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지 Nov 21. 2022

11살, 나의 1순위 첫사랑

그때 그 아이는 나의 1순위였다

첫사랑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처음으로 스킨쉽을 한 것을, 다른 이는 성인 이후가 되어서 한 첫번째 사랑을 그 기준으로 삼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첫사랑은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설레는 감정을 느낀 순간이다. 따라서 5살 때 유치원 미끄럼틀 아래에서 남자아이와 뽀뽀했던 기억을 제외한다면, 나의 첫사랑은 11살 때일 것이다.




순위 시스템

요즘의 ‘최애’와 같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는 좋아하는 사람을 한 명만 말하지 않았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그런 시스템이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의 우리들은 좋아하는 사람을 1-3순위까지 매겨 말을 하곤 했다. 예를 들면 그맘때쯤 반 아이들끼리 학교 끝나고나 수련회 때 모여서 진실게임을 즐겨했었는데,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래와 같은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자신의 3순위 성씨 말하기

자신의 2순위와 짝궁을 해본적이 있다, 없다

각자 자신의 1순위 말하기


당연히 진실게임에 참가한 사람끼리 비밀을 지키는 것이 국룰이었지만, 진실게임도 여러 그룹에서 몇 번 하게되면 결국에는 우리 반 아이들의 모든 사랑의 짝대기를 혼자서 그려볼 수 있을 정도였다. 뭐, 그전에 입이 가벼운 친구들을 통해서 먼저 접하는 정보들이 월등히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저 순위 시스템이 참 비겁하고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부끄러움이 많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명확하게 말을 할 수 없고, 결국 2-3위 등 주변인을 이용해서 자신의 애정을 고백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1-3순위로 말을 하게되면 나의 1순위가 나를 1순위로 꼽지 않았어도, 어느정도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해보이거나 미련이 남아보이지 않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비겁하다구...!)




나의 1순위

그러한 순위 시스템에서 나의 1순위는 누구였을까. 당시의 나는 여자 반장을 맡고 있었는데, 나의 1순위는 나와 같이 반장을 맡고 있는 남자 반장 친구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여자, 남자 각 1명씩 반장과 부반장을 뽑았었다.) 그 친구는 비록 키는 나보다 좀 작았지만,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며 성격도 시원시원하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이 반장을 하면서 호감이 생긴 터라, 그 친구의 1순위는 누군지 잘 몰랐었다. 이미 나의 1순위를 아는 친구들은 어디서든지 들은 이야기가 있으면 나에게 전해주곤 했다. 그러던 중, 주말에 우연히 그 친구를 포함한 남자아이들 무리와 나를 포함한 여자아이들 무리가 그 친구의 집에 초대되어 진실게임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1순위를 말하는 것으로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이 각자의 1순위를 말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 친구의 차례가 되었다.


긴장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왠걸 그 친구의 1순위에서 내이름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미 나는 1순위를 말한 뒤였기 때문에, 모두들 우리가 서로를 1순위로 꼽은 것을 알고 놀려대고 있었다. 그날의 그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친구들이 시끄럼게 주변을 둘러싸고 놀려댔지만, 그 모든 것은 전부 노이즈캔슬링으로 사라져버릴 뿐이었다.


서로를 1순위로 꼽았다. 우리는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쑥스러웠는지 우리는 당분간 서로를 1순위로 공식화한채 그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았다.(지금으로 따지면 이게 바로 썸타는 관계가 아니었나 싶다) 이맘때쯤 이 친구랑 같이 하교하면서 아빠 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광경을 본 아빠가 너네 둘이 사귀냐고.,저 친구가 네 남자친구냐고 물었는데,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음, 아니! 근데 내 1순위는 쟤고, 쟤의 1순위도 나야!


지금 생각하면 이게 무슨말인가 싶지만, 당시에는 정말 사실만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아빠가 느꼈을 혼란이 지금은 좀 이해가 된다.




애매한 썸 단계를 거쳐 결국 그 친구와는 사귀게 되었고,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번째 남자친구가 되었다. 그 뒤로 깨질때는 별로 좋게 깨진 것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때 그 풋풋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오글거리는 순위시스템제도, 진실게임, 사랑의 작대기 등등 딱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10살, 재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