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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May 09. 2022

마주보기  

22.05.09

어릴 때 무서운 것을 보면 눈을 꼭 감아버렸다. 지금은 무서운 것들을 보면 의식의 차단기를 내려버린다. 마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무시하고 살아간다.  악몽, 무서운 이야기, 귀신의 존재는 어린이 시절에 한 번쯤은 지나왔을 법한 무서운 것들이다. 이런 과정을 지나오며 마음속의 어떤 면은 자란다. 이제는 "꿈은 꿈일 뿐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되거나, "귀신 따위는 없어" 하며 콧방귀를 뀔 수 있는 것은 현실을 구분하는 능력이 생겨서다. 귀신 이야기를 마주하고, 악몽을 복기하며 타인에게 말하는 과정을 거치며 실체 없는 무서움과 마주하게 된다. 무서움에 대해 말하다 보면 내 입을 거쳐 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를 이겨내는 의식을 치르는 게 아닐까. 어른이 되어 나에게 가장 무서웠던 것은 연인의 변한 마음이었다. 연애에서 상대의 변한 마음은 이별과 맞닿아 있다. 가까웠던 사람의 변해가는 마음을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마음을 꺼내서 분석해보고, 여기쯤 잘라 재단해 저울질해 여기부터 저기까지 무슨 마음인지 물어보는 것은 어렵다. 상대방 역시 마음이 변했음을 정확히 인지하는 데는 오래 걸리기도 하니까. 30대가 되어서도 무서운 것을 마주하기는 어려운 일었다. 이제는 무서운 이야기가 상대의 마음으로 바뀐 것이다. 어른에게도 마음의 성장이란 계속되는 시련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마주하는 데 겁이 나 도망치기 바쁜 어른이 되었다. 그 상처를 꽁꽁 가슴에 안고 굴 속으로 들어간다. 변한 사람의 마음을 마주하지 못하고 상자 속에 넣어둔 30대 초반의 여름에 나는 책 한 권을 들고 친구와 방콕으로 여행 갔다.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로 시작하는 책이었다. 다자키 쓰쿠루가 강렬하게 죽음을 생각했던 이유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네 명의 친구들에게서 절교 선언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몇 페이지를 이제 막 읽었을 뿐인데, 여행 가방 속에 들어온 이 책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독서는 가장 개인적인 경험이다.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독자 자신의 이야기를 이입시켜 나의 이야기로 읽을 자유가 있다. 메타포가 가득한 소설을 읽을 때면 내 마음대로 해석할 여지가 넘친다.


"미안하지만 이제 더는 누구의 집에도 전화를 걸지 말았으면 좋겠어." 아오는 그렇게 말했다. 대화를 시작할 때 으레 앞머리에 꺼냈을 법한 말은 없었다. (중략) 쓰쿠루는 한번 숨을 들이쉰 후 상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머릿속에서 되뇌고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 보았다. 그 목소리에 내포된 감정을 읽으려 했다. 그러나 아오의 말은 그저 형식적으로 읽어 내린 통고에 지나지 않았다. 감정이 들어갈 틈도 없었다. "전화를 안 걸었으면 좋겠다는 게 모두의 생각이라면 물론 걸지 않겠어."라고 쓰쿠루는 대답했다. 말이 거의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누군가에게 절교 선언을 당해본 경험은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그때 당신의 반응은? 나는 무서운 것은 이제 없다고, 눈을 감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무서움의 층위가 달라졌을 뿐 여전히 그 앞에선 눈을 감는다. 더 이상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통보를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유를 묻고, 꼭 듣고 싶어 할 텐데 나는 쓰쿠루와 같은 선택을 했다. 혼자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만일 내가 당신이었다면 거기 머물면서 납득이 갈 때까지 원인을 밝혀내고 말았을 거야."
"나는 그 정도로 강하지 않았어."
"진상을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거야?"
"원인을 따지고 들면 거기서 어떤 사실이 드러날지,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던 거였겠지."


 나 역시 이별 앞에서  강하지 못했고 마음이 변하게 한 이유를 확인하는 게 무서웠다. 쓰쿠루와 사라가 나눈 대화를 읽으면서 쓰쿠루 속으로 들어가 감정이입을 하며 함께 순례를 시작했다. 쓰쿠루는 사라를 만나면서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발화하기 시작한다. 사라는 쓰쿠루에게 중요한 인물이다. 쓰쿠루가 자신의 상처 앞에 꼭 감아버린 눈을 조금씩 열어가며 마주할 수 있게 도와주었으니까. 고민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스스로 답을 찾는 경우가 있다.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을 입 밖으로 꺼내 하나씩 맞추면서 어려웠던 퍼즐을 완성하고 털어버린 경험이 있다. 그렇게 어떤 것은 이야기해 버릴 필요가 있다.

 사라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친구 네 명의 근황과 사는 곳을 알아낸 쓰쿠루는 아오를 시작으로 한 명씩 만나간다.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이 되었지만,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가고 마주하게 된다. A를 무서워하게 되었으면 B를 통해 해소할 게 아니라 A를 똑바로 계속 마주 볼 것. 이만큼 잔인한 사실도 없지만 이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A를 보지 못하고 살게 될 테니까. 아오, 아카를 만나고 난 뒤 구로를 만나기 위해 핀란드로 떠난다. 순례의 뜻은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쓰쿠루의 순례는 무서움을 대면해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구로와 함께 리스트의 <순례의 해> 소곡집을 들으며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쓰쿠루가 그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 상상은 자신의 이야기와도 같겠지.

 마음을 꺼내놓고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누구에게나 감춰둔 무서움이 있다. 어떤 이는 깊이가 깊어 마주할 수 없는 곳에 있어 존재 자체를 모르기도 하고 , 어떤 이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기도 하다. 무서움이 어디쯤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괴롭히는 무엇인가 있을 때, 그것을 한 번쯤은 이겨보고 싶을 때 쓰쿠루처럼 마주 보는 순례를 한다면 어떨까. 나는 끝내  헤어진 연인의 마음을 물어보지 못했만, 변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소설 속 쓰쿠루의 마음의 짐을 마주하는 과정을 읽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함께 치유했던 것 같다.  마주하고 싶은 마음속의 두려움이 있는지? 책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꺼내보면 좋겠다. 



(덧) 이 책을 읽는 법을 하나 소개하자면, 음악과 함께 읽는 것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제목과 유사한 , 시로를 설명하는 중요한 소재인 리스트(Franz list)의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 앨범을 듣는 것이다.  친구를 만나면서 세 명 모두에게 같은 것을 물어본다. "시로가 즐겨 치던 피아노 곡 기억해?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라는 짧은 곡인데." 아오와 아카는 기억하지 못하고 구로는 기억한다. 구로와 쓰쿠루는 서로 다른 피아니스트의 앨범을 들어왔지만 시로가 쳤던 <르 말 뒤 페이>에서 흘러나오는 시로만의 음악을 알고 있다. 쓰쿠루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듣고 있던 음악은 구로가 듣던 , 브렌델이 친 리스트 <순례의 해> 소곡집이다. 같은 작곡가라도 어떤 피아니스트가 연주했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르니 두 앨범을 함께 재생시켜놓고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순례의 해]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 중

쓰쿠루가 들은 리스트, Franz Liszt: Le mal du pays -Lazar Berman

https://youtu.be/LuiwjTiGHdE

구로가 들은 리스트, Franz Liszt: Le mal du pays- Alfred Brendel

https://youtu.be/gukDjT4 Dx7 E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2013)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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