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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san May 02. 2021

코끼리 학교의돌봄 교실

독일 초등학교방과 후프로그램의 보조 교사

 코끼리 학교의 돌봄 교실의 보조 교사로 취직하게 된 것은  2017년 4월이었다. 우리 가족의 독일에 처음 도착했던 것이 2014년 3월이었고, 8월 말부터 입문 독일어 과정(A1)을 시작해서 2015년 1월 즈음에 중급(B1) 자격을 땄다. 그 해 7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동네의 작은 무역 회사에 근무를 했었는데, 사무직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첫 계약 기간만 채우고, 독일어 공부를 핑계로 그만두고 중급 심화(B2) 과정을 들으면서 지인의 소개로 Dual hochschule라는 산학협동 대학(학생들은 각각 소속된 직장이 있고, 회사가 필요한 인재를 위해 교육을 의뢰하는 형태)의  학생들에게 대만(Taiwan)에 대한 사회. 문화를 소개하는 영어 강의를 시작했다. 대학교가 근처 도시인 만하임에 있고, 1주일에 한번 있는 두 시간짜리 교양 수업이었는데, 2 학기 즈음 수업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학생들의 해외 연수 학기와 겹쳐서 세 번째 학기에 해당 과목이 개설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되면서 수업 준비에는 시간이 많이 드는...... 그야말로 미래가 불안한 교양 과목 시간강사였다.       


초등학교에 곧 입학할 아이의 적응을 위해서 학교의 예비 학급(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어린이를 위한)과 유치원 사이를 오가다가, 학교 정문에 붙은 구인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돌봄 교실 보조교사 구함. 

                                                아르바이트 혹은 탄력 근무(파트타임) 가능. 

                                                   외국인은 B1 이상의 언어 실력이 필요.


간신히 턱걸이를 한 수준이지만, 어쨌든 B1의 자격증은 있었고, '아이가 곧 학교에 입학하게 될 테니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면 내 아이의 교육에도 조금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맹모의 심정으로 독일어 수업 때 배웠던 이력서,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참조해서 서류를 보냈다. 그리고 2-3주쯤 지나자, A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본 구인 공고의 학교(아이가 입학하게 될 학교)는 이미 사람을 구했고, 옆 동네의 코끼리 초등학교에서도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그곳도 괜찮다면, 학교와 면접 일정을 잡아 보겠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초등학생들은 아침 7시 55분에 수업을 시작해서 1-2학년은 4교시, 3-4학년은 5-6교시까지 늦어도 1시 30분 전에는 정규 수업이 끝난다. 돌봄 교실에 등록을 한 어린이들은 점심을 학교에서 먹고, 숙제, 놀이, 취향에 따라 그룹 활동 등을 하며 오후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런 돌봄 교실은 학교에 따라서 학교 자체에서 만든 프로그램, 교회 등 종교 기관에서 학교와 협력하여 만드는 교실, 지역의 교육 담당 기관에서 관리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지역 행정기관이 외부 교육 관련 기관에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돌봄 교실이 학교 내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학교 외의 돌봄 센터에서 진행되기도 한다. 


코끼리 학교의 돌봄 교실은 지역의 교육 담당 기관이 독일 내 어린이 교육, 노인 복지 등 다양한 활동을 A 지원 기관에 의뢰해 진행되고 있었다. A 회사는 우리 동네를 포함하여 꽤 넓은 지역의 초등학교 돌봄 교실과 유치원 등을 맡아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채용은 A가 담당하지만 면접은 근무할 돌봄 교실의 담당자가 진행했다. 코끼리 학교도 괜찮다고 답을 하고 나니, 이틀쯤 지나서 코끼리 학교 돌봄 교실에서 연락이 왔다. 늦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대략 4-5시간 정도 학교 돌봄 교실에 방문할 수 있는 날짜를 정했다. 보육, 교육 등을 담당하는 직종은 고용자와  면접자 사이에 진행되는 일반적인 면접과 달리 면접자가 근무지를 방문해서 근무 환경을 살펴보고, 동료 혹은 어린이들과 상호작용도 하면서 서로 상견례를 하는 형식의 방문(Besuch)이 이루어진다.  독일은 유아원, 유치원, 돌봄 교실 등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방문 후 결정의 칼자루는 주로 구직자 쪽에 있다는 사실을 후에 알았다.


어느 이른 봄에 찾아 간  코끼리 초등학교(가명)는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빨간 대문을 들어서니 마당에 커다란 밤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 있고, 그 뒤로 돌로 견고히 지어진 이층 건물이 학교 건물 인 듯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리셉션 같이 보이는 공간에 단발머리의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오늘 방문한 보조 교사 지원자라고 이름을 말하자, 환히 웃으며 자신을 소개하고는 복도 쪽으로 나와 통화를 했던 담당자의 이름을 불렀다. 아담한 키, 다부진 체격의 중년의 금발 머리 부인이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는 바로 나에게 "우리는 동료끼리 이름 불러요" 하며 "씨"를 붙여서 공손히 불렀던 성을 빼고, 그냥 "모니"라고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리셉션의 "클라우디아", 하얀 백발 단발의 "에바", 긴 갈색머리의 젊은 "레나", 고등학교 학생 같이 보이는 남자 동료 "펙릭스"를 차례로 소개받고 성을 빼고 "쥬디"라고 소개했다. 모니는 학교의 곳곳을 보여주었는데, 학교에는 내가 들어왔던 "하얀 마당"이라고 부르는 앞마당, 건물 뒤쪽의 작은 축구장이 있는 "빨간 마당"이라고 부르는 뒷마당 그리고 1층의 몇몇 교실이 돌봄 반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이어서 학교 뒷문으로 빠져나가 20m 정도 떨어진 DRK(독일 적십자)라는 건물로 안내했다. 


일 층에 화장실이 두 칸, 세면대가 두 개 그리고 옷이나 신발을 갈아 신을 수 있는 공간이 한 칸 있고, 계단을 통해 이 층으로 올라가자 어린이용 의자와 커다란 탁자가 놓인 넓은 공간이 나왔다. 10명쯤 앉을 수 있는 어린이용 탁자가 세 개, 의자가 각 탁자에 10개쯤 놓여있었다. 안 쪽으로 열린 부엌이 있었고, 식기 세척기, 오븐 및 전기레인지, 냉장고, 싱크대, 조리대 등이 들어차 있었다. 식탁 뒤쪽으로 두세 개의 계단을 오르면 3-4인 용 책상과 걸상, 그리고 소파와 책장이 놓여 있었다. 벽과 붙은 가장 안 쪽에는 바닥에 푹신한 매트와 쿠션이 쌓여있고, 2-3명이 들어가면 알맞은 작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차단 커튼이 위로 매달려 있었다. 주방에는 "안넷"과 "수잔"이란 노년의 동료가 아이들의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고, 모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모니는 이 공간은 식당으로  아이들에게 "DRK"로 불리며, 독일 적십자에서 학교에 빌려준 것이라고 했다. 학교가 너무 작아서, 식당과 놀이 공간이 학교 밖에 있다며 보여줄 곳이 더 있다고 했다.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어린이 수가 25명이라며, 보통 수업이 일찍 끝나는 저 학년 학생들이 먼저, 그리고 나머지 학년들이 순차적으로 식사를 한 다고 했다.  DRK에서 식사를 하고 숙제를 끝낸 아이들은 다시 이곳에 와서 책을 읽거나 놀 수 있는데, 공간이 너무 분비지 않도록 이용 인원수에 제한을 둔다고 했다. 


DRK를 구경하고 나와서 모니는 나지막한 언덕을 다 내려가서 마을의 작은 소방서 옆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학교에서 200M는 족히 떨어진 곳이었는데, 바닥에 노란색 발자국이 그려져 있었다. 발자국은 예상대로 아이들을 위한 길잡이였고, 소방서 옆의 건물은 "옛날 시청"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이 건물은 시청에 소속된 건물로 1층에는 화장실, 주방, 창고, 그리고 공작실과 놀이실 등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고, 이 층에는 모니의 사무실, 미니 축구대와 당구대가 비치된 게임방, 그리고 책과 블록 등 놀잇감과 소파가 있는 방이 있었다. 이곳은 학교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1-2학년은 아이들끼리 놀러 오지 못하고 고 학년의 경우는 3명 이상이 함께 오거나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단다. 너무 세세한 규칙에 다소 놀랐지만, 그림을 그리고 공작을 하고 있는 아이들 몇몇과 인사를 나누고 모니의 사무실로 향했다.  


아이들의 숙제 시간만 빼면 거의 다 둘러본 셈이다.  돌봄 교실 아이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방문 날에 만난 동료들이 8명에 가까워서  교사가 꽤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니는 사무실에서 느낌이 어땠냐고 물으며, 근무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방문이 즐거웠고,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잘 배치되어 있는 것 같고, 특히 종이접기 같은 공작을 좋아해서 나중에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으면 바란다고 했다. 모니는 자신도 느낌이 좋다며, 조만간 방문 결과를 A사에게 전하면, 그쪽 담당자가 다시 연락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방문을 끝내고 좋은 느낌으로 집에 돌아왔고, 며칠 후 A사에서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면 좋겠다는 확답을 받았다며 근무 계약을 위해 회사가 있는 D시에서 만나자고 날짜를 정했다. 그야말로 새로운 직업의 세계로 향한 첫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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