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15살 언젠가, 집의 공기가 엄중했다. 밤 10시, 막 학원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현관 앞에서부터 맥을 짚어가던 나는 조심히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얘야, 와보거라. 그 말을 듣고 내 몸이 먼저 무언가를 직감한 듯 소름이 돋았다.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은 거실에 모여 앉았다. 아빠는 힘겹게 입을 여셨다.
“수희야, 넌 입양아란다.”
갑작스러운 말에 난 고개를 쳐들어 부모님을 응시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갓난쟁이 때의 일화다. 과거 한 다세대 주택에서 큰 화재가 났다고 한다. 아버지가 막 퇴근을 한 무렵에는 화마가 이미 온 집을 집어삼킨 후였다고 한다. 처음엔 자신의 아들을 구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초입에서 아기가 울음소리를 듣고는 계획을 바꾸었고, 그렇게 살아남은 게 나라는 이야기다. 그들의 자식도, 나의 혈육들도 타다 남은 뼛조각으로만 조금 남았다.
“네?”
그건 일종의 단말마였다.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 눈을 피했다. 이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뭐 이런 농담을 하냐는 말에 둘은 묵묵부답이었다. 처음엔 그 말이 거짓말이길 바랐던 마음은 곧 분노로 뒤바뀌었다.
“애초에 왜 알려주신 거예요?”
“이제 알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난 코웃음을 치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때 축축해진 소매는 아직도 마음에 사무쳐 있다. 내 세계는 싸구려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무엇보다도 잘고 잘게. 마음마저 찢겨버릴 정도로 날카롭게. 난 눈썰미가 좋은 편이다. 우리 가족이 닮은 점 하나 없다는 건 알았다. 흑발에 약간이나마 곱슬기가 있는 부모님과 달리 나는 뻣뻣한 갈색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우린 정말 발가락도 닮지 않았다. 친척들이 우리들의 앞에서 유난히 조심스러워 보이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그런데도 의심조차 하지 못한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모르고 사는 게 좋았을 텐데. 어렸던 나는 그렇게 믿었다.
내 사춘기는 이렇듯 가족에 대한 의문에 집어삼켜진 시기였다. 날 진짜로 사랑하긴 하는 걸까?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모님은 정말 서로를 사랑하실까? 나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에 빚졌다는 사실은 유쾌하진 않은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일종의 대체품이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생겼다. 강릉의 바람은 언제나 솔향과 소금기를 실어 오곤 했다. 나도 그런 냄새에 쩌들어 있다는 걸 알았다. 온 강릉에서 이런 냄새가 났다. 나에게도, 내 부모님에게도 이런 냄새가 배있을 테다. 그래서 그 냄새가 싫었다.
그래서 담배를 배웠다. 담배 냄새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토록 맵고 지독한 연기라면 무슨 향이든 덮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거의 토할 뻔했는데, 나흘 정도 매일 피니 익숙해졌다. 부모님은 왠지 용돈을 올려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과 대신인 것 같다. 집에 들어오면 부모님이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빤히 보였다. 그런 분위기가 날 불편하게 했지만 나도 먼저 나서진 못했다. 내가 용기도 없고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도 몰랐듯이 부모님도 그러셨을 테다. 많아진 용돈을 가지고 처음으로 달려간 곳은 미용실이었다. 머리카락을 금색으로 물들이고 끝단에 살짝 웨이브를 넣어보았다. 미용실에서 커트말고 다른 걸 해보긴 처음이었다. 이러면 기분 전환이 될 줄 알았건만, 생각만큼 들뜨진 않았다. 난 그런 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멀진 않았지만 걷기는 약간 힘에 부치는 거리였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버스를 타면 강릉대학교를 지나 곧장 학교를 향한다. 문성고등학교의 앞에는 원룸촌이 있다. 왼쪽에는 강릉대학교, 오른쪽에는 너른 초지에 이어 한옥마을이 위치해 있다. 마음에 드는 입지는 아니었다. 학교 근처에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분식집이나 노래방 따위가 있었더라도 그곳을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허진아라는 소녀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입학식 때였다. 똑단발을 한 채로 맨 앞에 앉은 여자애. 손목에 찬 염주 때문에 눈이 갔다. 염주에 가려진 손목이 가녀렸다. 단정하고 화장기없는 수수한 얼굴과 촌스러운 패션 때문에 우리가 친해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짙게 화장을 하고 머리에 롤을 만 채로 집과 학교를 왕복했다. 친구들과 모여 담배를 피워대는 것이 일과기도 했다. 비록 그녀가 어느 무리와는 사이가 안 좋다거나 편애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대화상대들을 보면 대개 얌전한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흔치 않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친해질 일은 없을 거야, 그녀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나와 친구들 사이에선 가끔 진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얘가 좀 얌전하던데? 해달라면 잘해주던데? 정도의 말이 보통이었다. 가끔 애가 너무 촌스럽다더니, 이상한 한자로 된 책을 읽는다느니 같은 비방들. 눈빛이 무섭다는 험담도 있었다.
"동공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난 소름 끼쳐서 말도 못 걸겠어. 아 깜짝이야! 수희 너 또 이러네?"
대화 주제를 바꾸고 싶어서 등 뒤의 후크를 끌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학기초 담임은 그런 우릴 억지로 묶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날 교무실로 불러냈다. 교무실 한켠에 마련된 상담실에는 이미 두 여자가 앉아있었다. 벽이 통유리였기 때문에 그 모습이 훤히 보였다. 여학생은 병에 든 오렌지주스에 빨대를 꽂아 마시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준 것 같다. 양손으로 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무척 다소곳했다. 그런 모습을 선생님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쩐지 긴장이 됐다.
“무슨 일이세요?”
“왔구나! 수희야. 앉아라.”
나는 문가의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엔 진아, 바로 옆 상석엔 선생님이 앉아있었다. 진아를 그토록 가까운 곳에서 대면하긴 처음이었다. 난 이 애랑 뭐한 게 없는데? 화장을 떡칠한 중년의 얼굴과 허진아의 둥글고 큼직한 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말을 시작했다. 그녀의 입 안에서 강릉의 냄새가 났다.
“선생님이 오늘 수행평가를 내줄 거야. 두 명이서 하는 걸로. 조를 자유롭게 짜게 해줄 건데 너희 둘은 같이 하라고.”
“네? 왜요?”
“선생님은 네가 좀 성실하게 학교생활에 임해주었으면 좋겠다. 진아가 꼼꼼하고 참하니까 옆에서 잘 배우렴.”
“얘는 좋다고 했어요?”
“그럼, 우리 진아는 모범생이거든.”
담임은 진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표정 변화 없이 얌전히 있었는데, 마치 무슨 일이든 이런 일에도 별 신경을 안 쓴다는 인상이었다. 어른 말 잘 듣는 범생이구먼, 난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은 연이어 제대로만 하면 성적을 좀 더 쳐주겠다고까지 말했다. 짜증이 좀 나긴 했다. 그래도 거기서 따지고 성질을 부릴 순 없었다. 알겠어요……, 체념하며 대답하고 진아와 함께 교무실에서 나왔다.
“잘 부탁해.”
그 아이가 날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난 대답도 없이 한숨을 푹 쉬곤 먼저 교실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재수탱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6교시, 담임선생님은 정말로 당일 수행평가를 내셨다. 반 아이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고 앓는 소리도 들렸다. 이미 조가 정해진 나 역시도 비슷한 심정이긴 했다. 이미 조별 평가를 줄 거라고 알았지만 막상 닥치니 얼떨떨했던 것이다. 심지어 거의, 전혀 모르는 사이에 가깝고. 쉬는 시간 내가 면전에 대고 한숨을 쉬었던 아이가 찾아왔다.
“수행평가 언제부터 할까? 혹시 오늘 학교 끝나곤 시간 괜찮아?”
그녀는 심지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성적 때문에 이러는 거겠지, 아니면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이러는 건가 하는 나쁜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미안하고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긴 이건 내가 잘못한 일이었고 고마워 해야 할 상황이었다. 내가 참여하지 않아 과제를 망친다면 내 성적만 고꾸라지는 것도 아니니 미안할 것이다. 난 그러자고 대답했다. 수행평가는 사회과목의 일환으로 조마다 뭐시기 뭐시기 사례를 조사하고 글을 써서 제출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당시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진아의 꼼꼼함만은 인상 깊게 남아있다. 담임선생님의 말대로였다. 나한테도 무엇을 할지 친절하게 살펴주고 알려주었기에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네, 아버지.”
과제를 하던 중 진아는 전화를 받았다. 아마 8시쯤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가족한테 온 전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무적인 말투로 네, 네하고 대꾸했다. 이 외에는 일절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 먼저 가볼게.”
“무슨 일 있어?”
“아버지가 부르셔서.”
그녀의 아버지가 딸을 부른 이유를 며칠 후에야 알았다. 하늘엔 노을이 지고 있었고, 난 학원을 땡땡이치고 친구들을 보러 익숙지 않은 동네를 헤매던 중이었다. 굳이 따지면 내 집과 옆옆동네였는데, 혼자 와본 적은 처음이라 옳게 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러던 와중 맞은 편에서 모자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보였다. 방금 막 급하게 집에 나온 듯 회색 후드에 돌핀 팬츠 차림이었다. 한 손에는 검은 봉투가 들려있었는데 위로 소주병 몇 개가 기다란 목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우린 서로를 무심코 지나쳤다. 난 지나친 사람이 허진아라고 돌연 직감했고, 뒤를 돌아 어깨를 붙잡았다. 내 짐작이 맞았다.
“역시 진아 맞구나! 이 근처 살아?”
“응.”
나는 무심코 소주병들과 진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버지 심부름이라고 묻기도 전에 말하는 걸 보니 내 시선을 의식한 듯했다.
“그때도 심부름 때문에 집에 갔단 거야?”
말없이 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제서야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급하게 손을 떼고 내일 학교에서 보자고 인사했다. 그녀 역시 똑같이 인사했다. 그리고 곧 거리 안으로 사라졌다. 남 일인데도 어떤 말을 건네줘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속으로 쳇 하고 소리를 뱉었다. 심부름만 아니었어도 길 알려달라고 하는 거였는데 하고. 다행히 난 길을 않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친구랑 노는 와중에도 신나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노래방에서 방방 뛰면서 빠른 노래를 부리는데도 그랬다. 괜히 심란해하는 거라고 17살의 나는 생각했다. 수행평가가 끝나고 선생님은 우릴 따로 불러 흡족함을 표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진아는 항상 비슷한 표정에 같은 말투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화기애애한 모임이었는데도 유리 다리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모두 내 눈치를 보고 있다. 화로 위에선 소고기가 연기를 내며 익어가고 있다. 심지어 석쇠가 금색인 곳이었다. 고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인데도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친지들에게선 강릉의 냄새가 풍겼다. 숯 향과 냄새가 섞여 코가 아릴 정도였다. 앞에서 허기가 지긴커녕 속이 안 좋아진 것이다. 언젠가부터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를 되는 대로 피해 왔다. 아침은 대개 걸렸는데, 먹더라도 엄마가 차려준 걸 혼자 먹었다. 보통 점심과 저녁은 학교나 학원 근처에서 해결했으니까. 학원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내가 깨작거리자, 삼촌은 소고기는 살짝 덜 익어야 해. 안 그러면 질기다, 라고 말씀하시며 집게질을 해주셨다. 내 앞 그릇 위에 소고기가 몇 점 놓였다. 녹는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도저히 먹고 싶지 않았다. 속이 불편해져 밥을 시켜달라고 했고 초식동물처럼 치커리, 두부 으깬 호박을 반참삼았다. 고기 좀 더 먹으렴. 어머니가 숟가락 위에 고기를 얹어주시며 말했다. 내가 채소만 먹으니 친척들 눈치를 본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난 그저 속이 안 좋은 것이라고 대꾸했다.
"그거 한우야 평소엔 못 먹으니까 많이 먹어. 몸에도 좋으니까”
아빠가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땐 아버지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빠는 단지 내가 어려웠고.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도 용기를 낸 거라는 걸 사춘기 시절의 나는 몰랐다. 나는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다 먹었으니까. 갈게요.”
나는 곧장 식당에서 나갔다. 부모님이 나에게 뭐라고 했던 것 같다. 벌써 다 먹었니? 아니면 혹시 어디 아프니? 같은 거였을 성싶다. 난 아직도 그날을 후회한다. 사과도 했고 용서도 받았지만 그렇다.
“수희야 프린트 가져왔지?”
프린트? 내가 의아해하자 허진아는 품에 두꺼운 종이 뭉치를 안은 채로 고객 응대 직원처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방학 동안 학교에서 진행하는 보충수업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엔 성적이 낮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 참여, 형식적으로 부모님의 동의를 구해와야 하는 상황이다. 아 맞다! 탄성 섞어 대답했다.
“그거 오늘까지 내야 하니까. 너가 여기다가 사인 좀 해줄래?”
“정말, 21세기에 이런 학교의 횡포가 사라져야 하는데. 학생 인권뭐시기도 생겼잖아?”
나는 보호자서명란에 싸인을 하며 투덜거렸다.
“근데 왜 이걸 너가 걷고 다녀? 반장이나 선생님이 걷지 않아?”
“나도 보충수업 듣거든. 선생님이 이왕이면 하는 사람이 걷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
“안 귀찮아? 너가 할 만한 일도 아니잖아.”
“누가하든 뭐 어때.”
다른 애들이었으면 귀찮다는 티, 싫다는 티 한 번이라도 냈을 텐데, 그녀에겐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진아는 표정이며 어조며 늘 한결같았다. 이젠 신비스러울 정도로 보였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던 것 같다. 방학 동안 발 들이기도 싫은 학교에 반나절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하복조차 갑갑하고 땀이 찼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에어컨은 잘 틀어주었다. 수업 시간 중 대부분은 졸거나 핸드폰을 하며 흘려보냈다. 다행히 선생님의 열의는 차게 식어있었다. 땡땡이도 종종 쳤다. 친구 없는 학교는 끔찍했다.
나랑 달리 허진아는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칠판과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방학에 교복을 갖춰 입은 채로 말이다. 심지어 소매의 단추까지 다 잠갔다. 한여름엔 하복이라도 더울 텐데. 그녀는 열심히 노트에 무언가를 옮겨 적었고, 가끔 선생님의 수업에 맞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기도 했다. 나중엔 핸드폰을 하는 것도 지루해 그 아이를 뒤에서 관찰했다. 얼마 안 가 질렸다. 결국 나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기로 했다. 첫날은 실패했다. 교실에 들어온 찰나 누군가가 이 문제 어떻게 푸는지 아냐며 옆자리를 차지했다. 책걸상 사이를 지나며 둘을 흘긋 보았다. 설명이 꽤 명쾌했는지 문제를 물어본 아이는 아! 하고 탄성을 내지르고는 같은 자리에서 계속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뒤에서 아쉬움으로 남은 수업을 흘려보냈다. 둘째 날은 지각을 해버려서 실패, 셋째 날은 땡땡이……, 네 번째, 다섯 번째 날도 비슷했다.
여섯째 날, 이번엔 성공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또 지각을 해버려 뒷문으로 들어와 아무 데나 남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항상 점심시간에 말을 걸고자 하면 사라지곤 했다. 보고 있자면 같이 앉던 아이와 먹는 것 같진 않았다. 난 편의점 김밥을 하나 사 들고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편의점엔 없고, 교실에는 당연히 없었다. 학내식당도 잠겨있다. 난 학교 주위를 싹싹 뒤졌다. 주변에 먹을 만한 곳이 편의점 말곤 없는데....., 정확히는 주차장을 겸비한 대형식당이 있긴 했다. 다만 10분은 걸어야 하고 학생이 혼자 갈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엄청 멀리 가서 먹거나 학교 안에 있는 걸 테다. 난 그렇게 홀로 중얼거리며 헤맸다. 시간을 보니 다음 수업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학교에서 허진아를 찾아보기로 했다. 난 평소라면 항상 잠겨있던 옥상에도 올라갔다. 어라? 라는 반응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옥상 문을 굳게 지키고 있는 자물쇠와 쇠사슬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문은 녹이라도 슨 듯한 붉은 얼룩이 져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 문고리가 빡빡할 것 같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잘 돌아갔다. 속 빈 쇠문이 생각보다 무거웠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양손으로 문을 밀자 흉벽 위에 앉아있는 허진아의 모습이 보였다. 손에 팩두유를 든 채로 앉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바람은 상큼한 향기를 실어 왔다. 향기 속에는 은은하게 달콤한 향이 느껴졌다. 과일냄새인가? 난 손바닥만 한 크기의 크래커 봉지가 날아 내 발치에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그걸 주웠다. 흰색 봉지엔 살구 냄새가 실려있었다.
“고마워. 내가 먹은 거거든.”
주워 든 쓰레기를 들고 진아에게 다가갔다.
“매일 여기서 먹던 거야?”
“응.”
“자물쇠는 어떻게 푼 거야?”
그녀는 글쎄? 하고는 빨대를 빨았다. 두유를 거의 다 마셨는지 큼지막한 공기 소리가 났다. 내가 다가가자, 손바닥을 핀 채로 쭉 뻗어왔다. 그 위에 크래커봉투를 올려주었다. 진아는 고맙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곧 종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 시간이 재개된 거다. 그녀는 내 왼손에 들린 김밥을 힐긋 보았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빨리 교실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아냐, 먹고 가. 기다려 줄게.”
“진짜? 너 수업 들어야 하잖아.”
“괜찮아.”
“어? 진짜? 진짜 너무 고마워!”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그렇게 놀랍지도, 기뻐하지도 않았을 거다. 나는 환호에 가까운 감사 인사를 하고 진아의 옆에 앉았다. 방금 전의 과일향기다. 냄새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진아가 있었다. 그녀는 여유로운 눈빛으로 턱을 괸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천천히 먹어도 된다고 말하는 듯. 때마침 바람이 불었다. 강릉은 11시가 넘으면 바다에서부터 수시로 세찬 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바람은 소녀의 머리 사이사이에서 냄새를 실어 왔다. 그녀에게선 솔향도, 바다 내음도 나지 않았다. 섬유유연제인지 샴푸인지, 그것도 아니면 향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이런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곧 김밥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천천히 먹으라며 가방에서 두유를 하나 뜯어주었다. 막힌 목을 풀고 씹는 속도를 줄이며 주변을 슬쩍 살폈다. 급하게 먹을 필요 없다는 의도는 눈치챘지만 수업시간이 이미 시작한 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날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니까? 두유랑 크래커 한 봉씩만 먹는 건가? 내가 아는 한 저 크래커는 한 봉지엔 대여섯 조각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마른 몸매는 저렇게 유지한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난 왜 방학에도 교복을 입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정도면 단정하지 않아? 뭐 입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덥지 않아?”
“여름이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 내 옷은 땀을 먹고 꿉꿉하고 눅눅한 것과 달리 진아의 옷은 뽀송해 보였다. 정말 신기한 애야, 하고 난 생각했다. 수업 시간엔 15분 정도 늦었다. 선생님은 다행히 별 말 없이 넘어가 주었다. 나만 지각했을 땐 분명 혼냈었는데......, 여하튼 보충수업이 끝나기까지 열흘 채 남지 않았지만, 남은 열흘은 결석도 지각도 하지 않고 나름 성실히 임했다. 수업을 듣진 않았지만 말이다.
“오늘은 커피 샀네?”
세븐일레븐 봉투에서 점심거리를 꺼내는 걸 진아가 지켜봤다. 한 입 할래? 내가 묻자 그녀는 그 아이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양손을 뻗어왔다. 30도 정도 웅크린 손에 알루미늄 캔을 주었다. 진아는 경계하듯 병을 살피고 뚜껑을 땄다. 한 모금 마시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난 킥킥거리며 웃었다. 캔에는 블랙이라고 금색 글자가 적혀있었다.
“너 쓴 거 진짜 못 먹는구나?”
“커피 처음이라……,”
부끄러워한다. 진아가 이렇게 감정표현을 한 적이 있었나? 찔끔 나오는 눈물을 털어내며 편의점의 로고가 박힌 봉투에서 캔을 하나 더 꺼냈다. 난 그걸 진아에게 건넸고, 그녀는 어쩐지 심통이 난 듯 굴며 캔을 받았다. 마스터 라떼……, 진아는 글자들을 읽으며 중얼거렸다. 마치 유독물질을 다루듯 커피를 살펴보다가 병을 따고 한 모금 들이켰다.
“이건 다네?”
보다 경직되어 있던 표정이 다소 놀란 듯한 표정으로 변하였다.
“편의점 커피는 거의 다 달아. 블랙이나 아메리카노라고 적힌 것만 피하면 돼. 1+1으로 산 거니까 너 마셔.”
“고마워. 잘 마실게.”
다음 날, 진아는 눈빛도 어쩐지 퀭했고 수업에 이전처럼 집중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흐트러진 모습은 처음이었다. 내가 묻자 그녀가 대답하길, 카페인 때문인지 오래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거에 무너지는 아이구나하고 난 생각했다. 보충 마지막 날이었다. 어쩌면 같이 점심을 먹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었다.
“이제 끝이네.”
“드디어 지루한 보충수업에서 해방이다.”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수아는 말없이 전방을 보고 있었다.
“이제 나랑 같이 밥 먹을 필요 없지? 넌 친구 많잖아.”
나는 얼빠진 채로 어?응?했다. 예와 같은 표정인데 느낌이 사뭇 달랐다. 모르겠다.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던 걸까? 나의 마음이 바뀌었던 걸까? 그제서야 보충수업이 끝났다는 게 실감났다.
“같이 먹자 밥. 항상은 아니겠지만.”
진아는 고개를 돌려 말없이 날 쳐다보았다. 매미 소리가 들렸다. 여름의 햇빛이 찬연하게 그녀를 비추어 주었다.
“사람 무안하게 대답도 안 하고. 나랑 먹기 싫구나.”
“아니야. 의외라서 그랬어.”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함께 먹는 거, 난 좋았어.”
처음에 진아가 말이 없었기에 속상했다. 나와 함께 밥을 먹던 게 성가셨을지도 모른다. 배려는 때론 귀찮으니까. 어쩌면 나만 좋았던 걸지도 몰라라는 생각은 부지불식간에 의식 속에서 가지를 펼쳤다. 웃고 있던 표정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원래 이렇게 부끄러움을 타진 않는데. 우린 그러곤 서로를 바라보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버스가 올 때까지 나란히 서 있기만 한 것이다.
“나 저거 타야 해.”
“어? 응? 잘 들어가.”
멍청이 같은 작별 인사. 집에서 난 쪽팔림에 이불을 깨물었다. 너는 말을 그 따위로밖에 못하니? 하고 말이다.
그렇게 헤어진 지 며칠이 지났다. 아직까지 진아에게 번호를 받아놓고 문자 한 통 나누지 않았다. 그 작별 인사를 만회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자, 문자로 하자라고 생각하며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침대 위에서 양반다리를 했다. 그리고 문자 창을 띄우고는 한참을 고민했다. 화면 위의 검은 글자들은 길어졌다, 줄어들었다,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잘 지내? 는 너무 멋쩍다. 뭐 하고 있었어? 는 너무 급진적인 것 같고. 몇십분은 고민한 것 같다. 결국 우리 개학 언제지? 그렇게 보내놓고는 핸드폰을 이불 위에 던져놓았다. 베개를 깨물었다. 아마 긴팔을 입고 있었더라면 옷소매를 깨물었을 성싶다.
“엿새 남았어.”
“고마워! 그때 봐”
“응”
개학 날을 물어보는 건 너무 바보 같았던 것 같다. 하지만 더 좋은 게 안 떠올랐었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난 또 이불 끝단을 깨물었다.
가을 학기 첫날. 막 등교해서 교실로 가던 중 진아와 마주쳤다. 그녀가 먼저 내게 묵례했다. 그녀가 먼저 인사를 해준 것이 감격스러웠지만 그런 감정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 회답해야 할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웃으며 양손을 들어 흔들었다. 이후 별사건 없이 우린 서로 지나쳤다. 전 학기만 해도 그녀와 아는 척도 하지 않았었다. 친해졌다는 생각에 기분이 살랑거렸다. 그날 저녁 여섯 시쯤에 우린 교문에서 마주쳤다.
“어라? 이제 집 가는 거야?”
“응”
친구들이랑 저녁 약속이 있었던 나는 집에 돌아갈 바엔 학교에 남기를 택했다. 뭐 하고 있었어? 묻자 야자실에서 공부를 좀 했다고 한다. 난 어색하게 그렇구나하고 대답했다. 방학 때는 잘 얘기를 했는데 학기 중이 되니 이상하게 이랬다. 왜 이렇게 어색한지......, 그녀는 춘추복을 입고 있었다. 좀 이른 시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거슬리는 건 펑퍼짐하고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치마다.
“교복 수선 아예 안 한 거지? 수선 얼만큼 해야 하는지 봐줘?”
“그렇게 별로야?”
“응, 넌 예쁜데 옷이 다 죽여놓는다고.”
“정말?”
그녀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그리고 웃었다. 피부에 뭐라도 내려앉은 듯 간질간질했다. 뭐, 그렇다고. 어째 퉁명스러운 말이 나왔다. 나는 연신 괜찮다고 하는 그녀를 끌고 수선집으로 갔다. 심하게 부담스러워한 탓에 기장은 무릎 위로 살짝 오는 정도로, 통은 꽉 낄 정도로 자르진 못했다. 옷이 날개는 못 되어도 짐은 되지 않게 한 걸로 만족했다. 수아는 잘 입겠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약속 시간에 늦어 전화기에 불이 났다.
다음날은 진아가 하얀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왔다. 일회용 천 마스크였다. 기침을 하거나 코를 먹지도 않았고 이마에서 열이 나지도 않았다. 마스크를 왜 쓴 거냐고 묻자 궁금해?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으니 호기심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입이 턱 막혔다. 난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게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였을 뿐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종이 쳤다.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선생님께선 진아를 슬쩍 불렀다. 한 교시가 끝나도록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 어떻게든 핑계를 찾아 교무실을 찾았다. 진아는 교무실 한 켠에 마련된 파티션 안에 담임선생님과 함께 있었다. 난 안을 빼꼼 쳐다보았다가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문 바로 옆에 서 내 단화의 코를 쳐다보았다. 신발 안에선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수업 종이 치기 전에 진아가 나온다면 같이 돌아가야지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문득문득 시계를 쳐다보았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렸다. 진아가 나온 직후 종이 울렸다. 그녀는 날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게 좀 걱정되어서……, 무슨 일이었어? 심각해 보이던데”
어쩐지 머쓱해졌다. 아, 하고 진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너 땡땡이 많이 쳐봤지?”
그 말이 찔려 무언가 위축되었다. 뒤이어 나온 말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해야해?”
이상하게 그녀 앞에서 얼어붙은 일이 많다. 내가 그렇게 있자 진아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고 덧붙였다.
“뭐….., 안 쳐봤다면 거짓말이지.”
“어떻게 했는지 좀 알려줄 수 있어? 땡땡이치면 보통 뭐해?”
우리는 함께 담을 넘었다. 그러는 사이 종이 울렸다.
“내 생애 이 정도 일탈은 처음이야.”
진아는 그렇게 말했다. 말과 달리 걱정되거나 하는 언행은 아니었다. 어쩐지 그 말이 좋았다. 나는 진아를 위에서 쇠 담장 너머로 올려주었다. 처음에는 광이 나는 에나멜 구두를 잡아주었고 발과 허벅지, 마지막으로 허리를 잡아주었다. 발을 몇 번 헛딛어 안 잡아주었으면 뒤로 한 번 정도는 엎어졌을 것이다. 나는 진아를 넘겨준 후 담장을 탔다.
“도와줘서 고마워. 그럼, 이제 뭐 해야 해?”
“시내부터 가볼까?”
우린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초록색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어색하게 나란히 서 버스를 기다리자 곧 지평선에서 기다란 차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우린 그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버스는 곧 대학교 앞을 지났다. 내 옆자리, 창가에 앉아있던 진아는 오고 가는 대학생들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동경하는 것 같은 눈빛이기도 했다. 곧 신영극장 앞으로 차가 섰다. 나와 진아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대학생들 사이에 껴 좁다란 거리를 즐겼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호수 근처에 내려 둘레를 잠시 걸었다. 버스에 탈 때만 해도 저물녘이었 것만, 금방 밤이 내려앉았다. 하늘은 어두웠지만, 주위는 호텔에서 나오는 빛과 가로등불 덕에 그리 어둡진 않았다. 그래선지 우리처럼 호수 근처를 노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진아야, 나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호수는 빛에 은근히 젖은 채여서 바람따라 일렁이는 물그림자가 보였다. 몇 번은 나에게 튀긴 것 같기도 했다.
“교무실엔 왜 불려 갔던 거야? 분위기가 많이 안 좋던데.”
“마스크 왜 썼는지 궁금해?”
“응......, 물어봐도 돼?”
계속 그 이유를 궁금해했던 나는 당연히 그렇게 대답했다. 진아는 말 없이 하얀 천 마스크를 턱 밑까지 내렸다. 입술 옆에 큼지막하게 멍이 들어있었다.
“아니 뭐야? 무슨 일이야? 어떻게 하면 멍이 이렇게 들어? 누구한테 맞았어?”
퍼렇게 변한 피부를 보고 말했다. 그녀는 세 손가락으로 광대뼈 위를 어루만졌다.
“지금은 거의 안 아파.”
진아는 숨을 한 차례 고르는 듯 입을 잠시 쉬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누가 우리 집을 신고했던 것 같아.”
“뭐?”
“어제 경찰이 가정폭력 신고 받았다면서 찾아왔어. 몇 가지 묻고 가더라고.”
“아버지가 때린 거야?”
“응, 그때부터 안 때리시더라고 소리도 안 지르시고.”
“대체 왜?”
“정말 궁금해?”
진아의 눈빛이 한차례 반짝였다.
“너 괜찮아?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야.”
“그래, 숨길 일도 아니지. 우리 아버지가 알콜중독자셔. 어머니는 도망가셨고. 내가 치마 줄이고 온 걸 못마땅해하시더라고. 내 엄마처럼 다른 남자 찾아 도망갈 거냐면서. 어제는 통화하는 상대가 남자냐고 그러셨던 거고.”
“아……, 그 미안해……,”
몸이 마구 움직였다 어느새 난 그녀의 팔뚝을 붙잡고 있었다. 평이하고 초연한 말투 때문에 더 측은하게 느껴졌다.
“너 잘못도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니야. 날 위해서 신경 써준 거잖아? 그러니 침울해하지 않아도 돼.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고. 오히려 고마웠어. 이렇게 멍들어봐야 그저 잠깐 아플 뿐이잖아? 그냥 흘려버리면 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진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 정말 괜찮아하고. 나 때문인가? 란 생각에 얼어붙었다. 빛을 등지는 바람에 그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너 잘못이 아니야.
“넌 어떻게 그렇게 초연해?”
“세상에 집착할 만한 건 없으니까. 그런데 나 팔에 멍 들었어”
난 아차 싶은 마음에 손을 재빨리 떼었다. 어쩌면 내가 멍이 든 곳을 움켜쥐고 있었나 보다. 난 그 초연함이 부러웠다. 둘 다 가족의 굴레에 갇혔음에도 나랑 달리 아무렇지 않게 버티는 아이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제서야 머리로 깨달았다.
“사실 나도 부모님이랑 사이가 불편해. 내가 입양아라고 하시더라고……, 몇 년째 말도 서로 못하고 있어. 목이 막힌 것 같아 답답해 죽겠어.”
나는 홀린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말한 건 처음이었다. 말하다 보니 울컥하는 심정이 올라왔다. 진아는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이 나이 들고 울기엔 쪽팔리다고 생각해서 담배갑을 꺼냈다. 내 습관이다. 담배를 피워서 눈물을 몰아내는 일.
“여기 금연인데.”
우리는 나란히 벽 앞에 섰다. 난 벽에 기대어 담배를 꺼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진아는 허리를 꼿꼿이 핀 채로 다소곳이 서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며 흘긋 쳐다보았다.
“욕 좀 들으면 되는 거지. 아! 담배 연기 싫어하겠구나.”
“상관없어. 아버지가 맨날 집에서 피우시거든.”
라이터를 켰다. 주황색 불티가 몇 번 날렸다. 연이어 난 불을 난 담배에 붙였다. 그땐 담배를 평생 끊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참 그렇게 헛된 생각도 있었나 싶다. 옆에선 여전히 가로등처럼 우두커니 서서 앞을 보고 있었다. 심심하지도 않나? 꼼지락거리지도 않은 모습에 그런 생각을 했다.
“너도 한번 펴볼래?”
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물고 있던 담배를 손에 쥔 그대로 입에서 뗐다. 오른손 통째로 옆으로 살짝 뻗었다. 소녀는 고개를 살짝 숙였고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필터엔 연분홍의 틴트 자국이 묻어있었다, 어색하게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인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몇 번 콜록거렸다. 내가 피웠을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도 밍숭맹숭했다.
“너도 번뇌에서 벗어나길 바라.”
진아가 기침이 끝나고 스스로의 목을 가눌 수 있게 되자 말했다. 그리곤 자신이 끼고 있던 염주를 건네주었다. 난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아들였다. 나도 그녀와 같이 오른쪽에 염주를 찼다.
그게 계기였던 것 같다. 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이야기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나는 이제 원래의 친구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급이 맞지 않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삶과 허무에 대해 더 많이 알기 때문에, 다른 누구도 아닌 진아와 친해졌기 때문에서였다. 나와 수준이 맞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왠지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으쓱해졌다. 학교에서가 아닌 주말에도 가끔 만났다. 진아는 사복 역시 수수했다. 그걸 못 봐 끌고 다니며 이 옷 저 옷 대보고 사준 것도 여러 번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이렇게 다니는 걸 좋아하진 않으시던 것같 다. 진아는 운이 좋으면 나갈 수 있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정확한 표현이다. 난 그걸 십분 이해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언젠가 너는 학교 공부로 충분하냐고 물었었다.
“할 수 있는 한에서 해야지.”
“어렵지 않아?”
“학원을 다녔다고 안 어렵진 않았을 거야.”
“너 멘탈이 정말 대단하다.”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나는 진아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쓰다듬었다. 머릿결도 참 좋단 말이야, 난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웃었다. 친구가 의젓해 보였고 왠지 내가 뿌듯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허진아는 공부에 열중했다. 책을 한 번 본 후 노트 위에서 샤프가 움직였다 멈췄다. 움직였다 멈췄다. 당일 부모님에게 용기 내 말을 걸었다. 학원 그만 다니고 스스로 해보겠다고. 내가 마음을 다잡았다고 부모님은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말을 들으면 그런 감정들이 표정에 드러났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인강이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진아와 함께 남아 공부할 땐 그녀의 도움을 받았고. 어쩐지 함께 남아 공부할 때는 집중이 잘 됐다.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난 알지도 못했고 목표가 있지도 않았다.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부에 집중했던 것 같다. 그녀는 가끔 핸드폰을 꺼내 인강을 보곤 했다. 화면 너머를 슬쩍 쳐다보면 ebs나 강남인강이었다. 둘 다 무료 인강사이트다.
2학년 우리는 다른 반이 되었다. 그래도 닷새 중 서너 번 정도는 하굣길을 함께했다. 언젠가는 진아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주었다. 매니큐어를 할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단다. 그녀가 예쁘다며 좋아했던 걸 반추하며 매니큐어를 잔뜩 샀다. 반짝이를 붙여서 밤하늘을 그려주거나, 바다를 그려주는 것도 좋을 것같았다. 다음 날 학교에서 손톱이 다 깨지고 매니큐어가 거칠게 벗겨진 걸 보았다. 누가 이랬는진 뻔하지, 나는 아픔이 가시길 바라며 그 손을 어루만졌다. 그 매니큐어는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것 같다. 버린 기억은 없지만 쓴 기억도 없다. 우리가 다시 같은 반이 된 건 3학년 때였다. 진아는 수험생이 되어서도 학원도 과외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물었다. 학원이나 과외를 해볼까? 이 시기엔 누구나 괜히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나로 부족한가 봐?”
대답을 듣고 얼어붙었다. 당황해 말도 못 하자 진아는 여전한 표정으로 농담이라 말했다. 농담이었던 것 맞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녀는 이렇듯 철렁한 농담을 가끔 하곤 했다. 특유의 표정 때문에 남들보다 더 긴장됐다.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양손으로 내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말이다.
“목을 졸라보거나 졸려보고 싶은 적 있지 않아?”
조곤조곤한 말투가 어쩐지 차갑게 느껴졌다. 눈빛 역시 그랬다. 목에서 느껴지는 손끝의 감각이 저릿저릿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그런 생각이나 충동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녀가 평소보다도 밝은 목소리를 연출하며 말했다.
“농담이야. 이제 이런 농담 안 할게.”
그러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과외나 학원같은 거 해보는 게 나을까?"
“이제 3학년이니까 그게 더 좋을 거야.”
“역시……그런가?”
그런 회상이 잠깐 스쳐 갔다. 그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자신의 말이 더 이상의 함의가 없다는 듯한 언행으로. 가끔 이럴 때면 진아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되뇌인다. 역시 내가 오해한 거겠지? 과외는 주말로 구했다. 평일에는 우리 둘이 계속 함께 할 수 있게. 그리고 가끔은 공부를 하다 학교 밖으로 잠시 나서 놀기도 했다. 나는 의자를 이어 붙였고 진아의 다리를 베게삼아 누웠다. 나는 위를 보고 말을 걸었다. 진아는 수학 문제를 풀면서도 내 말에 대답했다. 그녀의 머리끝에 향기가 맺혀 이슬비처럼 내 얼굴 위로 뚝뚝 떨어져 기분 좋게 부슬거렸다. 낙하하는 향기, 간지러워졌다.
"나랑은 왜 같이 있는 거야?"
문득 쏘아나간 질문. 진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난 이미 어떠한 직감을 가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정적이 두렵고 불안했다. 그것을 쫓기 위해 난 애써 입을 열었다.
“우리 오늘은 좀 놀래?”
“어디로?”
“그러게. 그냥 좀 돌아다녀 보면서 정해도 좋을 것 같은데, 넌 어때?”
책을 보던 진아는 고개를 숙여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어디냐 보단 누구랑 있냐가 중요하데. 진아는 수긍했다. 우린 책가방을 챙겨 번화가를 돌아다녔다.
수험생이 되니 장점도 있었다. 집에 늦게 들어갈 명분이 항상 있었다. 당연 눈치도 덜 보이고. 반면 진아의 몸에 멍이 생길 때가 점점 잦아졌다. 그럴 때면 난 그곳을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었다. 그런 때에도 진아는 항상 묵묵했다. 맞았다고 내게 말을 먼저 하지도 않았다. 공부하기 싫다고 하루에 몇 번은 말했던 나와 다르게 그랬다. 공부를할 때도 그랬다. 가슴을 졸이게도 하고 날 설레게도 했던 시기, 시험 날은 성큼 다가섰다. 안 좋은 점도 있었다. 부모님의 눈치는 더 무거워졌다. 난 이상하게 예민해졌고. 언젠가는 어머니한테 내 진짜 부모도 아니면서 왜 그러냐고 소리를 질렀다.
“학원이나 과외 같은 거 더 안 필요하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말이었다. 울컥하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바람의 잎새처럼 떨리던 어머니의 눈동자가 아직도 생생하다. 다음 난 기어가는 목소리로 학원 하나 끊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렸던 나에게 그건 사과의 일종이기도 했다. 시간은 속절없었다. 눈 깜짝하고 보니 수능 날이었고, 집에 돌아와 잠에서 깨어보니 수능이 끝난 후였다.
수능이 끝나고 학교는 놀자판인 건 당연한 일이다. 안 나오는 친구들도 역시 생겼다. 누구누구는 취직을 했다. 이런 시기 진아는 돌연히 사라졌다. 자주 연락을 하고 드문드문이라도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과는 달리 소식이 전혀 없었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물었다. 진아는 연락도 안 된다고 혹시 친한 내가 아냐고. 난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전화는 받지 않았다. 문자는 자주 보내봤다. 읽는지 읽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답변은 없었다. 그건 무력감이었다.
비감한 2월이 되어서야 진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밤이 되어 정문이 잠긴 학교, 나는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가 한 편에 마련된 정자에 익숙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익숙한 과일향기가 바람을 타고 내게 다가왔다. 그 냄새를 맡으니 저절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정자에 다가가자 가로등이 몇 번 껌뻑거리며 켜졌다. 어둠이 물러나며 진아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마음속에 있던 화도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녹듯 사라졌다.
“보고 싶었어.”
“마침 저녁 다 먹었는데 딱 맞춰왔네. 갑자기 불렀는데 와줘서 고마워.”
나도 진아의 옆에 앉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빨대가 꽂힌 두유팩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쉽사리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정자의 마룻바닥은 차가웠다. 숨은 얼어붙어 하늘 위로 아롱아롱 사라졌다.
“너한테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정자의 지붕과 수풀들의 그림자가 진아의 얼굴을 장막처럼 가렸다. 눈동자를 보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불안해졌다.
“뭘 말이야?”
“이제 못 볼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어른이잖아. 집을 떠나 혼자 살 수 있는 나이.”
나는 뛰어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이 혼자 오므라들었다. 그때 약간이나마 울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나는? 나한테 그냥 이렇게 말만 하고 떠나겠다고?”
“......, 너는 나의 이런 면이 좋은 거 아니었어?”
나는 진아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푸른 핏줄이 살 밑에서 비쳤다. 분노와 충격에 팔이 떨렸다. 나는 분명 진아를 사랑했다. 내가 느낀 건 분명 배신감이다.
“이래도 아무렇지 않아?”
“세상에 집착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 허망해. 우리의 관계도 아픔도 다.”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아귀에 그토록 힘을 주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녀가 숨을 쉬기 버거운 듯 몇 번 콜록거렸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손에 힘이 빠졌다.
“방금까진 너가 너무 미웠는데……., 이젠 애처로워. 넌 허무함을 잡고 있을 뿐인 거야. 대체 뭐가 널 그렇게 만든 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의 눈동자엔 여느 때와 같았다. 그런 평온함이 이젠 서슬 퍼렇게 보였다. 난 손을 놓고 허진아 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충격에 빠진 몸을 다 잡았고 손목에 낀 염주를 뺐다. 그걸 바닥에 내던지고 싶어 팔을 크게 들었다. 이게 무슨 소용이겠어. 난 염주를 조심히 진아의 머리맡에 내려두었다.
"진아야,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나는 널 붙잡고 싶어."
"난 아무것도 붙잡지 않을거야."
"......, 알겠어. 그럼 갈게."
나는 뒤를 돌아 학교 밖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직 천천히. 하지만 내 바람처럼 되진 않았다.
“역시 이렇게 끝나네……,”
진아는 누운 채로 그렇게 말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결코 날 다시 붙잡지 않았다. 이후 나는 부모님과 화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인 셋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만큼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억도 없었다.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고, 지금은 우리만큼 화목한 가정도 찾기 힘들 성싶다. 철도 꽤 들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던 친척들에게 감사했고, 부모님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강릉의 냄새는 아무렇지도 않다. 바닷가에 놀러가거나, 볕 좋은 날 산책을 할 때면 가끔은 즐길 때도 있다.
그래도 당시의 기억과 인상들은 내 마음속에 뿌리 박혀 있다. 떠올리자면 언제든지 떠올릴 수 있다. 아직 살구 냄새가 내 콧가에 머무는 듯도 하다. 진아는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낼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난 아직 그녀를 친구라 생각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젠 붙잡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젠 알고 있다. 마치 물처럼 길 따라 목 따라 살 순 없다.
나의 사춘기는 이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