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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세대재단 May 28. 2020

불편함을 넘어 누군가에게는 불평등

들어가며

일상 속에서 무심코 이용하는 시설과 제품의 디자인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것, 생각해 보셨나요? 저는 몇 년 전 공중화장실의 세면대 아래 놓여진 발판을 보고서야 문득 깨달았습니다. 매일 익숙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사용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좋아보이는 것들의 배신: 여성과 아동, 소수자를 외면하는 일상의 디자인을 고발하다(캐서린 H.앤서니 저, 2017)>


책 <좋아보이는 것들의 배신: 여성과 아동, 소수자를 외면하는 일상의 디자인을 고발하다(캐서린 H.앤서니 저, 이재경 역, 반니, 2017)> 는 여러 의류, 제품, 공간 디자인에 숨겨진 차별과 편견을 지적하고 모든 구성원을 위한 디자인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디자인이 사용자의 감정, 생각 더 나아가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다양성을 위한 디자인은 모두에게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과 관련하여 ‘공중화장실’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기에 금기시된 주제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본능과 직결되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이 바로 ‘공중화장실'이니까요.

불편함을 넘어 누군가에게는 불평등한 화장실

역사적으로 공중화장실은 한 집단에게 특권을 주고 다른 집단을 차별하는 환경으로 기능했습니다. 젠더 차별은 물론이고 사회 계층, 인종, 신체 능력 수준, 성적 지향을 예리하게 구분해서 사회의 차별을 거울처럼 반영했습니다(180쪽). 이런 점에서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주로 아동,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라는 점은 당연해보입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지하철, 영화관, 백화점, 박물관, 놀이동산 등의 여성화장실 대기줄이 남성화장실에 비해 긴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 차이로 인해 화장실 이용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화장실 평등 문제가 미 연방정부 앞에 공식적으로 제기된 바 있습니다. 모든 신축 공사, 대대적인 증개축 공사, 연방정부가 임대한 건물의 경우에는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의 비율이 1:1을 만족하거나 초과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으나 아쉽게도 미 하원 정부개혁위원회 밖으로 상정되지는 못했습니다(190-195쪽).

그렇다면 화장실 평등이란 무엇일까요? 남성 화장실과 여성 화장실의 면적이 동일하고 변기 수가 같으면 화장실 평등이 이뤄진 것일까요? 미국의 경우 주마다 다르지만 위스콘신 주법에 따르면 남녀간 동등한 접근 속도 차원으로 정의합니다. 즉, 여성이 변기에 이르는 속도와 남성이 변기에 이르는 속도가 같아질 만큼의 화장실 칸이 있어야 합니다(189쪽). 우리나라의 경우 수용 인원이 1천명 이상인 공연장, 관람장 등의 시설에서는 여성화장실의 변기 수를 남성화장실의 변기 수 합 이상 설치하도록 합니다.

사용이 머뭇거려지는 화장실

화장실 접근성의 문제만큼 가용성의 문제도 중요합니다.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된 공중 화장실은 늘어나는 추세지만 청결하게 관리되지 않아 실제 사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더러운 곳에서 기저귀 갈라고?” 유명무실 공중화장실 영유아 시설, 중앙일보, 2019.1.8).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율 역시 이전에 비해 높아졌으나 화장실과 같은 위생시설의 경우 여전히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보입니다. <좋아보이는 것들의 배신>에서는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화장실을 찾는 것은 물론 화장실 안에서 비누펌프, 종이 타월, 쓰레기통 등의 위치를 찾는 것도 어렵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였습니다.


점자 블록이 설치된 공중화장실 모습(이미지 출처: 2018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전수 조사)


이에 따라 시력이 낮은 사람들을 위해 화장실 입구에 내부 구조와 주요 시설, 이동동선 등의 정보를 담은 촉지도식 안내 또는 음성 유도 장치가 필요하지만 2018년 국내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 설치율은 16%에 그쳤습니다. 또한 사용자의 화장실 이용을 돕는 손잡이와 세정장치에 대한 설치기준을 명확히 하여 실질적으로 가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2018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 보건복지부). 


시민으로서 소비자로서 우리가 할 일

아마 이 글을 읽은 후 여러분은 공중화장실에서 새삼 불편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마음이 불끈 솟아오를 수도 있고 동시에 ‘나 하나로 바뀌겠어?’라는 무력감이 뒤따를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단호하게 이야기 합니다. “시민으로서 또한 소비자로서 우리에게는 스스로 상상하는 것 이상의 권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일상의 곳곳에 도사린 ‘디자인의 힘'을 다스릴 능력이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저자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위한 화장실 평등은 특혜가 아니라 권리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사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동료 시민과 마땅히 나눠야 할 위엄과 존중에 관한 사회적 문제라는 점에서 입법 기관과 건축 규정 당국에 건축 규정 개정에 대해 요구할 것을 제안합니다. ‘평균’과 ‘정상'으로 간주되는 특정 집단에게 편향된 디자인을 개선하는 것이야 말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에서 모두에게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나오며

어린 시절 그리고 성인 여성으로서 경험한 공중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며 주변 동료에게도 의견을 물었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공중 화장실 사용에 대해 다들 조금씩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고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우리집 화장실' 보다 더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도 많이 생겼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매일 만나는 일부 제품과 시설의 디자인에는 생산자 그리고 사회의 편견이 담겨있고 더 나아가 사용자에게 같은 편견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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