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이유
나는 너에게
힘내라는 흔한 말이나
내일은 더 나을 거라는
값싼 희망 따위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하루만큼 더해진 피로를 안고
매일 아침 문을 나서는 너는
벌써 적잖이 힘내고 있으며
많은 것과 싸우고 있으므로
다만 무딘 속 한켠에라도
오늘 출근한 것,
그것만으로 충분함을
새기고 또 새겨 넣어라.
친구는 데친 시금치처럼 축 늘어진 채로 젓가락질을 했다. 분명 엄청나게 피곤할 텐데 먹고 말하고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안줏거리가 순식간에 바닥났다. 그간 힘들게 토해낸 것들만큼 채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우리는 먹고 또 먹었다.
며칠 전에 만난 다른 친구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너무나 걱정할 것이 많고 또 너무나 피곤해서, 심지어는 자신이 피곤한 줄도 모르는 상태 말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내게, 스스로가 무엇을 잘못했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었다는 듯, 자기가 우울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며 나에게 유쾌한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것까지 사과했다.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토록 지친 상태가 되어서도 월요일이면 다시 악착같이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못났다고 느껴야 하는 것이란 말인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 있는 것 같았다.
혹시 회사에 자존감 블랙홀 같은 것이 있는 걸까
멍든 가슴을 안고, 매일매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출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 일하다 보면 왠지 나 스스로가 굉장히 부족한 존재로 느껴지며, 내가 받는 월급만큼 일을 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들도 꽤 많기 때문이다. 첫 직장을 얻었을 때, 일을 위해서라면 무쇠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의욕과 자부심을 생각해 보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회생활'이라는 단어의 무게처럼, 원래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엄청나게 힘든 일인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심지어 스스로 전혀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도 말이다. 회사는 늘 알게 모르게 구성원들을 재촉하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을 연구하고 있고, 공식적인 평가 외에도 암묵적인 비판과 피드백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다. 그래서 직급이나 실적과 상관없이 늘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는데, 그에 비해 실제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적다 보니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 같다. 거대한 목표의 일부를 개개인이 쪼개서 가져가게 되므로 매일매일 성취감을 얻는 것도 쉽지 않고 말이다.
그럼에도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은 이유는, 그렇게 일하는 것 자체가 사실 '버틴다'거나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출근하기 싫은 마음과 싸우고,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업무와 싸우고, 불확실한 미래와 맞서 싸우는 아주 적극적인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싸움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지금 당장 싸우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고, 그러므로 내일 출근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어쩌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용기 있는 결정일 수 있는 것이다.
영어에는 'breadwinner'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빵을 가져오는 사람, 즉 가장 혹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인데, 일하는 사람의 위대함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다고 나는 느낀다. 설령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그 월급이 무엇과 싸워 얻은 승리의 대가임을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