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한 달 살기
2023년 1월 20일 금요일
싱가포르 한 달 살기 14일차
싱가포르에 온 지 14일차.
오늘은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짜증이 나는가.
가장 오랫동안 바깥나들이를 하고 왔음에도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이다.
호르몬 탓인가, 제대로 먹지 않아서인가, 아들이 계속 신경 쓰여서인가..
샤워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잠시 일상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아무것도 방해받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자유를 누리기 위함이 아닐까.
일상의 고민,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며 재충전을 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인데,
이 여행에 '일상'이라는 원래의 삶 일부분이 스며들면
여행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장기간 여행을 하는 건
분명 장점이 있고 단점을 상쇄할 만큼 값어치가 크지만
아이와 함께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여행에 침범하는
일상을 무시할 수 없다.
여행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의식주이고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먹는 '식'인데,
나는 '식'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평소의 행동 습관에서 잘못되고 고쳐야 하는 부분
(지저분하고 더럽고 위험한 건 하지 말아야 할)들도 여행을 하는 와중에도 발생하다 보니
사사건건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꾹 참고 넘겨보려 하지만 오늘은 그게 잘 안되는 날인 것 같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다양한 음식을 접해보고 시도해 보려 했으나
아들은 아예 처음부터부터 거부를 하니 답답하기만 했다.
설득하고 권유하고 반강제로 식당에 데려가면
겨우 한 두입 먹는 시늉만 하고 배가 부르다고 하니..
이대로 굶길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배가 많이 고프면 뭐라도 먹겠지라는 생각에
식시 시간 텀을 길게도 가져봤지만
소용이 없다.
나의 인내심보다 아이의 참을성이 더 강한 것 같다.
이러한 일들이 쌓이고 여행 온 지 2주가 되니
나도 버티기가 힘든가 보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치우는 일을 하고 있다 보면
여기 와서 뭐하고 있나 싶은 현타가 오기도 한다.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싶은데
정말 따라나서주질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입맛을 점점 더 잃어가고
여기 와서 오히려 살이 빠져서 임신 전 몸무게를 얻게 되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여행에 일상이 침범해버리면 여행의 의미가 퇴색해질 수 있다.
그리고 입맛도 잃을 수 있다.
- 한달 살 기 와서 쭉쭉 빠지는 몸무게를 보며 -
어제부터 계속 비가 와서 기분이 더 가라앉는 걸 수도 있다.
비가 잠시 멈췄던 오전에는 아랍 스트리트와 하지 레인에 다녀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숙소로 돌아갈까 싶었지만,
그대로 들어가기 싫어서 실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내셔널 갤러리에 갔다.
기대했던 것보다 좋아서 6시간 가까이 머물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특히 키즈아트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다.
일상이 침범한 여행이라는 생각에 우울했던 기분이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동안 잠시 잊혔다.
그러나 숙소에 다시 들어오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엄마의 기분을 눈치챈 아들은
오늘 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라고 위로해 준다.
부디 그러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