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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레타 박쥐

by 루시

지난번 오페라 나비부인의 첫 관람에 이어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문화활동을 찾아보다가 오페레타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요즘 세상엔 문화활동의 기회를 자주 누릴 수 있으니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는 말을 믿게 된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은 경험의 반경뿐만 아니라 사고의 폭도 확장된다는 점에서 생활반경이 좁고, 관계의 폭이 좁은 사람에겐 더없이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증정용 티켓이라도 두장씩 배부하는 게 기본이다. 그 덕분에 안면과 연락처는 있고, 여러 번 마주쳤으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분에게 조심스레 관람을 함께하자 청했다. 역시 만남은 ‘먼저’라는 게 있어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선택의 기회가 있을 때 클래식을 선택한다고 하니 우연이 더 없는 다행으로 바뀌었다.


오페레타는 작은 오페라라는 뜻인데, 오페라보다 대중적이고, 가벼우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장르의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오페라는 이탈리아에서 번성했고, 오페레타는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에서 널리 사랑받았다. 오페라는 주로 극의 내용이 신화나 전설, 과거의 문학작품 등의 다소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오페레타는 좀 더 짧고 가벼워 사람들 사이의 희극적인 에피소드나 풍자적인 내용들이 주요 소재로 오늘날의 TV드라마와 같다. 물론 내용면에 한해서다. 형식면에서 비교하자면 오페라는 모든 가사에 음률이 붙어있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있는데 비해, 오페레타는 연극적인 대사와 무용도 있는데, 연기와 춤이 보조적으로 사용된다. 오페레타는 프랑스에서 오펜바흐에 의해 널리 퍼졌고, 빈의 슈트라우스에 의해 무르익었다고 한다. 특히 20세기 들어 빈의 오페레타는 뮤지컬의 방향으로 발전해 오페라에서 뮤지컬로 변주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작품은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박쥐’이다. 원작 프랑스의 연극 한밤의 축제 le reveillon를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본 후 독일어 대본을 의뢰해 곡을 썼다. 초연은 1874년 4월 빈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올해 2024년 150주년이 되는 해이며, 오페레타가 많이 공연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주최 측에서는 큰 의미를 담았다.




총 3막으로 이루어졌고, 1막은 아이젠슈타인의 집, 2막은 오를로프스키의 무도회장, 3막은 감옥을 배경으로 한다. 공연시간은 인터미션 포함에 약 2시간 정도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아이젠슈타인과 그의 부인 로잘린데, 로잘린데의 하인이자 정부 알프레드, 하녀 아델레, 아이젠슈타인의 친구 팔케, 변호사 블린트, 오를로프스키 공작, 형무소장 프랑크 등이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폭행사건에 휘말려 금고에 처해져 형무소로 가야 하는 아이젠슈타인을 팔케가 꼬드겨 오를로프스키의 무도회에 데려간다. 로잘린데는 그를 틈타 정부인 알프레드와 밀회를 즐기는 중 집으로 아이젠슈타인을 데리러 온 형무소장이 알프레드를 아이젠슈타인으로 오해하고 연행한다. 한편 화려한 연예인의 생활을 하고 싶은 아델레, 동생의 편지를 받고 무도회에 참석하고 싶은 아델레는 이모가 아프다며 거짓말을 해서 로잘린데에게 외출을 허락받은 후 로잘린데의 옷을 훔쳐 입고 오를로프스키의 무도회에 참석한다.

오를로프스키의 무도회에서 헝가리 백작부인으로 변장한 로잘린데에게 한눈에 반한 아이젠슈타인은 그녀를 유혹하다 자신의 시계를 빼앗기고, 발레리나로 변장한 아델레에게 자신의 하녀와 닮았다고 해 면박을 당한다.

오를로프스키의 무도회가 끝나고 형무소로 간 아이젠슈타인은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수감되어 있는 알프레드를 확인하고, 그를 면회하러 온 로잘린데를 보고나선 변호사로 변장해 아내의 부정을 들추어내지만, 로잘린데도 이미 아이젠슈타인의 무도회에서의 행동을 보고 시계를 물증으로 내밀어 남편의 기만에 대응한다. 이때 팔케는 모든 것이 자신이 꾸민 일이며, 몇 년 전 아이젠슈타인이 가면무도회에서 술에 취한 자신을 길바닥에 버려놓고 가버려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한 것을 복수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밝힌다. 이에 로잘린데는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남편을 받아들이면서 모든 사람들이 샴페인을 예찬하는 합창을 하며 끝난다.


오페레타는 노래하듯이 음률이 있는 대사인 레치타티보를 사용하지 않고, 연극의 대사처럼 말로 노래와 노래 사이를 연결하는데, 여기에 시대상황이나 관객의 취향, 유머와 농담 등을 섞어 좀 더 재미있게 고쳐쓸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래서인지 로잘린데와 아델레, 아이젠슈타인이 서로가 거짓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슬픈 가사지만 밝은 기운의 노래와 각 배역들의 몸짓이 너무 흥미롭게 다가왔다. 너무 크게 웃는 것 같아 조금 민망했지만, 배역들의 거짓과 기만을 관객이 모두 보고 있기에 역시 나만 웃는 것은 아니었다. 무도회의 장면에서 왈츠를 추는 부분이 나오는데, 왈츠가 우리나라의 춤 장르가 아니고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것이 아니기에 춤은 조금 부족한 부분인 것 같았지만, 역시 클래식이므로 패스 한다.

과거 프랑스에서 오펜바흐가 만든 오페레타에는 캉캉과 같은 춤도 어우러지고, 선정적인 내용을 담은 표현들도 있어 배역을 성악가가 아닌 고급 창녀가 맡기도 했단다. 참고자료로 국립오페라단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박쥐의 내용을 확인했는데, 여기에서는 시대배경을 1920년대로 바꾸어버려 카바레로 무도회를 바꾸어 설정한 덕분에 야릇한 캉캉춤을 볼 수 있다.




불과 한 달쯤 전에 보았는데 벌써 음악은 가물가물하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박쥐에 나온 아리아들을 다시 찾아보지 않아서일 것이다. 다만 생각나는 것은 곡 중간중간에 귀에 있은 슈트라우스의 왈츠 곡 테마 부분이 많이 나왔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런 오페레타를 통해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곡들을 발전시키고 지금도 널리 연주되는 아름다운 왈츠 곡을 쓰게 된 것 같다. 역시 어느 순간에 번쩍했던 어떤 대단함은 계속 갈고 닦고 성장하는 인간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고, 인간들은 대부분이 마지막 순간만을 기억한다. 그러니 지치고 힘들어도, 목표를 놓치거나 길을 잃었다 생각이 들때에도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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