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오늘은 본격 K-고딩 생활을 시작했던 12년 전의 나를 다시 마주하려고 한다.
학생들의 성적을 줄세워 등수를 메기는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에 나는 꽤 잘 적응한 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들인 노력보다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새로운 개념이나 내용도 주변 친구들보다 빠르게 이해하는 편이었다. 머리가 크면서 “내가 이정도만 노력해도 웬만한 점수를 받을 수 있구나” 인지하기 시작했고 나는 슬슬 웬만한 선에서 노력을 멈추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절반 정도의 노력을 들여서 절반 이상의 성과가 나면, 어느정도 만족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가 별로 안좋아도 “어차피 100% 노력한 것도 아니었는데 뭘”하고 훌훌 털어버리곤 했는데, 그때는 그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빨리 다음 스텝을 생각하는 쿨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결과에 대한 변명을 만들어두는 비겁한 태도였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적당히 노력해도 상위권을 유지하며 전교권에서 등수를 받았던 학생이었다. 적어도 중학교때까지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름대로 야망이 있었던 나는 집 근처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우리 집에서 무려 1시간이나 떨어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부모님은 통학거리가 너무 멀어서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주변 친구들과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우리 동네에 있다가는 대학 문턱도 못 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을 설득해 일부러 원서를 넣었던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을 졸라서 간 학교에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100등 밖의 등수를 맞았다. 그동안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제서야 비로소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비록 첫 고등학교 생활을 충격적인 등수로 시작했지만, 사람이 어디 그렇게 한순간에 바뀌겠는가. 본격적으로 K-고딩 생활을 시작하게된 나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가장 좋아했는데, 선생님의 감시 속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는 그 쫀득쫀득한 재미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들은 야자 시간 중간에 나와 운동장에서 치킨을 시켜먹거나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으러 가는 등 공부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곤 했다.
야자가 끝나면 밤 10시가 되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띵똥외플이라는 와플가게가 있었는데 집가는 길에 친구와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 와플을 반으로 쪼개 나누어 먹으며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것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우리의 루틴이었다.
고등학교에 적응할수록 성장하는 것은 성적이 아니라 나의 몸무게와 맛집지도의 완성도였다. 그렇다보니 나는 지금도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 친구의 독특한 식성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듯 하다. 가장 친했던 전교 1등 친구는 스팸 밥버거에 스팸이 부족하다며 주문할 때 꼭 스팸 밥버거에 스팸 토핑을 추가했고 줄이 길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주문을 들을 때에는 본인도 부끄러웠는지 한껏 목소리를 낮춰 주문하곤 했었다.
육식파 친구 한 명은 그 어린 나이부터 고기맛을 풍부하게 느껴야한다면서 고기먹을 때에는 절대로 밥이나 채소를 곁들여 먹지 않았다. 늘 고기 자체만 음미하며 먹었는데, 고기보다 밥파였던 나는 그 친구를 정말 신기하기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적절한 규제와 함께 고생스런 수험생활을 같이했던 친구들. 가끔씩 밥버거를 먹는 날이나 삼겹살을 먹는 날이면 친구들이 생각나곤 한다. 그 친구들은 잘 살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