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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꾸미 Apr 18. 2022

'여행'이란 그 찬란한 추억

잠시 멈추고 여유를 가질 때의 첫 느낌에 대해서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기 전, 나는 언제나 그랬듯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답답하고 사람들끼리 얼기설기 엉켜있는 사회 속에서 잠시나마 조용히 달아나고자 했던 '나의 도피처'였었다.

목디스크로 인한 신경성 두통에 시달리며 일을 다니고, 회사에서 퇴근하면 한의원으로 달려가 따뜻하게 몸을 침대에서 지지며 긴장을 풀어주던 그때. 퇴사를 하면 항상 그 아팠던 몸은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여행 가기 한 달 전에는 이미 따뜻한 땅에서 새싹이 삐죽삐죽 피어오르듯 광합성을 받을 준비를 하는 느낌이다. 캐리어를 준비할 때는 이렇게 내가 꼼꼼한지도 몰랐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잘 준비하는 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덜렁대는 게 습관이었던 내가 이렇게 꼼꼼했다니! 역시 좋아하는 걸 하면 덜렁대고 그런 문제는 사라진다. 이렇게 몰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여행의 합리화랄까??^^;)


 기억난다. 회사 마지막 당일 나는 12 30분까지 비행기에 탑승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역시나 언제든 문제의 상황은 벌어지고 만다.  갑자기 퇴사하니 밥을 사주신다고 하시는 거였다. 나에게도 계획이 있는데 뜬금없이 밥을 사주신다며 중간에 멈추고  먹자고 하시고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시고 바로 나가셔서 당황했다. 마지막 날까지 일은 바빴기에 아무런 생각도  났었고 빠른 시간 안에 정리를 다하고 나왔다.  먹으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고 이미 밥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먹고 자리를 뜨고 싶었다.  원래는 퇴근을 하고 나는 집에 가서  먹고 준비하고 바로 캐리어를 가지고 공항리무진을 탔어야 했다.(조금이나마 쉬고 나서 준비하려 했다)   시공간이 늘어난 곳에서 마지막 밥을 함께 하고 준비하고 공항리무진을 탔을   기분은 정말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 스릴 넘치던 시간이었다. 마치 여자 제임스 본드가  것처럼)버스 안에서 보던 항상 똑같고 바글바글한 사람들의 퇴근 풍경들이 어떻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정도로 이미 마인드 컨트롤은 최상급이었다.


 깜깜한 거리에 따뜻한 불빛이 아스팔트를 비추고 그 도로를 달려 나가는 버스 그리고 '샘킴의 시애틀'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꽂고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쳐 가는 가로수와 가로등들을 뒤로하고 공항에 다 달았고 공항 앞에서 자동문이 열렸을 때는 그 설렘을 잊을 수가 없다. 시원한 공항 안의 공기에 찬 대리석의 냄새가 코 끝에 닿을 때 그리고 매끈한 바닥에 내 캐리어 바퀴가 미끄러질 때 이제 이곳을 떠난다는 설렘에 온 몸에 전율이 찌릿찌릿하게 느껴졌다. 여권을 들고 티켓을 받고 내 캐리어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렸을 때, 그리고 게이트로 가는 무빙워크를 타고 들뜬 마음에 웃음꽃이 피어나던 시작의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넓게 펼쳐져 있는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비행기의 형체들 속에서 내가 타야 할 비행기를 찾을 때, 그 안도감은 편한 느낌을 줄뿐더러 내가 전생에 유목민이었나 싶을 정도로 의심을 해볼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승무원님들과 밝은 인사를 하고 들어갈 때는 비좁아 보이지만 내 위치를 찾아 자리를 앉았을 때 좁다는 생각보다 이미 내가 겪을 경험이 기대 이상 일 것 같다는 두근대는 내 마음이 더 커서 그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륙하기 전 내 옆에 바짝 붙어있는 둥근 모서리의 창문 너머 주황색 꼬깔콘들과 대기 중인 비행기들을 바라보며 핸드폰을 켜고 비행기 모드로 바꾼 나의 바빴던 일상에 잠시 쉼을 준 나에게 감사했다. (항시 바빴던 핸드폰은 이제 쉼을 갖고 잠드리라...)


이곳이 바다인지 하늘인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듯하다.



  분명히 목, 허리 통증으로 장시간의 비행을 어떻게 견디지라는 생각으로 걱정을 했던 반대로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거에 정신 승리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앉아만 있으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라서 기내식을 여러 번 먹는 느낌이었다. 마치 사육을 당하면 이런 기분일까?  아무튼 감자 빵처럼 비슷한 간식을 주셔서 바로 맥주가 당겼다. 역시 각 나라마다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주류나 음식 중에서 제일 대표하는 걸로 먹어야 잘 먹었다는 기분이 들기에 바로 초록 맥주를 선택했었고, 포실포실하고 맛있는 빵에 맥주 한잔을 마시니 이곳이 천국이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을 때 행복감을 많이 느끼나 보다.)   먹다 보니 빵 리필이 필요한 시점에 승무원님이 지나가셔 빵 리필이 가능한지 물었다. 선뜻 웃음을 지으시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간식세트를 한 판 더 갖다 주시는 거였다. (나는 빵만 있으면 됐는데... 배가 터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승무원님은 남는 거라서 괜찮다고 하시길래 받고 남은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야무지게 먹었다.


기내식 사육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그 때.


 기내식으로 빵빵하게 오른 내 배와 함께 비행기 바퀴는 아스팔트 바닥에 덜컹거리며 착륙했고, 동시에 내 설렘과 함께 시작한 여행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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