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 Purple Jul 12. 2016

퇴사 후 행복감에 대한 이야기

반딧불처럼 아름답고 달콤한 금단의 열매

작년 봄, 코타키나발루라는 낯설고 긴 이름의 섬으로 휴양을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혼자 한밤중에 보트를 타고 강줄기를 따라 여행하는 반딧불 투어를 신청했다.

네댓 명 남짓의 그룹 관광객들을 태운 보트가 깜깜한 강물 위를 조용히 헤쳐나갔다. 빛의 흔적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할 찰나 - 수풀 틈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반딧불들이 나타났다. 도시의 휘황한 불빛과는 전혀 다른 희미한 빛이었지만, 마치 별들이 길을 잃다 수줍게 주저앉아 버린 양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다 가이드의 꼬임에 넘어온 한 마리가 우연히 손 안으로 날아들어왔다. 너무나도 연약하고 아름다운 존재, 희미하게 깜박이는 가녀린 빛이 사랑스러워 차마 놓고 싶지 않았으나, 소유할 수도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생명을 창조한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그와 같은 것을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없음에 아쉬움을 느끼며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퇴사 후 고작 보름 정도가 지난 요즘, 내가 느끼는 행복감은 그때의 작은 반딧불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과도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압도하든, 아니면 다른 직장을 구한 후에 훨씬 더 힘든 나날이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오늘 당장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만성 피로가 사라졌고, 더 이상 왕복 세 시간 거리를 밀리고 치이며 출근하지 않아도 됐다. 도저히 실체를 알 수 없는, 밑 빠진 독 같은 목표를 향해 자신을 쏟아붓지 않아도 된다. 퇴근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쓰러져 있는 것도, '이 회사 나오면 뭐 먹고살지?'라며 매일같이 곱씹던 고민도 사라졌다.


어디 그뿐이랴. 앞서 떠난 동료들의 빈자리를 가까스로 메꾸는 것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고, 일요일 저녁마다 반복되던 중압감도 사라졌다. 내 위치나 능력으로는 아무리 노력해 봤자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으며, 그저 주어진 환경을 견딜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서 오던 굴욕감도, 수치심도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퇴사를 고민해 본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퇴근을 해도, 주말을 맞아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아무리 몸을 씻어내고 술을 들이부어도 끈질기게 들러붙던 그 지긋지긋하고 몸서리쳐지는 불쾌감 말이다.

결국 나는 용기를 냈고, 월급을 포기한 대가로 인생을 건 도박 내지는 실험을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투자할 시간을 가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베팅한 것이다. 소심하고 겁 많던 나에게, 이렇게 순도 100% 자신만을 위시한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재지변과 같은 대혁명이었다.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내가 사고하고 내가 판단하여 내 가치관에 따라 나 스스로 세운 목표들만을 위해 노력하는 삶.


닫혀 있던 좁은 세계의 문들이 한꺼번에 열렸고, 틈 사이로 수많은 반딧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2016. 7.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