는지에 대한 해묵은 이유들이 되살아난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아빠가 직장에서 잘렸다. 그 이후론 어디에도 잘 나가지 않고 계속 집에만 있었다. 농사라든지 작은 가축들을 키운다든지 하는, 집에 있으면서도 할만한 일을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도 되려 더 외롭고 고단했을 것이다.     


난 겨우 초등학생이었으니까 그때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다만 땅이 꽤 많았던 할아버지 밑에서 적어도 돈 걱정은 하지 않고,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우면서 자랐던 우리 아빠는 궁핍이나 결핍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태어나 스스로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삶의 막막함을 느꼈던 나와는 다르게.     


가난해도 행복한 가정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아빠는 매사에 부정적인 편이었다. 굳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고집하지 않아도 먹고 살 만했던 사회가 IMF로 인해 한순간에 바뀌어버렸기 때문일까? 자연스럽고도 우연한 만남을 기대했던 행운과 기회로부터 멀어져 버린 순간부터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겠다는 사람 같았다.     


“넌 공부 머리는 아니니까 애쓰지 마.”

“넌 나 닮아서 안 돼.”     


아빠와 반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덜 자란 아이가 혼자서 궁리해낼 수 있는 구체적인 생존방법이었던 셈이다. 나는 언제나 희망을 믿었다. 조금이나마 더 나은 방법이 있고, 더 나은 곳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신이 내게 준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아마도 이 부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신성한 곳이다. 내 믿음을 증명할 기회를 줬고, 잘릴 걱정 없는 정규직의 삶을 누리게 해주었다. 고생 끝에 남은 것은 골병뿐이라고 하더라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로서는 힘든 어린 시절을 잘 버텨내고, 어릴 적 결심대로 여기까지 왔다. 꿈꿔왔던 회사를 십 년 동안 다니면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겪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내 남은 정년은 대략 이십오 년이다. 인구 노령화 때문에 정년이 연장된다면 더 늘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번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나에게 선물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를 헤아려왔다. 나라는 사람의 경계선을 알고 싶었고, 어떤 것들이 나를 형성해왔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이제야 내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부터는 과거의 나와 반대 방향으로 살아볼 작정이다. 어린 시절 내게 아무런 능력도 없었을 때 했던 지각과 판단들을 좌표로 삼으며, 필요 이상으로 오래 살아왔다는 깨달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서커스단에서 키우는 코끼리는 어릴 때부터 발목에 밧줄을 묶어놓는다고 한다. 그걸 풀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어른 코끼리가 되어서도 당연히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자신감이 없었다. 무언가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한다면 가족들이 의연하게 버텨내지 못하리라고 여겼다. 더 솔직히는 버텨준다고 하더라도, 우리 중 누군가가 언제라도 링 위로 흰 수건을 던져버릴까 봐 내가 견딜 자신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다.     


내 실패를 돌봐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두려움은 여전히 있다. 그러니 이번엔 실패를 맞닥뜨려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봐도 좋겠다. 꼭 혼자서는 못하게 생긴 것을 혼자 해보는 것도 좋겠다. 무서워했던 일들에 살금살금 가까이 가보고 싶다. 하나도 안 무서운 척 해보고도 싶다. 그렇게 가보지 않은 길을 한 발짝 두 발짝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십 년이 되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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