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사랑은 신경계적 작용의 결과다. 흔히 사랑을 하고 있을 때 나오는 호르몬은 도파민, 코르티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옥시토신 따위다. 갓 만난 연인들은 앞의 네 가지 호르몬들이 주로 나온다. 세로토닌은 행복호르몬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우울증 치료제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노르에피네프린은 사람을 혈관을 수축시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살을 찌게도 만들지만 힘든 상황에서 사람을 견디게 해준다. 도파민은 설명할 필요도 없고. 갓 만난 연인들은 함께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계속 보고 싶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반면 관계가 성숙해지면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한다. 반면 다른 호르몬들의 분비는 감소한다. 옥시토신은 사랑호르몬 내지 모성애호르몬으로 불린다. 옥시토신의 분비가 증가하면 심리적 안정감이 증대한다. 반면 다른 호르몬 분비량의 감소로 이전에 느꼈던 감정들은 다시 느끼기 어려워진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옥시토신이 폭력성 역시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산란기, 혹은 어린 개체를 키우는 짐승들이 공격적으로 변화하는게 이런 이유에서이다. 마치 긍정이 부정이듯, 사랑은 곧 폭력인 셈이다.
과학자들은 엄마 곰이 자식을 낳으면 사나워지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아기를 지키기 위해 그렇다고. 하지만 이런 목적론적 설명은 과학적인 설명이라곤 할 수 없다. 어미 곰이 사나워지는 이유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옥시토신이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가끔 난 과학이 싫어진다.
프롬은 사랑을 "대상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발전을 원조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에게 '사랑=자유'인 셈이다. 이 정의가 프롬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된 것 아니냐는 의문은 둘 째치고, 대상의 자유를 해하는 건 폭력임은 확실하다.
프롬: 자유=사랑
옥시토신: 사랑=폭력
자유=폭력, 사랑=자유=폭력
자유와 폭력은 등치일까? 사랑과 폭력은 동치일까? 사랑은 자유인가?
이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프롬의 사랑이 현실에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는 인간 성격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가능할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상정하는 일은 옳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