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난주, 우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인 수능이 끝이 났다. 수능 전날의 해탈한 기분, 수능날 아침의 차가운 공기, 수험장 밖을 나오는 그 복잡미묘한 감정들까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수능이 끝남과 함께 대학 입학을 앞둔 많은 예비 새내기들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서 10년 전, 나의 새내기 시절은 어땠는지를 돌아보고, 만약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그 시절을 보냈을 것인지 반성 혹은 회고의 글을 좀 적어보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내가 대학생활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다름아닌 MT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나 다른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내가 접한 대학생활은 그저 MT와 술이 전부였다. (간혹가다가 도서관에서 레쓰비 같은 캔커피를 주고 받는 풋풋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래서 나는 MT에 술게임을 하며 다같이 텐션 만땅으로 놀며 동기들과 친해지는 그런 상상을 하며 대학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과도 MT를 가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1학년 때에는 학부제로 운영되어 보통 새내기들은 과가 없었다. 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과를 특정해서 지원하는 전형으로 입학하여, 1학년때부터 소속이 명확했고 나와 같은 동기들이 한 10여명 정도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때부터 친해지게 되었다. 처음 만나는 MT 당일날, 우리는 어색한 인사를 하며 두 명씩 고속버스에 올라탔고, 그렇게 한 10명정도의 과 친구들과 함께 MT를 가게 되었다.
학교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런저런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한 뒤, 드.디.어 밤이 되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나였기에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거실로 나왔는데, 이게 웬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맥주 1병과 사이다, 그리고 후드라이드 치킨 몇 개였다. 오잉(?) 내가 생각한 MT는 술로 적셔지는, 술게임을 하며 다같이 텐션 최고조가 되는, 그런 것이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나중에 과대 언니를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우리 학교는 교내에서는 술 반입이 금지되고, 전체적으로도 술을 권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준비된 술 자체가 적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 10여명의 친구들이 빙 둘러앉아 맥주 한잔씩을 하며 치킨을 조용히 뜯었다. 서로 그렇게 친한 상태가 아니라서 뜨문뜨문 대화가 오고갈 뿐이었는데, 결국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동기들은 하나 둘씩 방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엠티였다.
하.지.만. 김빠지는 이 엠티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입학 무렵 떠났던 MT와 다르게 우리과의 경우는 답사제도가 있었고 국내외 곳곳의 유적지를 찾아가 3박 4일정도 머물며 이런 저런 현장 학습을 할 수 있었다. 답사는 보통 학기 시작 후 약 한 달이 지나서 떠나게 되는데, 우리에게도 그 시즌이 오게 되었다. 3월 말 무렵 우리는 답사를 떠나게 되었고, 한 달새에 동기들과는 더 친해져서 서로 장난도 치고 봄 꽃 사진도 찍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레크레이션 시간. 다같이 준비한 공연을 한 뒤, 과대 언니가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새내기 여러분들 몰래카메라를 마칩니다.
여러분 옆의 동기 오동안 양은 사실 두 학번 위의 선배님입니다.
입학을 환영합니다…!!!!!
그렇다. 우리를 환영해주기 위해(?) 선배님들은 새내기 MT부터 답사를 가기까지 무려 한 달 동안 우리 동기들 사이에 X맨을 심어두어 친해지게 한 것이다….! 마이크로 이 말을 듣자마자, 어떤 아이들은 너무 충격을 받아 울고, 어떤 아이들은 기껏 친해진 동안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울기도 했다. 우리 학번 동기들 모두가 충격에 빠졌고, 그렇게 이름부터 어쩐지 수상했던 ‘오동안’ 동기는 두 학번 위의 대선배님들 품으로 사라졌다.
선배님들로부터 충격적인 환영인사를 받은 우리는 본격적으로 대학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한 나의 새내기 시절은 단연코 미팅의 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심한 때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에 미팅 약속이 잡혀있었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미팅 시스템의 폐해에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창 새내기가 되면, 다른 학교에 입학한 고등학교 동기들이나 동아리에서 알게된 타 학교 친구들과 미팅약속이 마구마구 잡히게 된다. 옛날 같았다면, 미팅에서 남자친구도 사귀고 그러는 줄 알았지만, 막상 대학에 와보니, 그날 처음 만나 술게임하고 헤어지는 자리에서는 좀처럼 진지하게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주변에 미팅에서 만난 커플들의 경우에는 한달도 안되어 깨지기 일수였다. 그렇게 미팅자리는 술게임을 하며 신나게 노는 자리로 변질되었다.
문제는 주변 친구들끼리 서로 미팅을 주선해주다 보니, 가끔씩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서 한 명이 빠지게 되는 경우였다. 빈 자리에 대타를 설 친구들을 구하는 것은 엄청난 전쟁이었다. 그렇게 동기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미팅을 지켜주기 위해 대타 품앗이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주 5일 내내 미팅을 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매일매일을 술먹고 놀고 다음날 칼같이 수업에 출석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신기하게도 그게 가능했다. 미팅을 많이 해본 만큼 여러 학교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충격적이고 재미있는 미팅 썰들이 많지만 그 이야기를 다 하려면 밤을 새야할테니, 나중에 적절한 기회가 되면 재미있게 풀어보겠다.
1학년 때 참 많이 돌아다녔었는데, 지금 보니 2년 넘게 지속한 봉사동아리도 이때쯤 시작했던 것 같다. 우리 동아리는 전국 연합 동아리로, 서울과 경기 지역의 각 지부에서 직접 봉사를 기획하고 기관을 컨택하여 봉사활동을 진행하는 아주 능동적인 동아리였다. 분위기도 너무 좋고 사람들도 참 괜찮았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는게 있었다. 바로 보통 봉사동아리는 아주 유명한 술 동아리라는 것이다.
물론 동아리에서 정말 봉사만 하는 것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처럼 잦은 만남과 술약속을 나가게 될 줄은 몰랐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좋아하는지라, 나는 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 중 한명이었고, 자연스럽게 술을 잘먹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물론 주량에 대한 오해는 해가 지날수록 해명과 함께 실제 검증(?)을 통해 차츰차츰 풀리기 시작했지만!
비록 술을 많이 먹긴 했지만, 직접 봉사도 기획하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간접적으로 배운 점들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사람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를 함께하던 사람들과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난다. 철없을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만나면 대학생때처럼 어이없는 농담과 다른 곳에 가서는 절대 못할 아무말을 주고 받으며 재미있게 놀곤 한다.
대학생활 내내, 정말 잘 놀고, 잘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에 대한 공부도 정말 많이 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덩달아 나도 성장했다.
그렇지만, 후회가 결코 없는 것은 아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지만, 이왕 이렇게 미니 자서전을 쓰는 만큼, 20살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 했으면 좋았을 것들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혹시라고 이 글을 읽는 예비 새내기들은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사회에 나와 돈을 벌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보니, 돈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대학생때까지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며 생활했다. 물론 종종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것은 배낭여행을 가거나 아이패드를 사기 위한 개인적 의미의 노동이었지, 내 생활을 온전히 지탱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대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을 때에 스스로 돈을 버는 방법을 계속 연습했다면, 훨씬 돈을 소중히하며 지금은 경제적으로 더 성숙해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20살 때 내 주변의 어른들은 모두 나를 엄청 부러워했다. 특히 나이차이가 많이나는 언니와 언니 친구들은 네 나이때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때라고 하면서, 뭐든지 많이 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몰랐고 뭘 해야할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방학 때면 저녁에 술먹은 뒤, 다음날 점심시간까지 늦잠자고, 괜히 남들 따라서 관심도 없는 자격증이나 영어공부에 시간을 허비했던 것 같다.
만약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살아가는지,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데 거의 20살 전부를 썼을 것 같다. 책을 읽고 그 책의 저자를 직접 연락해 만나고, 강연을 찾아서 듣고, 여행을 가고 직접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해보며 나를 알아가고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갖을 것이다. 가장 후회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대학교의 도서관은 다른 그 어떤 도서관보다도 자료가 방대하고 접근이 쉽다. 비록 우리학교 도서관은 산꼭대기에 있어서 정말 자주가기 쉽지 않은 물리적 구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도서관에서 정말 많은 책을 읽었을 것 같다. 책은 삶을 바꾸는 가장 쉽고도 강력한 방법이다.
그때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존경하는 사람도 없었고, 닮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태였고, 흐릿했다. 그래서였는지 학교에 그렇게도 많은 멘토링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나는 단 하나도 제대로 신청해본적이 없다.
인생을 살아가며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는 아직 어리석고 판단력이 부족한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같이 고민해줄 멘토가 없다는 점이다. 나 스스로도 완벽하지 않음을 잘 알고있지만, 조금이라도 어릴 때, 이런저런 고민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인생의 은사님을 모실 수 있었다면, 삶의 중요한 순간에 좀 더 현명한 결정들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때 너무 질리도록 공부를 해서 그런지, 대학교 때에는 공부한다는 느낌을 받기 싫었다. 그래서 ‘경험’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마시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게 대학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술은 좀 줄이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더 많이 나눠볼 것 같다. 같이 술을 먹던 사람들이 좋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사실 의미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는 전체 비율로 보았을 때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좀 더 좋은 대화, 깊은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더 많이 갖을 수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