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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Jul 24. 2023

#17. 초록빛 싱가포르에서 초록빛 우리의 이야기

싱가포르 한 달 살기


2023년 1월 21일 토요일
싱가포르 한 달 살기 15일차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와 자연이 균형 있게 공존하고 있는 곳 같다.

보통 도시 국가, 도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또는 색깔은 그레이, 은빗, 회색빛 고층 건물인데

싱가포르에 와서는 그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싱가포르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녹색 도시, Green City" 인 것 같다.


여러 관광지를 통해 홍보하던 워딩도 초록빛 도시였던 것 같다.

회색빛 건물들만 우뚝 솟아있는 게 아니라

초록빛 나무와 식물들로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이 무척 강렬하고 뇌리에 딱 박혀버렸다.

도시 속을 걷고 있지만 주변엔 항상 초록의 나무와 풀, 식물들이 있고

어딜 가나 크고 작은 공원들이 있어 도시에 있어도 자연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게 싱가포르의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초록초록한 싱가포르





며칠 동안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 바깥나들이하기가 힘들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그리고 쨍쨍 내리쬐는 햇볕이 정말 눈이 부셨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에는 공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찾아 놓은 공원인 East Coast Park로 아침 일찍 아들과 함께 나섰다.

아들이 놀만한 놀이터들도 있고 작은 물놀이장도 있는 East Coast Park B Zone에서 시작하여

더 큰 놀이터와 카페와 바다가 더 잘 보이는 C Zone으로 걸어가며 공원을 즐겼다.


오전 시간대임에도 햇빛은 뜨겁고 따가워 양산이나 모자가 필수였지만

큰 나무 아래 그늘로 걸으면 너무 선선하고 산책하기에 좋았다.

공원 산책길 오른 편으로 펼쳐진 바다의 모습은 수평선 끝에 걸쳐진 화물선들로 인상적이었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들도 있고

선탠하는 사람들도 있고

피크닉 하는 사람들도 있고...

저마다 휴일을 즐기는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뿜어져 나왔다.





너무나 평온하고 여유로웠던 이스트코스트파크




나도 아들과 손잡고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으며

평온한 시간을 즐겼다.


한 달 살기 여행 와서 가장 좋은 점은

아들과 나름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의 삶에서 잠시 동떨어져있고

낯선 환경이 주는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이 우리 둘을 더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어제도 예민해있던 나에게,

아들은 차분하게 그 해결법을 제안해 주기도 했다.

"엄마, 한숨 자고 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정말 아들의 말처럼 오늘 아침엔 한결 나은 기분이었다.


여행을 통해 엄마를 위로할 줄 아는 아들이 되어 있었다.



아들과 손잡고 걷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들의 생각도 깊어지는 것 같다.

이를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충분한지 부족한지에 대한 생각들,

부족함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부족함이 꼭 안 좋은 것인지를 아들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과 누리고 있는 것들에 비유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에서는 그저 공부해라 숙제해라라는 말이 짜증 나게 들리고 싫었는데

오랫동안 여행을 하다 보니 '공부'는 책상에 앉아서 책만 보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와 가족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시작 후 끝을 맺는 게 조금은 어려웠던 아들이 조금씩 조금씩 완결이라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 같고,

최선을 다했으면 그 시간은 후회 없다는 생각도 가지게 된 것 같다.

(박물관, 갤러리 등에서 미션 수행하며 깨달은 듯하다.)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좋아서 일부러라도 공원을 찾고 아침 산책을 하고

카페에서 2~3시간 동안 같이 그림 그리는 시간을 자꾸 갖게 된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이 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라는 감정으로 영원히 남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공원에서 함께 걸으며 아들에게 했던 말도

아들이 열 살이 된 1월에 엄마와 싱가포르에 와서 어디 어디를 가고, 비록 그곳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때의 나는 무척 행복했고 즐거웠다고 기억해 주길, 떠올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되어서

열 살 때를 떠올린다면 지금의 행복한 시간이 먼저였으면 좋겠고

이 기억으로 앞으로 더 행복하고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해주었다.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듣던 아들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꼬옥 안아준다. 귀요미 ♡



지금, 여기, 우리 행복했던 감정이 오래오래 남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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