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터 안에서 불이 이글이글 들끓었다. 친조부의 뼈는 잿가루가 되어갔다. 모두가 그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오직 나만이 울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내가 울었어야 했을까? 그를 증오하던 나의 친부는 울었다. 나의 조부는 무척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바람도 폈다. 나의 친부는 나의 친모가 겪는 불행이 모두 그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시댁에 항상 어이없이 혼이 나던 어머니도 울었다. 나의 친조부와 친조모는 항상 그녀를 속물로 몰아갔다. 나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식후에 항상 설탕이 가득 든 음료수를 먹는 습관을 끊게 했다고 그녀를 야단쳤다. 나를 가지고 항상 다른 손자, 손녀들과 비교했다. 확실히 나는 멍청한 편이다. 욱하는 성격의 어머니에게 이러한 시댁의 횡포는 항상 불가해한 억압이고 공격이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그 때는 공무원의 월급이 너무 적어서 촌지 같은 건 다 받았다고. 왜 어머니가 조부의 변명을 대신 해주는지, 왜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건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동시에 또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얼마나 촌지와 리베이트를 받았으면 -돈을 받고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숙소와 장소등을 선정했는데 리베이트라는 표현이 맞는 지는 모르겠다.- 수석과 양주들로 거대한 진열장을 몇 개씩 가득 채울 수 있었는지이다. 나의 조부는 교회에서 명망높은 장로님이었고, 올해의 교육자상을 받은 교장선생님이기도 했다. 화장터의 불은 시체 뿐만 아니라 나의 슬픔과 죄책감, 동정심도 함께 태워버렸다. 나의 마음에는 그렇게 숯검정이 남았고 어느 부분은 재가 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나의 조부는 당뇨병이 있었다. 사인도 당뇨 합병증이다. 본래 붉은 고기나 튀김, 설탕 따위를 멀리했던 그의 식단은 죽을 때가 얼마 남지 않아서 바뀌었다. 콜라도 먹었고 치킨도 먹었다. 더이상 식이조절 따위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 와버렸으니 차라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드리자고 가족들은 암묵적 합의를 끝낸 후였다.
“새현아 치킨 좀 시켜드려.”
본래 나의 핸드폰에 배달어플도 깔려있지 않았다. 급하게 핸드폰에 배달의 민족을 깔고 치킨을 주문했다. 그렇게 먹은 치킨은 살도 작았고, 바삭하지도 않았고, 양념은 너무 달작지근했다. 나의 조부도 몇 입 먹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나는 왜 미안함을 느꼈을까? 그 기억은 아직도 가끔씩 나타나 심장에 사무치곤 한다.
그는 내가 어릴 때부터 자기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부의 방안에서 독대를 했고, 어렸던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엉엉 울었다. 그때의 울음을 후회한다. 그 눈물을 아꼈다면 더 가치있는 곳에 쓸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눈물이란 우물물처럼 쓰고 또 쓰다보면 언젠가는 말라버리는 것이니까.
거실에 있는 올해의 교육자상에는 금도금이 되어있다. 그 상을 준 사람들은 조부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까? 그를 장로님이라고 추켜세워주던 사람들은 조부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까? 나에겐 어쩌면 위선자의 피가 흐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친조부는 신 앞에서도 가면을 쓰던 위선자였으니, 그 피는 아주 강할 것이다. 가끔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고 그 피를 모두 뽑아내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그러면 나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두렵진 않다. 삶에 미련이 있는 사람들이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미련은 삶을 너절하게 한다. 댄디는 결코 그런 걸 용인하지 않는다.
나는 미국 민주당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노동자들을 버렸다고 비판했다. 사실 그런 문제들이야 나에게 아무 상관없다. 세상이 충분히 공정하고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남을 비판하여 감정을 풀고 싶을 뿐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제 3세계에서 푼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만든 운동화를 사서 신는다. 아동착취로 재배된 원두를 사고, 그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마신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하루에 서너잔씩 마실 정도로 커피를 즐긴다. 커피를 마시기 전 기도도 하지 않는다.
내가 강박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건 아마 그에 대한 증오심 때문일 것이다. 학생보다 돈이 좋다고 응답하여, 교직 적성 검사에서 떨어졌다. 거짓말을 하기 싫었고 그래서 진실되게 말했다. 위선자가 될 바엔 솔직하고 싶었다.
언젠가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원에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뜬금없이 궁금해했다. 교육자였던 조부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하였을까? 우리 집안에서 대학원이라도 서울에 발을 들여본 건 나 밖에 없다.
문득 나는 슬퍼졌다. 조부가 죽어서 그런건 아니다. 단지 당시의 일을 통해 내가 더 이상 순수하지 않은 인간이란 걸 깨닫게 되었고, 그 사실에 슬퍼졌다. 159cm의 몸이라는 장막을 들춰보면 거기엔 검은 마음이 몸을 뒤척이고 있다. 검은 마음이 뒤척일 때마다 썩은 내가 난다. 나는 확신한다. 그 썩은 내가 언젠가 내 근육과 표피를 찢고 나올 것이라고.
나는 장례식에서, 또 화장터에서 울었어야 했나? 슬퍼했어야 했을까?
모르겠다. 햇빛이 너무 밝아 커튼을 내렸다. 항상 해는 날 따라다니며 눈을 아프게 한다. 태양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