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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책방노트 Feb 21. 2019

뉴욕의 어퍼이스트에 가면 길모퉁이 서점이 있다.

누구나 저마다의 생에서 모퉁이를 만난다.

인생에서 첫 은퇴를 했다. 2018년 10월 3일 나의 공식적인 첫 은퇴 날이다.

나는 10여 년의 길고도 짧았던 나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작년 10월 처음으로 인생에서 공식적인 무직자가 되었다.  
퇴사를 머뭇거리는 동안 나는 뉴욕에 있었다.
주변에는 멋지게 회사를 때려치운다(?) 얘기했지만 사실 머뭇거리고 또 우물쭈물거렸던 시간들이었다.
뭔가 특출 나게 잘난것도, 다음 플랜이 있지도 않았던 내가 일단 회사를 떠나야겠다 생각이 들었던 것은                   

지금이 아니면 내년도, 내후년의 나는 우물쭈물할 테고 뭔가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끝도 있어야 했다.


결국 나는 뉴욕에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나의 고민의 시간과 무관하게 퇴직은 빠르게 처리되었다.

들어갈 때는 아무리 두드려도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던 회사는 나갈 때는 누르자마자 열리는 자동문 같았다.


고독은 늘 현실을 초라하게 만든다.

살면서 처음으로 학교, 회사 어딘가에도 속해있지 않는 자유로움.
수십 년을 어딘가에 메여 살던 나에게 ‘자유’라는 말은 매우 위험한 단어였다. 불안한 자유 안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엇이 날 옭아매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만 했다. 늘 자유와 고독은 동전의 양면처럼 내게 다가왔다.

시간이 아주 많아지면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질 줄 알았지..
하지만 현실은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좀 더 늘었다.

‘잊고 있었다’

기억의 힘이란 늘 좋았던 것보다 좋지 않았던 것들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이렇게 또 허우적거릴 줄 몰랐다. 다시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서는 , 그저... ‘일단 책을 좀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인생의 정답이라는 것이 네모난 녹색창에 탁탁 입력하면 주르륵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뭐라도 좀 읽으면 입력할 수 있는 검색어는 늘어날 것만 같았다.

다행히 뉴욕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아주 많았다. 또한 책을 아주 멋지게 다루는 법도 아는 도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책을 아주 사랑하는 도시다.

길거리 꽃처럼 노점에서 중고책을 파는 모습이 흔하디 흔한 이곳
누군가의 자리를 떠나 손때 묻은 책은 또 누군가의 자리로 돌아간다.



뉴욕 어퍼 이스트의 The corner book store 이야기

뉴욕 하면 떠올리는 타임스퀘어에서 동쪽으로 3블록 그리고 위로 한참을 가게 되면 그제야 관강객들의 발길이 뜸한 위쪽 동네 어퍼 이스트가 나온다. 그리고 이름조차 고상한 메디슨 에비뉴에 마치 헐리웃 영화의 배경과 같이 그림 같은 서점이 있다.  누군가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바로 저 코너에 있다고 해서 너무나 당연하게 책방 이름조차 ‘ the corner bookstore’(길모퉁이 서점)가 되었다는.

뉴욕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조용한 풍경의 어퍼이스트의 카네기힐
횡단보도를 건너 바로 모퉁이에 위치한 서점 , 간판에 양쪽 13 숫자는 바로 이곳의 번지수 주소 1313

실제 뉴욕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의  배경이기도 하였던 이 서점은 (실제 촬영은 너무 좁아서 불가능했고 결국 이 서점에서 영감을 받아 비슷한 톤 앤 무드의 세트를 지어 촬영을 했다고 한다.) 화려한 간판이 있지도 규모도 크지 않지만 멀리 외관에서부터 단단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이곳의 시작은 1976년 , 1890년대에 지어진 이 건물 1층에서 오래된 바닥, 천장 장식 등을 그대로 살리며 50년 동안 약국이었던 이곳은 영혼의 처방전을 건네는 서점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며 시작하게 된다. 당시 1920년대부터 이어져온 테라초 바닥과 주석으로 된 천장, 나무 장식장 등을 온전히 살린 내부의 모습 덕분에 삐그덕 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쨍그랑’ 하는 문 위 종소리와 함께 마치 옛날 70년대의 옛날 뉴욕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 ‘you’ve got mail’의 여자주인공이 일하는 서점의 배경이 된 이곳
서점과 함께 나이먹은 이 오래된 계산기는 지금도 가끔 사용한다고 한다.
이곳의 직원들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매주 책을 추천한다.
뉴욕의 대부분의 서점이 그렇듯 서점 한켠에 있는 동네 담벼락 같은 ‘community wall’

이 작은 서점은 실제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꿈이 되기도 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 서점에서 책을 보며 자랐던 한 소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돌아와 이제는 어릴 적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보낸 이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행복했던 기억을 전하며 서점을 지키고 있다. 이곳 직원인 Amy 씨의 소설 같은 이야기다. 어릴 적 가장 소중한 공간에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켜 나가는 삶. 비록 소박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의 인생의 모퉁이에서

이것은 그저 오래된 동네 서점 같지만 현실은 한자리에서 ‘머물러’ 있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세상인가.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할 때 그저 자기 자신을 오롯이 지켜나가는 것만으로도, 이 서점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누구나 저마다의 생에서 모퉁이를 만난다.

길의 마지막일 것 같은 어느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길의 시작인 것처럼.

나 또한 인생의 모퉁이에서 마주친 이 곳이 소중한 이유다.


+ 영화 ‘You’ve got mail (유브 갓 메일)’ 은 이 서점뿐만 아니라 뉴욕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실제 여러 장소에서 직접 촬영을 했고 지금까지도 대부분이 남아있다. 그중 하나인 어퍼 웨스트의 ‘cafe lalo’는 이 동네 주민들이 오랜 시간 애정 하는 카페 중 하나이다. 멋지게 차려입은 뉴욕 할머니들의 수다와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The corner Bookstore

1313 Madison Ave, New York, NY 10128


cafe lalo

201w 83rd st, New York, NY1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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