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7
요즘 엄마와 교사로 살아가면서 너무 바쁘다. 핸드폰을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손에 쥐고 살았는데 복직 이후 핸드폰을 잘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학교에서는 핸드폰을 무선 충전 거치대에 올려놓고 중요 알람만 확인한다. 집에 돌아갈 때쯤 만보기를 보면 140걸음. 집에서부터 차를 타기 위해 걷는 거리와 학교에 도착해서 교실까지 걷는 걸음수이다. 늘 같다. 학교 안에서 핸드폰을 들고 다녔다면 얼마가 나올까? 나는 엉덩이가 가벼운 교사다. 교실을 살짝씩 둘러보면 앉아서 수업하는 사람이 있던데 그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아마도 내 성격이 급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뭘 하든 달려가서 들어보고 눈으로 봐야 한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아이가 말하는 소리는 더 안 들린다. 주변의 소리가 시끄러울 때는 입모양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추측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지금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눈을 마주치거나 최대한 가까이 귀를 대고 듣는다. 저학년 아이들은 특히 목소리가 작다. 아마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수업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만보기를 체크해본다면 140보는 터무니없이 적은 걸음수일 것이다.
엄마와 교사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외에 중간중간 기름을 넣고 먹거리를 사고 빨래를 개는 등 생활의 업무도 해내야 한다. 내가 출근을 위해 나가는 시간은 7시 30분. 아이는 남편과 함께 등원한다. 36개월 동안 전적으로 내가 아이를 챙겨 왔는데 갑자기 남편에게 역할이 뚝 떨어졌다. 회사 업무도 인수인계를 받고 적응기간이 필요하듯 남편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아침 먹거리와 입힐 옷, 어린이집 준비물, 먹을 영양제를 챙겨놓고 나간다. 이렇게 다 준비해놔도 준비시키는데 에피소드가 많았다. 처음에는 6시에 일어나서 나의 하루 루틴을 시작하고 씻었다. 저녁은 거의 아이를 위해 시간을 쓰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 어제 일기와 육아 일기, 소비기록을 한다. 씻고 나와서 아침 준비를 한다. 아침은 주로 김가루와 볶은 고기를 동그랗게 말아 주먹밥을 만든다. 만들기 쉽긴 한데 그래도 시간은 생각보다 소요된다. 아이와 남편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나서는 나를 위한 준비, 화장을 하고 옷을 챙겨 입어야 된다. 이 시간부터 아이와 관계가 뒤섞이게 된다. 일찍 일어 나주면 고맙겠지만 요즘 늦게 잠들어 일찍 일어나기 어려워한다. (낮잠을 자서 생기는 일인데, 이제 그만 자야 할 시기가 왔다.) 그러면 7시부터는 아이를 깨우고 머리를 묶어줘야 한다. "일어나~"라는 말로만 일어나 준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커튼을 걷어주고 뽀뽀를 해주고 등을 만져주고 다리를 주물러준다. 나가야 할 시간은 촉박하고 일어나지 않으면 점점 목소리에 짜증이 섞인다. 남편한테도 불똥이 튄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교통체증이 시작돼서 아침시간 5분은 결정적이다. 나가기 직전까지 급하게 서두르다 결국은 내 기분도 엉망이 된다. 일주일간 짜증으로 뒤덮인 아침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내가 바꾸기로 결심한 부분은 여유를 가지기로 한 것이다. 30분 더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나의 준비는 모두 마친 뒤 아이를 깨우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가족을 위해 쓰는 시간을 늘렸다. 시간이 여유로워지자 짜증을 내서 기분이 엉망이 되는 일이 사라졌다.
교실에서도 선생님이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 마음이 너무 바쁘다. 내가 수업 준비를 출력물까지 다 챙겨두고 노션에 만들어둔 폼에 수업해야 할 내용과 링크, 파일은 어디에 위치에 있는지 써두는 이유다. 아이들을 위해 챙겨야 할 일상적인 과제를 처리하다 보면 수업이 기억 안 날 때가 있다. (나이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과제 때문이라 생각하자.) 수업이 즐겁고 재밌게 구성되려면 구조화가 중요하다. 어떤 때에 출력물을 나눠주고, 어떤 때에 활동을 넣었다가 다시 차분하게 교과서로 돌아와야 하는지 미리 생각해놔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업이 엉망이 되고 아이들이 말을 안 들었다고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활동지가 미리 뽑아져있지 않아 파일을 찾느라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출력을 누른 뒤 연구실에 프린트물을 찾으러 가게 되면 아이들에겐 공백의 시간이 많아지고 공백의 시간 동안 당연히 장난을 치기 때문에 수업은 엉망이 되기 쉽다. 학생들이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수업과 관계없는 행동을 많이 한다면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내가 수업을 잘하지 못해서라기보다 25명이 한꺼번에 다른 행동을 하면 여러 사고가 생기기 쉬워서다. 그러기 위해 교실에서 여유가 필요하다. 수업 준비는 기본으로 철저해야 하고,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도 적어야 한다. 4년 만에 학교로 돌아가 보니 이런 여유와 관련해서 좋아진 부분이 꽤 눈에 띄었다. 종이 유인물이 사라진 것. 학부모로부터 회신받아야 하는 종이가 사라진 것이다. "가방을 열어서 부모님이 가정통신문을 주셨는지 확인해보고 선생님에게 제출해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저학년이라면 알림장을 열어 "가정통신문 회신 보내주세요."라고 써주지 않아도 되는 것 등이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의 관계도 중요하다. 싸움이 잦으면 해결해야 할 다른 감정적인 문제가 많다. 아이들을 따로 불러다 이야기를 서로 들어야 하고 사과시켜야 한다. 이 과정이 쉬워 보이지만 꽤 많은 시간과 감정을 함께 써야 한다.
나는 바쁘고 마음이 급하면 짜증이 난다. 너무 많은 과제가 쌓이면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조금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과제들을 배열해놓고 차분히 하나씩 해결해보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조금 부지런해져서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면 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될 것이다. 엄마도 교사도 여유가 필요하다. 두 직업은 모두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스스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면 30분 일찍 나서 보기를. 조력자가 있어 시간을 나눌 수 있다면 엄마와 교사에게 시간적 여유를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