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한 달 살기
2023년 1월 19일 목요일
싱가포르 한 달 살기 13일차
싱가포르에 온 지 오늘이 13일 째인데 아직 현지 음식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다.
나는 예전에 출장 다니면서 많이 먹어봤기에
아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에 찾아보는데
입 짧은 토종 한국인 입맛을 가진 아들에게
현지 음식을 먹여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주엔 바쿠테를 먹으러 갔는데 조금 먹더니 한약 맛 난다고 안 먹고,
나시르막은 멸치 튀긴 거와 계란 프라이만 골라 먹었던 경험이 전부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싱가포르 사람들이 자주 찾아가서 먹는다는
호커 센터에 아침 일찍 가보기로 했고, 제대로 로컬 푸드에 도전하기로 했다.
아침 먹은 이후 일정까지 고려하여
우리는 탄종파가르와 차이나타운 근처에 있는 Maxwell Food Center에 가기로 했다.
너무 이른 시간인지 (오전 8시 20분) 문을 연 가게보다 아직 열지 않은 가게가 더 많았다.
몇몇 가게를 둘러보다가 치킨라이스를 파는 가게에서 Steam Chicken Rice를 시키고
같이 먹을 음료도 바로 옆집에서 주문을 했다.
나는 아몬드 소야, 아들은 망고 주스.
둘 다 즉석에서 갈아주는데 굉장히 사실적이고 솔직한 맛이 나는 건강한 음료였다.
이렇게 다 주문해도 9싱달이 나왔는데
그동안 사 먹었던 음식값에 비하면 정말 저렴하고 양도 충분했고 맛도 있었다.
침을 먹은 후 호커 센터 건너편에 위치한 '불아사'에 가보기로 했다.
당나라 때쯤(?) 지어진 혹은 당나라 스타일로 지어진 중국 절인데
부처의 이가 보관되어 있어 종교적으로 의미가 큰 절이라고 한다.
음력 설을 맞이하여 절 주변은 설맞이 장식물들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절 안으로 들어가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본 후 우리도 따라 해보았다.
작은 부처상에 동그란 바가지로 물을 떠서 머리에 부어 부처의 몸을 씻기 듯 행하는 절차 후,
향초를 하나 가져와서 커다란 통에 꽂아두고 합장한 채 고개 숙여 기도를 하고,
그 뒤 작은 성의를 표하기 위해 기부 함에 2싱달을 넣는 것으로 절 입구에서의 의식을 마쳤다.
아들은 평소에도 절에 가면 절도 잘하고 공양도 잘했던 터라 오늘 불아사에서도 자연스럽게 잘했다.
(엄마는 아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고, 아들의 기도도 이루어지길 바라)
불아사에서 나와 다시 호커 센터 쪽으로 길을 건너 바로 옆 싱가포르 시티 갤러리에 갔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도슨트 투어하는 관광객 무리와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러 온 학생들이 꽤 많았다. 우리도 그 학생들 틈에 들어가 싱가포르 조형물들을 관람하고 여러 체험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티 갤러리에 들어갈 때 입구에 체스판에 있어서 (일반적인 체스판이 아니라 꽤 큰, 양손으로 기물을 들고 옮겨야 하는 크기의 체스) 아들과 게임 한 판을 하고 들어갔는데, 나갈 때도 체스를 한 판 더 두었다.
양손으로 기물을 들고 옮겨야 하는 큰 사이즈의 체스라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체스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외 로비에 있는 피아노에 누군가가 앉더니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익숙한) "Right here waiting for you"라는 아주 오래된 팝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데 너무 좋아서
몸은 체스를 두고 있었지만 내 귀는 피아노 선율을 따라가고 있었다.
피아노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고 우리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도 하였다.
흐트러짐 없는 건반의 소리에 말 그대로 나는 매료되었고,
같이 체스를 두며 피아노 연주를 듣던 아들도 너무 좋다며 연주가 끝나자 박수갈채를 보냈다.
체스 게임을 15분 정도 했는데 우리가 자리를 뜰 때까지 연주는 계속되었고,
가까이에 가서 들으니 연주자는 허밍을 하며 본인의 연주를 충분히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행 중에 예기치 못하게 이렇게 훌륭한 연주를 만나게 되다니,
우연이지만 반가웠고
예상치 못했지만 감사한 순간이었다.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음악으로 채워 준 그분께 정말 감사했다.
덕분에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고,
연주한 곡을 다시 듣게 된다면
오늘의 이 순간이 저절로 떠올라 미소 짓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눈으로만 보고 느끼던 여행에
귀로 음악의 선율을 느끼게 하여
더 풍성해진 여행을 선물받은 것 같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