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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Apr 01. 2021

내 작은 화실 변천사

난 도시 유목민

  지하방 작업실     


  이사하던 날 부슬비가 내렸다.


  작은 짐차는 빌라 앞마당에 책상과 의자, 자료로 쓰는 책들을 내려놓고 갔다.


  책이 비에 젖을까 부랴부랴 지하방으로 옮기는데 이럴 수가! 거기 사는 사람들이 아직 나가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갔더니 그냥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사람이 아직 살고 있다고 하는데도 무작정 들어가라는 말만 해대었다.


  그냥 을끼리 싸우라는 말인데 욕지거리를 겨우 참고 그 지하방으로 가서 사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밀린 집세로 보증금을 다 까먹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였다.


  비는 오는데 그렇다고 살던 사람을 쫓아내고 들어갈 수도 없고…


  더구나 그 집에는 아이까지 있었으니.


  커다란 비닐로 짐을 덮어두고 지하방 아주머니에게는 며칠 더 사시라고 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가 눈에 걸려 과자 사 먹으라고 돈을 조금 쥐여주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그 아주머니는 어디론가 이사를 했다.

  습기로 눅눅했던 작업실.


  열두 달이 지나 그곳에서 다시 이사하던 날.


  보증금을 받고는 집주인에게 욕을 퍼부으려고 목을 풀었다.


  나를 쳐다보던 아이 눈빛이 내내 떠올라서였다.


  짧고 센 욕으로 열두 달을 그 욕이 생각나게 하려고 했는데 이내 그만두었다.


  저 방에서 또 누군가는 삶을 이어갈 테니 좋은 마음으로 떠나자고 생각했다.       

   

  단독주택 작업실     


  넓은 곳이었지만 보일러가 자꾸 고장 나 무척 추웠었다.


  거실에 물그릇을 놓아두면 꽁꽁 얼어버렸으니 더 말해 뭐 할까.

  집주인은 대기업에 다니는 부장이었는데 놀부는 그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듯싶었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도 고쳐줄 생각도 하지 않아 내가 수리기사를 불렀는데 보일러 수명이 이미 끝났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통창이었던 2층 방과 그 앞 옥상은 써보지도 못하고 두 해를 보내 무척 아쉬웠다.          


  옥탑방 작업실     


  

  

  이곳에서 신문연재를 해 추억이 많았던 작업실.


  이곳에 있다가 홍대 쪽으로 옮겼는데 일은 없고 비싼 임대료로 몸과 마음에 상처만 생겼다.     


  갈월동 은행나무집 작업실


  이곳도 겨울이면 꽤 추었지만, 은행나무가 있어 겨울만 아니면 더할 나위 없었던 작업실.

  

  집주인은 캐나다에 이민 간 사람이었는데 거기에서 전화로 잔소리했을 만큼 유난스러웠다.


  사는 곳과 가까워 가끔씩 이쪽을 지나치는데 그때처럼 은행나무는 잘 있다.

  

  후암동 작업실


  동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N서울타워.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 크기와 방 크기는 비슷하더라도 서울타워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집값 방값 차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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